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혁신의 노예]
라이더법 1년 6개월,
스페인 배달앱 업체들의 대응과 변화

76개항 단협 체결도 있지만... 글로보,
꼼수 썼다가 1100억 벌금 부과

4.

스페인

글.류승연

사진.이희훈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배달원 종사자는 45만 명. 배달앱 라이더와 택배, 우편 종사자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이는 3년 전에 비해 10만 명이 넘게 늘어난 것입니다. 현재 배달앱 라이더만 집계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온라인을 통한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2017년 2조 7326억 원에서 2021년 25조 6847억 원으로 연 평균 75.1% 폭발적인 상승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배달앱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2021년 5월 라이더 권익보호법안을 만든 스페인을 찾아, 두 나라 라이더들의 일상이 어떻게 다른지 그 나라의 변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말]

페르난도 가르시아 사진
페르난도 가르시아

"나는 원래 지옥에 살았다.
노동자가 된 후부턴 천국에 산다."

스페인의 가장 대표적인 노동조합 중 하나인 UGT(Unión General de Trabajadores)의 라이더 분과 위원장이자 글로벌 배달앱 기업 글로보(Glovo)의 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페르난도 가르시아(43)의 이야기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의 과거는 늘 불안했다. 알고리즘의 감시망 속에 전전긍긍했고, 하루 14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면서도 불안정한 급여에 시달렸다. 하지만 노동자가 된 후 그의 삶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는 현재 하루 8시간으로 정해진 일과 속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보장받고 있다. 그는 '노동자가 된 소감을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더 많이 벌고 더 적게 일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페르난도 인터뷰 하는 사진

하지만 그는 곧 목소리를 낮추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불편한 진실이 남아 있다"고 운을 떼면서다. 그는 "라이더법이 제정된 지 1년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글로보 노동자 10명 중 8명은 여전히 '가짜 자영업자'로 일하고 있다"며 "스페인 배달앱 기업들의 '꼼수'와 '사기'로 정규 노동자가 된 이들은 천국에 사는 반면 나머지 라이더들은 여전히 지옥을 산다"고 말했다.

노상에서 대화 나누는 글로보 라이더들

라이더법 제정 1년 반...
기업들 꼼수도 등장

2021년 5월 탄생한 '라이더법'이 제정 1년 6개월을 맞았다. 라이더를 '진짜 노동자'로 인정한 건 유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르시아의 말처럼 정규직으로 전환된 라이더와 그렇지 않은 라이더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배달앱 기업들이 법 제정 이후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라이더법에 긍정적이었던 저스트잇(Just Eat)은 라이더들과 단체협약까지 체결한 반면, 우버이츠(Uber Eats)는 하청업체를 통해 라이더를 충원해 사실상 직고용을 피해갔다. 무엇보다 스페인 배달앱 시장 1위 사업자 글로보는 일부 라이더를 직고용했지만 여전히 가짜 자영업자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영국계 배달앱 운영사인 딜리버루(deliveroo)는 아예 스페인 시장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현재 스페인 배달앱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시장 지배 사업자 지위를 놓고 모든 기업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 주문량만 보면 스페인 배달앱 시장 1위 사업자는 글로보지만, 사용자 선호도 등 다른 기준으로 순위를 매길 때 2위 사업자인 우버이츠나 3위 사업자 저스트잇이 1위로 올라서기도 한다.

실제 데이터를 통해서 본 기업간 점유율 차이도 미미한 수준이다. 컨설팅 회사 '스마트미 애널리틱스(Smartme Analytics)'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스페인 전체 배달 주문 가운데 글로보를 통한 주문이 25%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버이츠와 저스트잇이 각각 21%, 18%로 그 뒤를 이었다.

이 밖에도 독일계 배달앱 '고릴라스(Gorillas)', 터키 배달앱 '게티르(Getir)', 미국 배달앱 '고퍼프(GoPuff)' 등 글로벌 스타트업들이 틈새 시장을 공략하며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2022년 2분기
스페인 배달앱 시장 내 점유율

글로보 로고
우버이츠 로고
저스트잇 로고
배달앱 3사 시장 점유율 그래프

출처: 스마트미 애널리틱스(Smartme Analytics)

저스트잇 라이더 야간 배달 뒷모습

최초 라이더와
단협 체결로 생긴 변화들

"저스트잇이요"

현지에서 만난 라이더들은 '스페인에서 라이더법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배달앱 기업이 어디냐'는 질문에 하나 같이 저스트잇을 지목했다. 그도 그럴 게 저스트잇은 지난해 12월 17일 CCOO(Comisiones Obreras), UGT 등 스페인 내 가장 큰 두 곳의 노동조합과 페이지 수만 48쪽, 총 76개 조항에 이르는 단체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단협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회사와 노조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기본 급여를 8.5유로로 정했다. 이에 따른 기본 연봉은 1만 5200유로. 통상 한 해 월급을 14번 지급해야 한다는 스페인 근로기준법을 감안해 산출한 값이다. 야간 수당도 있다. 밤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근무할 땐 시간당 기본급이 10.625 유로로 25% 인상된다. 정해진 근무 시간을 제외한 '공휴일'에 근무할 때 시급은 기본급의 두 배인 17유로로 뛴다.

하루 최대 근로 가능 시간은 9시간. 기본적으로 '스케줄 근무'의 형태지만, 노동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업무 종료 시점과 직후 업무 시작 시간 사이에 최소 12시간의 '텀'을 두기로 했다. 노동자들에겐 1년에 30일의 유급 휴가가 주어진다. 또 회사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단체 상해보험에도 가입한다. 이 보험에 따라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장애가 생길 때 4만 유로를 지급받을수 있다.

이처럼 기본적인 노동 조건뿐 아니다. 단협엔 라이더의 업무 특수성을 고려한 규정도 적시돼 있다. 가령 회사는 노동자에게 기본적인 작업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 배낭과 휴대전화, 오토바이·자전거 등 세 가지가 기본적인 작업 도구다. 다만 노동자가 자신의 오토바이로 업무를 수행하길 원할 때 회사는 유류비, 차량 유지 보수비 등의 명목으로 1km당 0.15유로를 보상해야 한다.

또 '칼퇴(업무가 끝나면 바로 퇴근)'가 가능하도록, 라이더는 퇴근 시간 15분 이내 들어오는 콜에 한해 수락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오후 3시에 업무가 끝나는데, 2시 47분에 콜이 들어온다면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 또 주말에 일이 몰리는 라이더 업무 특성상, 휴가가 반드시 주말일 필요는 없지만 매주 이틀을 연달아 쉬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최소 분기당 한 번은 일요일을 포함한 휴가가 주어져야 한다.

저스트잇이 단협 체결에 유독 적극적이었던 건 '회사 이미지 전략' 때문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페르난도는 "저스트잇은 스스로 법을 잘 지키는 회사라고 광고해왔다. 그 만큼 단협안 토대로 법을 잘 지킨다는 기업 이미지를 유지·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저스트잇 라이더 야간 배달 뒷모습

변해버린 저스트잇,
'우회로' 택한 우버이츠,
시장 떠난 딜리버루

다만 저스트잇도 애초 라이더법 수호를 외쳤던 초기와는 달리 하청업체를 통한 관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 라이더법 시행 후 모습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공식적으로 취재를 요청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라이더들이 모여 만든 단체 '라이더의 권리(Riders X Derechos, RXD)' 대변인 누리아 소토(Nuria Soto)는 "하청업체 노동자여도 '노동자'인 만큼 가짜 자영업자보다는 노동 여건이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협 체결 후 저스트잇의 태도가 달라진 것 또한 사실"면서 "앞으로 해결해야 나가야 할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전원을 직고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저스트잇과는 달리, 우버이츠는 법 시행 초기부터 하청 계약 방식을 고집해왔다. 한편 스페인 배달앱 시장의 주요 업체였던 딜리버루는 경영상의 문제가 겹치면서 2021년 11월 아예 스페인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로 인해 3800여명에 달하는 라이더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라이더를 보호한다는 취지의 라이더법이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하지만 UGT 라이더 분과 위원장인 페르난도의 평가는 다르다. 그는 "라이더법으로 살아남는 배달앱 기업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그게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며 "기업들이 노동자 고용할 돈을 아껴 시장 점유율을 키울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에게뿐 아니라 투자자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배달앱 기업들은 대부분 적자 경영을 하고 있어요. 성장 가능성을 담보로 투자를 유치하고 재투자해 시장 점유율을 키우는 식이죠. 그런데 언젠가 성장이 더뎌지면 투자금이 없어 비용 부담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이익을 내기 위해 수수료를 높여야 할 텐데 소비자·식당 반발로 이 또한 쉽지 않고요. 결국 1위 사업자 지위를 얻는 데 실패한 몇몇 기업들이 무너지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투자자들일 거예요."

저스트잇 라이더 야간 배달 뒷모습

라이더법 피해갈
강력한 '꼼수' 고안한 글로보

문제는 스페인 배달앱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의 꼼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위 사업자 글로보가 약 1만명에 달하는 라이더 중 2000명을 직고용하면서도, 남은 8000명은 하청 형태로 '가짜 자영업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보는 법 제정 초기 창고형 마트에서 물품을 직배송하는 '글로보 익스프레스'에 한해 라이더를 노동자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글로보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글로보는 라이더들의 유연성과 자율성, 자유를 믿는다"며 "우리는 이 같은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모든 국가 법규에 맞는 규정을 따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스페인에서 글로보는 라이더법을 준수하면서도 고용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며 "어떤 도시에 있는 어떤 라이더에게든 이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글로보의 이 같은 꼼수에 우버이츠 등 경쟁 업체에선 '라이더법 지킨 회사들만 바보됐다'는 식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 스페인 우버이츠의 총 책임자인 코트니 팀스(Courtney Tims) 대표는 지난 3월 스페인 제2부총리이자 노동·사회 경제부 장관인 욜란다 디아즈(Yolanda Díaz)에게 불만이 가득 담긴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라이더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오히려 법을 지킨 회사들이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며 사실상 글로보를 저격해 "라이더법을 지키지 않는 가장 큰 스페인의 유니콘 기업처럼 우리 또한 프리랜서와 협력해 (글로보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이냐"고 한탄했다.

글로보의 '꼼수'가 시정되지 않자, 최근 우버이츠 역시 라이더를 자영업자로 보이도록 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자체 개발해 운영 중이다.

스페인 시내와 글로보 라이더 뒷모습

스페인 정부가 '글로보 잡기'
나선 이유

그러자 스페인 정부는 라이더법의 시장 정착이 사실상 글로보의 '준법 여부'에 달렸다고 보고 글로보에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며 '글로보 잡기'에 나섰다.

지난 9월 21일 욜란다 디아즈 스페인 제2부총리는 "글로보가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노동 감독관의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글로보 측에 위법에 따른 벌금과 그동안 라이더들에게 지급하지 않은 '사회보장금 미지급분'을 포함해 총 7890만(바르셀로나 6320만, 발렌시아 1570만)유로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약 1100억원(환율 1400원 기준)이다. 지난 2021년 스페인 시장에서 글로보 매출이 5억9000만 유로(약 8200억원)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 해 매출의 약 7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번 벌금은 글로보가 스페인에서 각각 두번째, 세번째로 큰 도시인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을 직고용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만 매겨졌다. 정부 칼 끝은 가장 많은 라이더들이 활동하고 있는 '본진' 마드리드만 남겨 놓은 상태다.

호아킨 페레즈 레이 스페인 국무장관

호아킨 페레즈 레이

게다가 라이더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스페인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호아킨 페레즈 레이(Joaquín Pérez Rey) 스페인 고용 및 사회적 경제부 국무장관 역시 지난 10월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라이더법은 스페인 정부와 국회가 내린 결정"이라며 "회사들에겐 이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법을 지키지 않는 회사들은 매우 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글로보의 모기업은 독일계 배달앱 기업 '딜리버리 히어로'다. 딜리버리 히어로는 올해 초 글로보의 가치를 26억 달러로 평가하며 지분을 대거 사들여 대주주로 올라섰다. 그런데 딜리버리 히어로는 국내 배달앱 시장 1위 기업인 배달의 민족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글로보와 배달의민족이 사실상 '형제 관계'라는 이야기다.

스페인 정부가 내리친 채찍에 딜리버리 히어로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국내 배달앱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아직까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는 그들의 움직임을 한국 또한 예의주시 해야 하는 이유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