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 10월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이 운영하는 지하 식당에서 저는 허병숙 할머니를 처음 봤습니다. 지팡이를 짚으며 한 걸음씩 어렵게 이동하고 한 손으로만 힘겹게 식사하는 딱한 모습을 보면서 그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임금체불과 반신불수 그리고 1년이 넘는 청와대 앞 1인 시위 등 사연은 기구했지만 기사로 다루기엔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정부 기관과 법원도 어떻게 할 수 없게 된 민원, SBS 등 각종 언론 보도에도 도움이 미치지 못한 사건, 중국동포를 돕는 NGO마저 어쩌지 못하고 방치한 문제였습니다.

 

할머니 또한 정부 기관과 언론, NGO 등을 찾아다녔으며 소송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봤지만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하면서 원망과 불신이 매우 컸습니다.

 

그러면 어떤 해결 방법을 찾겠다고 1년 넘도록 1인 시위를 하고 있는가? 그것은 철천지한(徹天之恨)을 품은 싸움, 죽으면 죽었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벼랑 끝 호소였습니다.

 

정부 당국자와 네티즌들에게 호소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허병숙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강추위로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은 어제(31일)도 1인 시위를 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기온 급강화로 인한 '뇌졸중 주의보'가 내려졌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98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데 이어 2003년에도 또 쓰러졌던 할머니, 이번에 쓰러지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길함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냉정할 뿐 아니라 비정한 세상입니다. '늙은 동포 한 명 더 죽는다고 어찌 하겠는가' 하는 듯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비인도적인 정부와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 중국인이다, 불법체류 조선족을 추방하라!'는 몰지각한 네티즌들에게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이제 우리는 '체불임금 청산을 호소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하던 반신불수의 중국동포 노인이 결국 사망했다'는 비보(悲報)를 기다려야만 합니까? 제 민족을 불법체류자라며 내쫓는 지구상의 희한한 분단국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세계인들은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래선 안 된다고, 할머니를 차디찬 관에 누워 수화물 칸에 실려 가게 해선 결코 안 된다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한 푼 두 푼 모은 성금을 할머니의 귀향 여비에 보태면서 민족의 비극을 외면한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고, 그리하여 맺힌 한을 풀고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 연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성과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38따라지 아바이와 조선족 할머니

 

평안남도 대동군 용연면 천리

 

허병숙 할머니 고향 보내드리기를 하면서 북녘 사람 '아바이'가 생각났습니다. '난리통이니 잠시 잠깐만 피해 있다 만나자' 하시며 배웅하던 '오마니'(저에겐 할머니)와 그 헤어짐이 영영 생이별이 되었다는 제 아바이 백천(白川) 조씨가 생각났습니다. 함께 피난 내려와 죽을 고생을 하다 중풍 맞고 쓰러진 큰아바이도 떠올랐습니다.

 

'38 따라지' 백천 조씨 아바이와 '조선족'인 허병숙 할머니

 

고향 오마니를 울며불며 그리다 행려병자로 세상을 뜬 아바이, 한 줌 재 되어서야 고향 갔을 아바이와 할머니가 겹쳤습니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고향과 가족에게 오도 가도 못한 '38 따라지'(당시 피난민들을 비하한 명칭) 아바이와 침략자 일제와 굶주림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귀향길이 막히면서 중국 사람이 된 '조선족' 할머니가 겹쳐졌습니다.

 

할머니에게 아바이의 사연을 들려드리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할머니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38 따라지'와 '조선족'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8 따라지'의 아픔을 듣고, 보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은 후예로서 할머니를 돕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어지는 성금과 동참의 손길들... 맺힌 한을 어떻게 풀어드릴까?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 가족에게 보내드리는 모임'(대표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 할머니의 맺힌 한 풀어드리기 ▲ 할머니가 고향 보내드리는 일에 협조하게 하기 ▲ 정부가 인도적 책임을 지게 하기 등을 과제로 정했습니다. 체불임금 1050만원 해결보다 앞서 해결해야 할 것은 철천지 한을 풀어드리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함께 허병숙 할머니 후원에 대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체불임금을 받으려는 할머니의 1인 시위를 동정에 의한 후원으로 왜곡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며, 아울러 '체불임금을 받아낼 경우 할머니를 위한 모금은 또 다른 중국동포를 돕는 데 사용'하기로 정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1050만원을 받아 연길로 돌아가게 해주세요!"를 통해 허병숙 할머니 고향 보내드리기 사연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과 마음들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허병숙 할머니 고향 보내드리기에 동참한 하름교회(담임 정언용 목사)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교회에서 열린 '갈무리콘서트'를 통해 200만원의 성금을 모아주셨습니다. 아울러 이름 밝히기를 원치 않는 무명의 집사님이 30만원, 또한 모 교회 목사께서 30만원의 상품권을 각각 후원하셨습니다. 이와 함께 몇 분이 동참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오세훈(49·굿브릿지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OECD 회원국으로 11위 경제대국이 할머니 문제를 외면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인도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1년 넘게 방치한 청와대의 경직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구한동(46) 목사는 "할머니를 고향에 보내드리는 일은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일하라고 부탁한 예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면서 한국 교회의 동참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좋은 일을 하다보면 오해 살 수도 있다"면서 사심 없는 마음과 투명한 방식으로 추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연락처 : '중국동포 허병숙 할머니 가족에게 보내드리는 모임' 간사 조호진 010-3618-6020 
/ 메일 : tajin119@hanmail.net 



태그:#반신불수, #중국동포, #청와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