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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법인 병원' 도입에 이어 개인질병정보까지 넘기자?

아무래도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이 2라운드 싸움에 접어드는 것 같다. 작년과 똑같이 '영리법인 병원' 도입에 이어 금융위원회가 '개인질병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정부가 촛불의 뜨거운 맛을 보며 뒤로 물러섰는데, 이제는 매우 공세적인 자세로 나서고 있다. '윤증현'이란 구원투수가 나섰기 때문이다. 마치 어제 끝난 WBC에서 무려 5번이나 맞붙은 한일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개인질병정보를 금융위원회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국무총리실에서 관련 부처간 논의가 진행 중인데도 보험업계는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을 통해 '보험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11월 4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바로 전날 금융위원회가 전국민 개인질병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 개인질병정보 노리는 보험업법 개정안 철회하라 2008년 11월 4일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바로 전날 금융위원회가 전국민 개인질병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 건강세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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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 2.2조 원의 진실

개인질병정보에 그토록 집착하는 보험업계와 그 태도를 대변하여 개정법률안을 제출한 공성진 의원은 '보험사기'를 방지하기 위함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연간 2조 원이 넘는 돈이 보험사기로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통계는 상당히 부풀려져 있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문제의 수준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

하나씩 따져보겠다. 보험개발원은 2007년도 보험사기 규모를 2.2조 원이라고 추정했다. 2.2조 원, 상당한 규모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것을 어떻게 추정했을까?

이것은 매우 간단하다. 금융감독원은 2007년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2045억 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보험사기를 적발하지 못한 금액이 대략 10배쯤 된다고 단순 추정했다. 그래서 적발하지 못한 보험사기 규모가 2조 원쯤 될 것으로 추정한 다음, 실제 적발한 2천여 억 원을 더해 2.2조 원의 규모가 된 것이다.

결국 실제 적발금액을 10배 더 뻥튀기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 웃기는 일이 있다. 이렇게 계산해놓고, 실제 적발금액은 추정금액의 9%밖에 안 된다고 또다시 거꾸로 계산하여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 규모를 추정할 때 실제 규모보다 1.1배 해놓고, 또 다시 실제 규모는 추정규모의 9%밖에 안 된다는 순환논리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

'보험사기'의 근본원인은 놔둔 채, 국민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면 된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7년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2045억 원이었는데, 이 중 80.8%에 해당하는 1652억 원이 손해보험 업계에서 발생했다. 생명보험 업계에서는 약 20% 수준으로만 발생했다. 혐의자로 보자면 손해보험에서 발생한 것이 92.6%에 해당한다.

작년 11월 3일 금융위원회의 보도자료에서 금융감독원의 보험사기 적발 실적을 이와 같이 밝혔다. 이 내용중 비율을 보완하였다.
▲ 금융감독원의 보험사기 적발 실적 작년 11월 3일 금융위원회의 보도자료에서 금융감독원의 보험사기 적발 실적을 이와 같이 밝혔다. 이 내용중 비율을 보완하였다.
ⓒ 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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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손해보험에서 보험사기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선 '실손 보상'이라는 손해보험 상품의 특징과 특히 자동차보험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전문가들은 손해보험에서 발생하는 보험사기 중에서 70~80%가량이 자동차보험에서 발생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생명보험의 경우 '정액 보상'의 특징으로 인하여 사망이나 절단 등 중증사고인 경우 보상금액이 크지만, 경미한 질병이나 사고로 입원하거나 치료를 받으면 보상받는 금액이 적은 편이다. 이로 인해 생명보험에서 보험사기는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보험사기'가 발생하는 것은 '실손보상'이라는 상품의 특징 때문에, 그리고 자동차보험의 제도상 허점으로 인한 요인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여 보험사기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려는 노력보다 전 국민의 개인질병정보를 활용하겠다는 행정편의적 사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행정편의를 위해 국민의 인권 침해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실용적 판단이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인권위원회는 더욱 커지고 왕성한 활동을 해야만 할 것이다.

현행법으로도 보험사기 수사 충분히 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은 현행법으로도 보험사기 수사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데 있다. 형사소송법 199조, 경찰관직무집행법 제8조에 의하더라도 수사제기 또는 범죄사실 확인이 가능함에도 국민들이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개인질병정보를 금융위원회가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문제다.

금융위원회에 이런 권한을 부여할 경우 남용 가능성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더욱이 보험회사가 특정 인물에 대해 확인해달라고 요청할 경우 확인 후 결과에 대해 요청한 보험회사에 아무런 회신을 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인데, 그런 과정을 통해 개인정보는 보험회사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국민건강보험공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 공성진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에는 단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개인질병정보만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및 공공기관'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다음과 같은 기관이 보유한 개인질병정보도 모두 금융위원회가 자료를 요청하여 볼 수 있게 된다. 열거해 보겠다.

<국립대학병원>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 경북대병원, 경상대병원, 충남대병원, 충북대병원, 강원대병원, 제주대병원

<국립병원>
국립의료원, 국립암센터, 국립재활원, 국립서울병원, 국립공주병원, 국립춘천병원, 국립목표병원, 국립나주병원, 국립소록도병원, 국립부곡정신병원 등

<시립병원>
서울시립동부병원, 서울시립서대문병원, 서울시립보라매병원, 서울시립은평병원 등

<지방의료원>
서울경기(9개) - 서울, 인천, 수원, 의정부, 안성, 이천, 파주, 포천, 경기도립
전라도 (5개) - 군산, 남원, 순천, 강진, 목포
경상도 (8개) - 부산, 대구, 포항, 김천, 울진, 안동, 마산, 진주
충청도 (6개) - 청주, 충주, 천안, 공주, 홍성, 서산
강원도 (5개) - 원주, 강릉, 속초, 영월, 삼척
제주도 (2개) - 제주, 서귀포

<보건소>
전국 구․시․군 250개 보건소 전체

<기타 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전국의 국공립 초중고등학교 (학생건강기록),
국방부 병역신체검사 결과 (대한민국 남성 전체)

이쯤 되면 기가 막힌다. 전 국민의 정보를 보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중 과연 누가 여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국민 여론이 무섭지 않은가?

작년 연말, 전국 20여 개 시민사회노동보건의료단체가 포함되어 있는 건강연대에서 전국적으로 20세 이상을 대상으로 지역, 성, 연령을 고려한 750명을 표본으로 하여 개인질병정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79%가 개인의 질병정보에 대하여 허락 없이 타인이 열람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응답하였다.

또한 아무리 '보험사기' 근절을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금융위원회가 개인정보를 열람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견이 53.9%로 찬성 21.5%의 두 배가 넘었다. 그리고 응답자의 88.9%는 개인질병정보는 더욱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08년 연말 건강연대에서 전국 20세 이상 성인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임.
▲ 개인질병정보를 타인이 허락없이 열람하는 것을 허락할 것인가 2008년 연말 건강연대에서 전국 20세 이상 성인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임.
ⓒ 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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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여론이 이런데도 보험업계는 계속 밀어붙이며 추진하고 있다. 국무총리실에서 논의하는 것만으로 부족해 여당의원을 동원해 의원발의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섬기려 하지도 않는 정부와 보험업계, 그들에게 국민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또다시 국민적 촛불저항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창보 기자는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장입니다.



태그:#개인질병정보, #건강세상네트워크, #보험업법 , #공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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