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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오후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한 해안포 및 곡사포가 있는 북한 개머리기지 일대. 24일 촬영.
 지난 23일 오후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한 해안포 및 곡사포가 있는 북한 개머리기지 일대. 24일 촬영.
ⓒ 국회사진기자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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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환경감시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정리하고 분배하는 활동을 말한다. 환경감시는 뉴스 보도매체의 주요 기능에 속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만한 요인들을 사전에 경고해 경각심을 일깨워 피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하도록 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역기능도 있다. 과다한 심리적 긴장감이나 공포를 유발하는 경우다. 위협적 사건에 관한 확인과정을 거치지 않고 별 해설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반 공중에게 정보를 전달했을 때. 그러한 정보를 접한 독자나 시청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를 대비해 언론에게는 보완기능도 주어져 있다.

상관조정기능이 바로 그것. 단순한 사실보도 차원을 넘어 환경에 관한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대응책을 처방해 뉴스 수용자들의 태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환경감시가 주로 사건이나 사실의 단순한 스트레이트 기사에 의해 수행된다면, 상관조정기능은 주관적 가치가 개입된 사설, 논평, 해설 등에 의해 발휘된다.

상관조정 활동이 없다면 수용자, 즉 국민들은 사건의 심층적 배경과 의미를 물론 그 사건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갖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보다 폭 넓은 맥락에서 사건의 의미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내려주고, 보도된 사건을 어떠한 입장에서 볼 것인가를 시사해 주는 중요한 기능이 바로 상관조정의 순기능이다. 이와 반대의 역기능도 존재한다.

평화롭던 연평도를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나

논평이나 사설에 편견이 개입되거나 고의로 중요한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경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자사의 이념적 성향, 이익집단의 영향력, 광고주 또는 사주의 압력 등에 따라 뉴스를 '프레이밍(framing)'하는 바람에 역기능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수용자들이 중요한 이슈와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비판적·분석적 사고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이러한 역기능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오죽하면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언론계 내부의 우려가 나오겠나.

"연평도의 시계가 선사시대만도 못한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평화롭던 연평도를 누가 이 지경으로 만들고 있는가."

<한겨레신문> 정석구 논설위원은 11월 29일자 '연평도'란 제목의 칼럼에서 무거운 화두를 던졌다. '연평도를 전쟁공포에 휩싸이게 한 데는 정부나 언론, 정치권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로 읽힌다.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벌써 몇 번째인가. 1200톤급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침몰해 승조원 46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발생한 건 불과 8개월 전이다. 이에 앞서 2009년 11월 10일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군 사격으로 대청해전이 발생했다. 올해 11월 23일에는 북한 포격으로 연평도의 우리군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터졌다 하며 무고한 생명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 하물며 북한과 지근거리에서 마주하고 있는 NLL 인근 섬 주민들의 체감 공포지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순식간에 연평도는 순식간에 '전쟁' '공포' '폐허' '탈출'의 섬으로 전락한 채 국내외 언론에 보도돼고 있다.

선동·광기 가득한 전쟁의제, 국민 불안은 안중에도 없나

언론들은 불과 십여일 전만 해도 평화로웠던 이 섬을 '화약고' '무력출동 초읽기 섬' 등으로 묘사하며 연신 '탈출'과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보수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확전을 부추기며 연일 강경론에 불씨를 던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한반도를 암흑과 야만의 시대로 되돌리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선 어떻게 저런 야만적인 의제를 연일 뽑아낼 수 있을까. 선동과 광기가 가득하다. 언론 본연의 환경감시와 상관조정의 순기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뉴스검색 사이트 <카인즈(KINDS)>를 통해 연평도 사태 이후 언론의 의제 속성을 들여다 보았다. 연평도 사건 발생일인 11월 23일부터 12월 2일(오전 10시 현재)까지 열흘 동안 기사 제목과 본문에서 '연평도'와 관련된 검색 기사 건수는 모두 1만 234건.

하루에 1000건 이상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매체별로는 서울에 본사를 둔 전국종합일간신문 2017건, 지역종합일간신문 1346건, 경제일간신문 4581건, TV뉴스 1616건, 인터넷 전문신문 660건 등이다.

특히 경제일간신문들과 상대적으로 매체 수가 적은 TV뉴스가 연평도 사태를 많이 보도했다. 연평도 사태 직전, 신문 지면과 방송 영상을 많이 채웠던 G20과 4대강 사업 등 굵직한 의제들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이 기간 동안 G20과 관련한 기사는 770건, 4대강 사업은 406건으로 나타났다. 한때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던 의제들 중 강기정 민주당 의원 관련 기사는 24건, 영부인 김윤옥 관련 기사는 7건, 천신일 관련 기사는 41건 등으로 매우 미미한 수준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 기간 동안 연평도 사태를 주요 이슈로 다룬 신문 사설은 모두 56건이나 됐다. 국가 안보와 국민 안녕을 위협하는 중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주요 의제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감시와 상관조정기능이 제각각이다. 크게 두 부류다. 순기능과 역기능을 좇는 언론의 갈지자 보도태도가 오히려 불안하다. 불안과 공포감만 심어주는 뉴스들이 가득하다.

조갑제, "전투기에 폭격명령 내리지 않은 자 찾아내 처벌해야"

극우 보수논객 조갑제 씨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 홈페이지.
 극우 보수논객 조갑제 씨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 홈페이지.
ⓒ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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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들은 사건 초기부터 전쟁을 부추기는 강경의제를 펼치고 있다. 신중론을 제기하는 시민들과 일부 언론, 불안감에 떨고 있는 서해 섬 주민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다.

극우 보수논객인 조갑제씨는 그가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은 연일 '전쟁'의 포문을 열어 놓고 반대세력들을 맹공하고 있다. 그는 연평도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쟁을 부추기는 강경논조를 펼치기 시작했다. 제목에서 섬뜩함이 가득 묻어난다.      

'수백 발 얻어맞고 80발밖에 못 쏘나?' -11월 23일
'이 대통령은 즉각 무력 응징하라' -11월 23일
'전투기에 폭격명령 내리지 않은 자를 찾아내 처벌해야' -11월 24일
'이 대통령이 폭격을 명령하였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 -11월 28일
'김대중 지침을 따라간 청와대' -11월 28일
'이명박, 사실상 무력응징 포기 선언' -11월 28일

연평도 사태 이후 그는 "32시간 동안 26건의 기사를 썼다"고까지 했다. 거의 한 시간에 한 건을 쓴 셈이다. 그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쓴 글"이라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그와 반대되는 '신중론'을 펼치는 세력이라면 언론은 물론 대통령까지 비난의 화살세례를 피하지 못한다.

이에 뒤질세라 보수신문과 방송들도 연일 '보복'과 '응징'을 내세워 '확전'을 부추기고 있다. 1980년대 초 독일의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제시했던 '침묵의 나선 이론'(Die Theorie der Schweigespirale)을 떠오르게 할 정도다.

언론이 표출하는 건 사실 소수의 의견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언론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고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 '침묵의 나선' 효과다. 전쟁을 부추기는 국내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에서 이러한 현상이 자주 읽힌다. 그들은 자신들 주장과 반대되는 목소리는 철저히 배격하며 의제를 선점하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조중동> "즉각, 국민적 결의로, 미국과 신속하게 응징하라"

보수신문들이 일제히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연평도 사건 발생 직후부터다. 사건 다음날 아침 1면 머리기사와 사설 제목들에서 약속이나 한 것처럼 확전을 부추겼다.

"북한의 불법 공격을 즉각·엄중·정확히 응징하라" - <조선>
"북한의 무차별 도발, 국민적 결의로 응징하자" - <중앙>
"미국과의 신속하고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응징해야" - <동아>

특히 <조선일보>는 통사설을 통해 "천안함 사건에 대해 강경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대통령과 정치권, 국민에게 '전시상황'에서 나올 법한 대응 방침을 주문하며 불안감을 부추겼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타격을 입히는 수준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강력한 응징·보복공격"을 주문했다. 반면 이날 진보신문은 신중론을 펼치며 냉정한 대응을 주문해 대조를 이뤘다. 

"북 의도 파악해 차분하게 대응" - <한겨레신문>
"국지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엄중, 냉정한 대처 필요" - <경향신문> 

24일자 신문 1면 사진. 위에서부터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24일자 신문 1면 사진. 위에서부터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1면 사진기사.
ⓒ 민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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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내 주요 일간신문들은 일제히 1면 톱기사로 연평도 마을과 해안이 불에 타 연기가 피어오르는 컬러 사진 기사를 실었다. 이런 가운데 보수신문들은 '불타는 연평도' 사진을 조작했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이날 불타는 연평도 1면 사진과 관련해 "<한겨레><조선><동아> 사진에 실린 인물들과 구도가 거의 같아 같은 시각에 찍힌 사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러나 <한겨레>에 비해 <동아일보>는 더 검붉은 색으로 바뀌었고, <조선일보>는 붉은 색을 더 강조해 '화염'에 휩싸인 섬으로 바꿔놓았다"고 논평에서 지적했다.

이어 민언련은 "<중앙일보> 역시 같은 각도에서 찍힌 <경향신문> 사진과 비교해 볼 때 더 검붉은 색으로 바뀌었다"며 "네티즌들은 '연평도 사진 뽀샵작업, 너무 심하지 않나? 이건 왜곡수준'이라고 꼬집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경향> "한미 연합훈련으로 상황 더 악화... 신중론 필요"

그럼에도 초강경론을 펼치는 <조중동>의 확전 의제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비판의 초점도 다른 언론들과 다르다. 사건발생 이틀째인 11월 25일, <조중동>은 '이 대통령의 확전 자제 지시로 군이 강도 높은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질타한 뒤 일제히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좌파'와 '과거정권' 탓도 했다. 선동도 모자라 이념적 덧씌우기까지 한 것이다. 

연평도 포격 뒤 한·미·일로부터 '책임 있는 역할' 압박을 받아 온 중국은 11월 28일 6자회담 수석대표간 긴급 협의 개최를 제안했다. 이에 <조중동>의 입장과 분석도 다른 언론들과 차이가 있었다.

<조중동>은 이를 '또다른 형태의 북한 감싸기'라고 분석하며 중국을 향해 "북한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원자력추진 항공모함인 미국 조지워싱턴호 등이 참가한 서해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에도 <조중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11월 29일자 신문의 제목을 보자.    

'미 항모 서해 진입... 사상 최대 한·미 훈련' -<중앙> 1면
'미정찰기 '조인트스타스' 투입… 북 도발징후 정밀 감시' <동아> 2면
'웬만한 나라 공군력이 서해에 떠… 북, 포 꺼내고 미사일 전진배치' -<조선> 4면

한미 연합훈련에 투입된 무기의 규모와 성능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전하며 위용을 과시한 <조중동>과는 달리 이날 <한겨레>와 <경향>은 "한미 연합훈련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주문했다.

보수언론, 환경감시·상관조정기능 허약

민언련은 다시 <조중동>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다. 민언련은 11월 30일 논평을 통해 "<조중동>은 이번 사건이 천안함 침몰 사건 당시 북한에 강경대응 하지 않은 결과라면서 대통령의 '강경대응' 입장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촉구했다"며 '과거 정부 탓'을 하거나 초지일관 '무력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 신문의 논조를 비판했다. 

강경에 떠밀린 지상파 방송의 서해발 의제도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특히 25일 교전규칙을 다룬 KBS와 SBS에 대해 민언련은 "파장될 문제점을 전혀 고려치 않고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11월 28일 우리 군의 아찔한 오발사고를 KBS는 보도하지 않아 더욱 빈축을 샀다. 민언련은 "28일 MBC와 SBS는 관련 소식을 전하며 '큰 일 날 뻔 했다' '아찔한 오발 사고'라고 우려를 전했지만, KBS는 관련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논평했다.


태그:#연평도, #전쟁의제,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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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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