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7 18:50최종 업데이트 24.03.27 18:50
  • 본문듣기
'DM'을 아시나요? 다이렉트 메시지(Direct Message)의 약자인 디엠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유저들이 1대 1로 보내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4월 10일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대변하기 위해 국회로 가겠다는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DM 보내듯 원하는 바를 '다이렉트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진솔하게 담은 DM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호주 교민이 총선 후보자들에게 보내는 DM ⓒ 오마이뉴스

  
호주 연방의회 상원과 하원이 있는 의사당 건물에는 모두 2700개의 시계가 있다. 녹색과 빨간색 불이 들어오는 작은 등과 종소리를 내는 기능이 있는 이 시계는 의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로 법안 투표 시간을 의원들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법안이 투표에 부쳐지면 의회 서기는 의사당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의 단추를 누른다. 그러면 의사당에 있는 2700개의 시계가 일제히 종소리를 울리기 시작한다. 빨간색 불빛이 깜박이면 상원에서, 녹색 불이 깜박이면 하원에서 법안 투표가 시작된다는 것을 뜻한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은 시계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서둘러야 한다.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4분이 지나면 의사당 문은 잠기고, 이후에 도착한 의원은 회의장에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주 의원들이 앉은 자리에는 전자 투표기가 없기 때문에 제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오른쪽으로, 반대하는 의원은 왼쪽 자리에 앉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의회 서기는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몇 명의 의원이 앉았는지 세고, 그 이름을 기록한다. 집계가 완료되면 사회자가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투표는 마무리 된다. 
 

호주 의사당에는 이런 시계가 모두 2700개 있다. 이 시계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의원들은 4분 안에 본회의장에 입장해야 한다. ⓒ 호주의사당


목소리 투표

이 시계가 종소리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법안은 찬성과 반대가 각각 몇 명인지 셀 필요가 없이 의원들이 외치는 "네"와 "아니오"라는 말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의사 결정은 '목소리 투표'(on the voices)라 불린다. 대부분 법안은 시계 종소리를 내기 전에 이 방식으로 결정을 한다(목소리 투표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 초 고대 그리스로 올라간다. 스파르타에서는 원로원 의원을 청중의 박수를 가장 많이 받은 후보로 선출했다).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면 의회 의장은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에게 법안에 찬성하는 경우 "네", 반대하는 경우 "아니오"라고 외칠 것을 요구한다. 의원들의 대답을 들은 의장은 몇 명이 그리고 누가 찬성 혹은 반대하는지 세거나 기록하지 않고 법안의 통과 여부만 발표한다. 대답을 외친 의원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의장의 발표 그대로 법안이 확정된다.

시계가 필요한 경우는 2명 이상의 의원이 목소리 투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때다. 이 경우 의장은 서기에게 시계 종소리를 울리라고 지시하고 공식 표결이 시작된다. 
 

호주 의사당 전경. 하원 전체회의의 정족수(출석해야 하는 최소 의원 수)는 총원의 5분의 1인 31명에 불과하다. 모든 의원이 모든 주제에 관해 토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호주의사당

 
목소리 투표는 누가 어떻게 투표했는지 기록에 남기지 않기 때문에 투명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한목소리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여야 모두 협상과 타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2명 이상의 의원이 이의를 제기하면 공식 투표를 통해 법안을 결정하도록 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이라도 무시되지 않는다. 여야 모두 최후의 한 명까지 같은 목소리로 투표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호주 의회의 전통은 많은 부분 영국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영국 의회는 호주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선 회의장에 마련된 의자는 의원 숫자보다 적다. 의원 수의 ⅔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원들에게는 지정 좌석이 배정되지 않는다. 지정좌석이 없다 보니 회의에서 발언하고자 하는 의원들은 누구보다 먼저 회의장에 들어가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의장은 앞자리에 앉은 순서대로 발언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토론이 필요하면 꼭 필요한 사람들만 참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다.
  

영국 의회 본회의장은 의원 정수의 2/3만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토론이 필요한 경우 꼭 필요한 사람들만 참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위키피디아


영국 하원 회의장을 이렇게 작게 만든 것은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대부분 하원 회의는 30~40명 의원만 참석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회의장이 크면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회의장을 작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처칠이 이런 회의장을 만든 또다른 이유는 그가 격렬하고 소란스러운 토론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투표 안 한 시민에게 최대 15만 원 벌금

호주에서는 의원들의 투표 방법도 재미있지만 일반 유권자의 투표 방식도 독특하다. 바로 의무 투표제다. 

의무 투표제 역시 고대 아테네에서 비롯됐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모든 아테네 시민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고 했지만 시민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자발적이었다. 하지만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행사에 참가한 사람은 사회적 비난과 더불어 벌금도 물어야 했다. 기원전 5세기에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희극 <아카르니아> 17~22장에는 노예들이 붉은 밧줄을 들고 아고라에서 시민들을 집회 장소로 몰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의무 투표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2023년 1월 현재 21개국이다. 대부분 서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나라들로 호주는 의무 투표제를 도입한 나라 중 민주주의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다. 의무 투표제 도입 국가의 민주주의 지수는 호주9위, 우루과이 13위, 룩셈부르크 14위, 칠레 25위, 벨기에 36위, 브라질 46위, 아르헨티나 50위 등이다. 

호주가 의무 투표제를 도입한 것은 1924년 전국 선거였다. 1924년 이전 호주 투표율은 47%에서 78% 사이였지만, 1924년 의무 연방 투표가 도입된 후 이 수치는 91%에서 96% 사이로 증가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투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처음에는 한화 약 1만 8천 원, 두번째 이후에는 한화 약 15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호주의 투표 용지. 투표권자는 모든 후보자와 정당에 대한 선호도를 숫자로 표시해야 한다. ⓒ 호주연방정부

 
사실 의무 투표제에 대한 찬반 주장 모두 타당한 이유가 있다. 의무 투표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높은 투표율이 민주주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중도층의 표심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 고관여층의 편향된 의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호주에서 극우파가 힘을 갖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중도층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선거 제도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 측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가난한 시민들에게 더 가혹한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발언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정부가 시민들에게 투표를 강요하거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스위스에서는 의무 투표제가 진보적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를 최대 20%까지 증가시켰다면서 이 제도가 진보에만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도 선거가 코 앞에 다가왔다. 매번 되풀이되는 선거 제도 개혁 요구는 이번에도 아무 결과없이 논쟁에만 그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대원 기자는 호주에 사는 교민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