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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5년 전쯤 되었을까? 독일에서 왔다는 '디억'이라는 친구가 부인을 앞장세워 찾아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한국인 부인을 앞세운 것이다. 찾아온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독일에서 왔는데, 한국의 무속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3년 동안 한국의 무속을 연구해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반문을 했다.

"왜 하필 3년이냐. 3년 동안 한국의 무속을 다 알기란 쉽지가 않다"
"독일의 대학에서 생활비와 조사비 등을 받기 때문에 3년 기한이 정해져 있다"

3년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전통문화애 대한 자료를 조사했다.3년 후 돌아갈 때는 수집한 자료가 적은 컨테이너로 하나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
▲ 우리무속을 연구하러 왔던 디억 3년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전통문화애 대한 자료를 조사했다.3년 후 돌아갈 때는 수집한 자료가 적은 컨테이너로 하나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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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이 친구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3년간 생활비와 활동비를 주면서 한국의 무속에 대해 연구를 하라고 파견을 보낸 장학생이었다. 물론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었지만, 대학에서 경비를 들여가면서 한국의 무속을 연구하라고 보냈으니, 자신은 장학생이라는 것이다.

굿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이제는 이해하여야 한다
▲ 굿상 굿을 폄하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이제는 이해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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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속에 관심을 갖는 외국

왜 서구사회가 우리 무속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무속 안에 우리의 정신세계인 무형의 문화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무형의 문화란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를 잡는다.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고 해도 이러한 내적사고는 변하지가 않는다. 일제치하에서도 일본은 이런 것을 일찍 간과했다. 1920년대에 행해진 우리문화말살정책은 바로 우리의 무형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바다.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우리의 무형의 문화를 마을단위로 세세하게 조사를 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우리문화를 말살하지 않는 한, 온전한 지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전국의 굿판에 가면 무수한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은 그렇다 치고 서구인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들은 왜 우리의 전통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 안에 우리의 정신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본질을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종합적인 예술체제로 행해지는 굿을 보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 굿의 이해를 하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한국을 찾아오고, 전국의 굿판을 누비고 다닌다.

봉화군 법전리에 있는 당집. 할아버지당과 할머니 당이 거리를 두고 서 있다
▲ 봉화법전리 당집 봉화군 법전리에 있는 당집. 할아버지당과 할머니 당이 거리를 두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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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우리사회는 전통 신앙을 외면하고 있는데

벌써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 중 무형유산으로 등재가 되어있는 강릉단오굿 행사장을 찾은 적이 있다. 무대에서 한창 단오굿 보유자가 굿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어느 교회인가에서 버스를 대절해 왔다는 50여 명이 앉아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연신 찍어대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그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네스코에서 그 가치를 인정한 단오굿 행사장에서 보이는 이런 추한 모습이, 한 마디로 우리 무형문화유산의 현주소란 생각이다. 우리가 인정하지 못하는 이런 무형의 문화유산들이 얼마나 대우를 받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한 마디로 참담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어디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불화가 있을 수 있듯, 이런 무의식을 행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적문제가 야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부의 사람들로 인해 그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어 진다면 그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3년 후 돌아갈 때 컨테이너로 하나 가득한 자료

3년 동안 그 '디억'이라는 친구는 열심히 전국을 돌아다녔다.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다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3년인가 지나서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세 들어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동안 자신이 우리나라에 와서 찍고 모은 우리 전통문화에 관련한 자료가 작은 컨테이너로 하나라는 것이다.      

충북문화재자료 제13호  괴산군 청암면 문당리 서낭
▲ 서낭 충북문화재자료 제13호 괴산군 청암면 문당리 서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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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놀라움이다. 머리가 띵해지는 것이 모골이 송연해진다. 3년 만에 수집한 자료가 컨테이너로 하나라니. 나는 과연 20여 년을 우리 민속을 연구했다고 하면서 그만한 자료가 있는지 생각을 해본다. 한 마디로 충격적이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수집을 했기에 컨테이너로 하나가 된다는 이야기인가?

A4용지에 빼곡하게 몇 장이 적힌 목록을 훑어보았다. 굿판에서 찍은 슬라이드 필름만 수 천통이다. 거의 전국의 굿판에 대한 자료는 다 들어있다. 거기다가 마을마다 행해지는 각종 제의식인 장승제, 산신제, 서낭제 등의 자료까지도 조사를 했다. 심지어는 각종 무구며 무복까지도 구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는 터주가리며 성주대, 조상단지까지도 조사목록에 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취합을 했다는 것인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물어보니 잘 모르기 때문에 가져가서 더 연구를 하려고 들고 가는 것이란다. 우리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소홀히 대하고 있을 때, 정작 우리의 무형의 문화는 나라를 떠나고 있었다. 우리 정신이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농 등을 기원햇다. 이러한 기원을 하면서 공동체를 창출했다
▲ 광주군 무갑리에 서 있는 장승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농 등을 기원햇다. 이러한 기원을 하면서 공동체를 창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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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신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정신문화는 어디에 자리를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처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우리의 정신세계는 남다르다. 이기주의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나눔이고 소통이다. 그리고 어우러짐과 공동체다. 이러한 정신세계를 깡그리 잊어버린 지금에 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상숭배, 미신 등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면, 그것은 이 나라에 살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다. 줄을 다리면서 힘을 배양하고 공동체를 창출했으며, 자연을 지켜왔다. 산신제 혹은 장승제를 지내면서 하나로 뭉쳐지는 힘을 키워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일제는 미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아직도 그런 일제의 용어를 써가며 내 나라의 정신세계를 핍박하고 있는 자들이 부지기수이다.

정작 우리가 우리의 정신세계에 대해 폄하를 거듭하고 있을 때, 우리의 정신은 컨테이너에 실려 멀리 가버렸다. 그러한 우를 반복하고 있는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들어와 많은 것들을 들고 가버린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떠들고 있을 때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는 수도 없이 타국으로 슬그머니 사라져갔다. 이제 그 하나를 되찾아 오기까지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내 것을 내가 찾아오는데 대가를 지불하는 그러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마저 빼앗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월 대보름 전날 인근의 주민들이 모여 줄을 당김으로써 공동체를 창출하고, 나아가 겨우내 쓰지 않았던 몸을 추스렸다
▲ 정남 줄다리기 정월 대보름 전날 인근의 주민들이 모여 줄을 당김으로써 공동체를 창출하고, 나아가 겨우내 쓰지 않았던 몸을 추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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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힘을 다해 줄을 당긴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한바탕 뒤풀이를 펼친다. 2000년 정월 열나흩날 정남면 보통리에서
▲ 줄다리기 서로 힘을 다해 줄을 당긴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한바탕 뒤풀이를 펼친다. 2000년 정월 열나흩날 정남면 보통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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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두려운 것은, 그 안에 우리의 정신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임의 본질이 바로 우리의 영고, 동맹, 무천서부터 끊임없이 이어 온 정신세계다. 남녀노소가 3일 밤낮을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면서 만들어 온 '우리'라는 공동체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스스로 되물어보자. 우리의 정신세계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를. 


태그:#민속문화, #굿, #제, #정신세계,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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