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해산바라지로 미국에 가는 선배 내외

 

나는 강원도에서 선배는 충청도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건만 거의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지낸다. 때로는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로 티격태격하지만 하루하루 지질구레한 일상사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다. 아울러 보통사람들이 늙을수록 대화와 친구의 소중함이 필요함을 절감케 한다. 

 

그런데 이 선배가 곧 미국에 두어 달 다녀올 계획이라고 한다. 사연인즉, 미국 LA에 사는 따님의 둘째 아이 해산달이 다가오기에 부인이 해산바라지를 하기 위해 가는데 동행한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베이징에 사는 며느리 해산바라지로 갔다 온다고 석 달을 머물다 왔다.

 

나는 첫 아이면 몰라도 둘째 아이인데 뭘 부인 따라가느냐고 핀잔을 주자, 선배 말이 한국에서 혼자 남아 밥해먹기 싫어서 그런다는 답변이었다. 그 답변에 나는 또 "참, 선배님 구닥다리로 산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형수님에게 꼬박꼬박 세 끼 밥 얻어먹고 사느냐? 참 형수님 마음씨도 좋다"고 이제라도 혼자 사는 법을 익히라고, 먼저 경험한 사람처럼 일깨워드렸다.

 

오래 전부터 아내는 나에게 "당신은 혼자 사는 연습을 하라"고 교육시킬 뿐 아니라, 때때로 실습을 시켰다.

 

말인즉,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나중에 며느리나 딸에게 밥 얻어먹고 살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귀에 익도록 일러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는 산골 시골마을에도 2대 3대가 오순도손 사는 집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거의 늙은이 내외만 살거나, 혼자 사는 노인집이 대부분이다.

 

자연계에서 수컷은 인기가 없다

 

2004년 초, 미국 메릴랜드 주에서 한 달여 지내면서 그곳에서 발행하는 미주 한국일보를 보니까, 재미동포 가운데 50대 이상 남성 중 50% 이상이 혼자 산다고 보도했다. 그 이유로는 배우자와 사별, 이혼, 직업 상 또는 가정 파탄 등이라고 했다. 그때 그 기사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읽었는데, 자세한 통계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도 곧 그 수치를 따라갈 것 같다.

 

며칠 전 어느 기자가 쓴 '송아지 값이 3만원, 이게 말이 됩니까?'라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라 읽으니까, 그 송아지가 젖소 수놈이라 하여 애초의 놀람은 반감되었다. 그 송아지가 고기로서 인기 없는 젖소에다가, 키워 봐도 젖도 짤 수 없는 수놈이기에, 그야말로 고기값도 못 받는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수평아리 신세나 다름이 없는 신세로 보였다.

  

사실 자연계에서 수컷은 인기가 없다. 수펄이란 놈은 빈둥빈둥 놀며 지내다가 운 좋게 여왕벌과 교미 한번 하고 나면 쫓겨나기 마련이다. 소도 돼지도 개도 수컷은 별로다. 시장에서 값도 암컷보다 훨씬 낮다. 닭은 아예 선택받은 몇 마리 수컷만 주인이 키우나 나머지는 태어나자마자 살 처분 당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남존여비 관습으로 수컷들이 행세하면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별별 인권유린이 다 벌어졌는데, 심지어 여자가 자식을 낳지 못하면 시집에서 내쫓을 수 있는 '칠거지악'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여성들이 자식, 특히 아들을 낳고자 드리는 치성은 눈물겨웠다. 심지어는 뱃속의 태아가 여성일 때는 인공임신중절까지 마다하지 않는, 반 인륜적, 반 자연적인 행태로, 우리 사회에 심각한 남성 인구 초과 현상을 낳게 하여, 그 후유증의 하나로 지금 이웃나라에서 신붓감을 수입하는 일까지 반 인륜적인 사태까지 초래하고 있다.

 

남녀 성차별의 벽이 허물어졌다

 

사실 지난 시대 우리나라는 남성 중심의 사회로,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누리며 살아왔다. 여성들은 가사에 육아에, 심지어는 농사일까지 도맡다시피 평생을 젖은 손으로 살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시부모나 남편 조석 봉양 때문에 어디 가서 마음 편히 하룻밤 자고 오지도 못할 만큼, 세 끼 밥하는 일에 얽매어 살았다. 

 

1999년 여름 항일유적지 답사 길에 중국 선양에서 이른 아침 시내를 스케치하는데, 남자들이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는 행렬로 거리를 메웠다. 중국에서 오래 사신 길안내 김중생(일송 김동삼 손자) 선생은 중국에서는 남자들이 시장만 볼 뿐 아니라, 대부분 요리도 남자들이 한다고 했다. 

 

1992년 스위스에 갔더니, 안내하는 분이 그곳에는 초등학교부터 남자아이들에게도 조리법과 바느질 교육을 시킨다 하여, 앞서가는 나라의 교육은 과연 다르다고 느꼈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도 제6차 교육과정(1995년)부터 종래 남자에게는 기술, 여자에게는 가정이라 하여 분리시켜 가르치던 것을 통합하였고, 제7차 교육과정(2000년)부터는 남녀구분을 완전히 없앴다는 걸 보고서, 우리나라에서도 뒤늦게나마 남녀 성차별의 벽을 허물고 있음을 알았다.

 

하기는 금녀지대인 3군 사관학교에 여성 입학의 문이 열린 지 오래고, 보병부대에 여성 중대장, 공군부대에 여성 조종사까지 탄생한 세태에 남성 몫, 여성 몫을 나누는 것은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리라.

 

아들내외와 살아가는 노시인의 지혜

 

올해 아흔 둘이신 시인 이기형 선생은 늘 늦둥이 아들내외와 오손도순 살아간다고 자랑하셨다. 선생과는 10여 년 전부터 가깝게 지내왔는데, 오래 전 광주시민 공원에서 김남주 시비제막식을 마치고 마침 우리 내외와 동행하여 서울까지 돌아오면서 아들 내외와 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2대가 한 집에서 사는 비결은 부모가 아들 내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몽양 여운형 선생 60주기 기념 인터뷰 후에 선생님에게 요즘 사시는 이야기를 여쭙자, 여전히 아들 내외의 따뜻한 봉양을 받고 사신다고 했다.

 

선생 내외는 직장에 나가는 아들 내외를 위하여 육아와 집안청소뿐 아니라, 심지어 며느리 속옷까지 세탁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내외가 집에 와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온갖 잔일까지 스스로 다하니까, 오히려 아들 내외가 당신들이 없으면 불편하다고, 오히려 한 집에서 같이 살자고 붙잡는다고 했다.

 

얼마 전, 동창 모임에서 동창들이 이런저런 변한 세태를 원망스럽게 이야기하기에, 내가 마무리 말로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만일 짐승으로 태어났으면 대부분 이 나이까지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다. 자신을 위해 시대변화에 순응하는 게 현명하다.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 홈리스(노숙자)는 대부분 남성들이었다."

 

곧 좌중은 대부분 내 이야기에 공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일부는 지난 정권을 탓하고 시대를 원망했다. 그들의 생각을 일깨워 바꾸기에는 너무 사고가 굳어져 있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마땅히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그나마 남은 인생이 덜 비참해질 것이다.

 

늙어도 필요한 사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젊은이들에게 환영받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소외되지 않는다. 그럴 능력이 없다면 행동거지나 사고라도 시대변화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고쳐야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수구꼴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태그:#수구꼴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