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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식사진전 팸플릿의 앞 면과 뒷 면
▲ 사진전 팸플릿 임응식사진전 팸플릿의 앞 면과 뒷 면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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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4일. 우리 부부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덕수궁으로 갔다. 아이들에게 이 사진들을 꼭 보여줘야 한다며 남편은 좀 흥분했지만, 두 아이는 시큰둥해 하고, 함께 간 나만 좋은 사진전을 본다는 즐거움에 신이 났다.

'돌아가시기 3일 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누워 계신 머리맡에 바로 명동에서 구입하신 라이카 M3가 놓여 있었고, 몸을 추스르시며 카메라를 집어 드신 선생님께서는 거실로 나가 '우리가 만난 것도 기록이야. 지금 찍지 않으면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라고 말씀하시며 셔터를 누르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photography of Lim Eung Sik 297쪽 제자 홍순태

이 사진전을 보여주기 위해 큰 아이에게는 평소에 사려고 했던 기타를 그 날 오후에 낙원상가에 같이 가서 사자고 하고, 둘째 아이에게는 낙원상가 옆 떡집 근처에 있는 굉장히 맛있는 해물찜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했다. 머리가 커진 아이들은 이제 부모를 따라나서기 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터라 그렇게 해서라도 같이 가서 그 사진들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임응식 사진전 입장권_성인 5000원_청소년 2000원
▲ 임응식 사진전 입장권 임응식 사진전 입장권_성인 5000원_청소년 2000원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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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지고 다니던 사진기를 내려놓고, 사진을 감상하는 시간은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다. 어떤 사진들은 50년대 후반에 찍었으나 인화는 2011년도에 한 사진들도 있다. 사진 한 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참 여러 가지였다.

1971년 핫팬츠
▲ 임응식 사진전 가는 길 1971년 핫팬츠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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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구직 사진에서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커다란 구직이라고 쓰인 글자를 앞에 달고 서 있는 사람 뒤로 양복을 입고 서로 악수하며 웃고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였다. 사람들이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속에서 저 구직자가 느끼는 비애는 얼마나 클까? 뒤에 악수하는 두 사람의 모습과 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 없었다면 구직의 슬픔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전쟁고아'의 사진에서는 텔레비전에서 본 이라크 전이나 아프가니스탄의 고아들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전쟁고아의 모습은 왜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일까? '초토화된 인천시가'나 '서울수복일' 사진에서는 모든 것이 부서져 있는 건물모습이 보인다. 전쟁이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그 모습이 될 것이다.

사진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단지 제목만 붙여 놓았지만, 그 사진 만으로도 왜 우리가 전쟁을 하면 안 되는지,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왜 평화만이 살 길인지에 대한 답변이 들린다. 쉽게 전쟁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으니, <기록의 예술>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

해방이 된 시기의 '아침'에서는 함지박에 꽃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처녀들의 뒷모습뿐이지만, 발걸음이나 어깨선, 환한 햇살의 에너지는 해방된 세상의 활력이 느껴진다.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한다.

임응식 사진전-명동 점경, 핫팬츠,박래현
▲ 임응식 사진전 임응식 사진전-명동 점경, 핫팬츠,박래현
ⓒ 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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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작품을 남긴 '명동'의 사진들은 아픔과 고통보다는 즐거움의 환희가 느껴진다. 평소에 쉽게 갈 수 있는 공간인데다가 지금도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지라 신기하기도 하고, 보는 재미도 있다.

기록을 하거나 촬영을 하지 않고 눈으로만 보니 기억 속에 훨씬 오래 남는다. 오전이라서 그랬을까? 아이들이 별로 없어 소음에 방해 받지 않고, '예술가'의 초상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화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이 사진전에 오기 전에 우리 집에서는 저녁식사 시간에 '박인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지나지 않아 '박인환'의 사진을 보고 1956년 명동 한복판 빈대떡 집에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를 첫 발표했다는 내용을 읽으니, 우리가 그리워하는 시인의 추억을 함께 공유한 것 같아 눈가가 촉촉해진다.

도록은 3만 원으로다소 부담되지만 소장가치가 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은 이 도록을 통해서 읽고, 사진전은 2월 12일까지 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 사진전을 보았으면 좋겠다. 설 지난 후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어르신들께도 아주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 관람하지 않으면 이 훌륭한 사진들을 내일 다시 볼 수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사진을 통해 전달되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우리 집 두 아이들이 갖고 싶은 기타를 가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환한 웃음을 웃었을 수도 있지만, 그 사진들을 통해 아주 따뜻한 온기들을 느껴서 그날 저녁 더 많이 웃은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을 억지로라도 데리고 갈 일이다. 게임 속 세상보다 현실 속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임응식사진전(2011.12.21~2012.02.12)
덕수궁미술관/매주 월요일 휴관/화~목:10시~19시, 금~일:10시~21시/전시문의 02-2022-0600



태그:#임응식사진전, #덕수궁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한겨레신문, #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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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 구강건강교육 하는 치과위생사. 이웃들 이야기와 아이들 학교 교육, 책, 영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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