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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수)

반짝 추위가 온다더니, 밖이 꽤 추운 모양이다. 방 안에 앉아 있는데도 어깨가 시리다. 날은 춥고 갈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간밤에 기사를 작성하다 말고 한쪽에 밀쳐놓은 노트북이며, 어제 저녁 '먹고' '닦고' '갈아입고' 하느라 여기저기 방바닥에 어지럽게 벌여 놓은 짐들을 내려다보는 마음이 몹시 심란하다. 결국 이곳 상주은빛모래해변 근처 민박집에서 발이 묶인다. 아무래도 하루 쉬면서 그동안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 그나마 마음이 좀 가벼울 것 같다.

11월 4일(목)

날이 무척 따뜻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란다. 며칠을 계속 추위에 시달리다 보니, 가을 날씨란 게 원래 이렇게까지 따뜻했던 건지는 미처 몰랐다. 다행이다. 기왕 예년 기온을 회복한 김에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날이 점점 더 추워지는데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답할 말도 없다. 날이 갈수록 답변이 군색해진다. 날이 추워도 끝까지 간다는데, 그 말이 허풍처럼 들리는지 좀처럼 곧이들으려 하지 않는다. 날이 추워지니까,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걱정이다. 그분들 걱정을 덜어드리려면 날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져야 한다.

오늘은 남해도를 벗어나 창선도를 한 바퀴 돌아서는, 삼천포대교를 넘어 삼천포항까지 달려갈 예정이다. 남해도는 돌산도를 여러 개 가져다 놓은 것처럼 힘든 섬이다. 날씨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내 몸으로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언덕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언덕을 오르면서 숫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다

상주은빛모래해변
 상주은빛모래해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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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은빛모래해변을 떠나자마자 바로 언덕이다. 남해도로 들어와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언덕을 오르면서 계속 숫자를 세는 것이다. 천천히 '일'에서 '백'까지 숫자를 센다. 단지 숫자를 세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숫자를 머리로 그린다. 그렇게 하면 언덕을 오르는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얼마 안 가 미조항이 나온다. 가파른 언덕 아래, 미조항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선다. 미조항 위판장이 갈치와 멸치로 가득 차 있다. 갓 잡아 올린 갈치와 멸치가 위판장 바닥을 하얗게 뒤덮고 있다. 죽어서도 몸통은 여전히 눈부신 은빛이다. 그 빛이 단순히 음식 취급을 받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빛이 좋아서 일부러 이 먼 곳, 남해도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항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빛이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다. 갈치와 멸치는 그 빛이 살아 있을 때, 가장 값이 나간다. 그래서 위판장 한가운데에서는 방금 경매에서 낙찰이 된 갈치와 멸치를 밖으로 실어 나르기 바쁘고, 한쪽 구석에선 오늘 하루 횟감으로 사용할 멸치들을 손질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미조항. 은빛 멸치들.
 미조항. 은빛 멸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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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을 떠난 뒤로는 다시 '언덕'에 집중한다. 오늘 이 싸움에서 지면, 다시 하루를 더 남해에서 머물러야 한다. 언덕을 오르는 속도가 전체 속도를 좌우한다. 그래서 오늘은 언덕에서도 쉬어갈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어든다. 아침 추위 때문에 겹겹이 껴입은 옷이 한낮이 되면서 물먹은 솜옷처럼 무거워진다. 축축한 느낌이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덕에서조차 쉼 없이 페달을 밟은 덕에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시간에 창선교를 넘는다. 이 다리를 건너면 창선도다. 창선도는 이상하리만치 남해도를 빼닮았다. 생긴 모양이 남해도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것과 같다. 크기는 작지만, 힘들긴 마찬가지다.

창선도로 들어서기 전에, 창선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죽방렴'이 장관이다. 삼각형 모양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대형의 고기 덫이 남해도와 창선도 사이, 지족해협 여기저기에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다. 지족해협을 지나가야 하는 물고기들에게는 이보다 더 위험천만한 길이 없다. 덫을 얼마나 많이 놓았는지 물고기들이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확률이 상당히 희박해 보인다.

지족해협. 죽방렴.
 지족해협. 죽방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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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리 어부방조림.
 물건리 어부방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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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도에서 삼천포가 지척이다. 바다 건너 삼천포 화력발전소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하늘 위로 높게 솟은 세쌍둥이 굴뚝이 좀처럼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와 간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다리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간다. 언덕은 왜 또 그렇게 가파른지 걸어서 오르는데도 힘이 들어 쓰러질 지경이다. '공룡발자국 바위'를 찾아가는 길이 특히 숨이 막히게 가파르다.

공룡발자국 바위에는 표면에 코끼리가 밟고 지나간 것 같은 흔적이 여러 개 남아 있다. 공룡알화석에 공룡발자국까지 도대체 한반도에 얼마나 많은 공룡이 살았던 것일까? 안남마을의 엇석도 그렇고, 한반도 바닷가에는 수백만 년 수억 년에 걸쳐 형성이 된 보물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공룡발자국 화석지.
 공룡발자국 화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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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 바위를 떠나서는 곧바로 삼천포로 향한다. 창선도에서 삼천포로 넘어가는 데 무려 4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창선도와 삼천포 사이에 있는 3개의 섬을 징검다리 삼아 그 위에 4개의 다리를 걸쳐 놓았다.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다리가 창선대교다.

창선대교는 창선도와 늑도 사이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늑도대교, 초양대교, 삼천포대교 순이다. 늑도대교는 늑도와 초양도 사이에, 초양대교는 초양도와 모개섬 사이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천포대교는 모개섬과 삼천포 사이를 잇고 있다.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섬 중에 늑도가 가장 크다. 늑도도 엄연히 섬인데 해안선 여행을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창선대교를 건너 오른쪽 곁길로 돌아 내려가면 포구가 나온다. 그 포구 위로 횟집 등의 음식점과 숙박업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느 섬과 다를 것이 없다.

창선도의 한 해안도로
 창선도의 한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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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도대교 위. 조업을 마치고 포구로 돌아가는 배들.
 늑도대교 위. 조업을 마치고 포구로 돌아가는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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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와 같은 놈이냐'

포구를 돌아보고 다시 올라오는 길에 도로 밑을 관통하는 터널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차량 출입 금지', '위험' 표지가 붙어 있다. 터널 안으로 작은 오솔길이 보인다. 어디로 가는 길인지, 그 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위험 표지를 무시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솔길 옆으로 주택 몇 채가 보이는데 대부분 폐가다. 상당히 으스스한 분위기다. 그 길 끝에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게 분명해 보이는 횟집과 폐교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곳은 일종의 버려진 땅이다. 섬에 육지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이면서, 그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편과 저편이 완전히 운명을 달리했다. 양쪽 다 살릴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한쪽이 거의 아사 상태다.

버려진 횟집 옆에 텐트 하나가 쳐져 있다. 한 남자가 텐트 앞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첫인상에서 만만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남자다. 호기심에, 이 추운 날 사람이 지나다니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그는 이곳에서 벌써 4개월째 '휴양 중'이다. 전국 방방곡곡 '휴양'을 가보지 않은 곳이 드물다. 그가 묻는다, '너는 뭐하는 중이냐?'고.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번엔 '얼마나 됐냐?'고 묻는다. '집을 나선 지 한 50일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라면을 먹다 말고 아예 나를 향해 돌아앉는다.

내가 자신과 같은 '떠돌이'임을 간파한 거다. 그러면서 '무전여행을 하는 거냐?'고 묻는데 그 말이 마치 너도 나와 같은 놈이냐고 묻는 것 같다. 그 말엔 혹시라도 그가 실망할까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가 묻지도 않은 말을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말이 너무 엄청나서 그대로 옮겨 담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베트남 종전 두 달 전에 전선에 투입됐다. 내가 알기로 베트남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다. 동료 군인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가고,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하는데 베트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어느 정도로 잔인했냐면, 신대륙 발견 이후 양키가 인디언을 학살한 것과 똑같다.

제대 후엔 세계 여행을 한 모양이다. 외국에 나가 몸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던 장면을 열심히 설명한다. 젊어서부터 방랑벽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30여 분이 지나 내가 그만 떠날 기미를 보이자, 그가 갑자기 텐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커피 한잔하고 가라는 것이다. 그만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한참 텐트를 뒤지더니, 결국 커피를 찾지 못한다. 그 다음엔 콜라라도 한잔하고 가란다. 결국 김이 다 빠진 콜라 한 잔을 얻어 마시고서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눈다.

그때 나를 보내던 그의 쓸쓸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날이 점점 더 추워지는데 언제 돌아갈 거냐'고 했더니 '이까짓 거 바로 걷어서 집으로 보내 버리면 된다'고 했다. 말이 호기롭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 있는 '집'이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인지는 불분명하다. 그가 앓고 있다는 마음의 병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혹여 그 병이 베트남전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말하는 걸로 봐서 그는 결벽증이 느껴질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이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쓰레기 하나 함부로 버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쓰레기 버린 사람을 불러서 반드시 스스로 치우게 만든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 땅도 아니면서 텐트 주변과 바닷가를 청소한다. 그 사이 싸리 빗자루만 대여섯 개가 닳아 없어졌다. 그의 도덕성이 베트남전에서 자행된 부도덕성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삼천포대교까지 2개의 다리를 마저 걸어서 건넌다. 다리가 몹시 무겁다. 하지만 무거운 게 다리만은 아니다. 폐허나 다름이 없는 바닷가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를 혼자 남겨 두고 가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삼천포대교를 건너자 바로 해가 떨어진다. 오늘 하루 달린 거리는 77km, 총 누적거리는 3374km다.

삼천포대교.
 삼천포대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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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남해도, #창선도, #죽방렴, #상주은빛모래해변, #삼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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