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9 11:38최종 업데이트 24.04.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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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가 역사왜곡금지법을 제정하길 바라는 유권자의 DM ⓒ 오마이뉴스

 
4·10 총선 이후에 새로운 국회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역사의 흉기화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극우세력이 역사를 무기로 피해자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까지 겁박하며 사회를 분열시키는 지금의 현상에 제동을 걸려면, 역사왜곡금지법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민주화운동법)' 제8조 제1항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사건법)' 제13조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 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 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 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규정들이 있는데도 5·18과 4·3에 대한 모독과 역사왜곡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입법의 미비도 한몫 하고 있다. 위의 5·18민주화운동법 제8조 제2항은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 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것이거나 그밖에 이와 유사한 목적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역사왜곡 행위자가 법망을 빠져나갈 여지를 남겨뒀다.
 
4·3사건법에는 역사왜곡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위 제13조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들어 있다. '4·3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말라'고 규정하지 않고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4·3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말라''고 규정했다. 
 
4·3과 5·18과 관련해서는 있으나마나한 규정들이라도 있지만, 3·1운동을 비롯한 여타의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해서는 이런 규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극우세력의 역사 도발이 점점 가중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는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야 하지만, 한국 극우세력은 대중을 억누르거나 압박하는 도구로 이를 사용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윤석열 정부의 역사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3이나 5·18은 물론이고 독립운동과 위안부·강제징용 피해 등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이런 흐름은 종국에 가서는 부의 분배 등에 관한 국가 정책을 편향된 방향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극우세력이 역사를 흉기로 사용하며 대중을 억압하는 근본 목적은 대중이 불공정한 부의 분배에 저항하지 못하게 기를 꺾는 한편, 소수 특권층을 위한 국가정책에 대중을 쉽게 동원하는 데 있다고 본다.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은 역사를 왜곡하는 극우적 관점이 정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일례로,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독립운동가 홍범도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그가 이끄는 국방부는 '독도는 분쟁 중'이라는 일본 측 주장을 담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배포했다가 논란이 일자 전량 회수했다. 
 
그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9년 8월 24일 주최한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에서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납치문제를 매개로 일본과 연대해 대북강경책을 펴는 김영호 통일부장관은 북한에 대해서뿐 아니라 '한국인 납치피해자'에 대해서도 극우적 입장을 견지한다. 2019년 7월 17일 열린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종족주의> 북콘서트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판결을 내린 사법부를 겨냥해 "대법원 판사들이 내린 판결문을 보시게 되면 전부 다 반일종족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피해자들은 기망이나 강압 등에 의해 끌려갔다. 강압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납치 피해자들이다. 이런 한국인 납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법관들을 비판했던 김영호 장관이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 맞서고 있다. 
 
총선 출마를 위해 정부를 떠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장관은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큐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을 구국의 영웅으로 미화했지만, 민간인 학살 피해자나 유족에게 이승만은 철천지원수일 뿐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이런 한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훈부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학살자 이승만을 미화했다. 
 
또, 그 누구보다도 인권을 보호해야 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자리에는 극우파라는 비판을 받는 김광동이 앉아 있다. 
 
이런 사실은 한국 극우의 병폐가 재야의 문제가 아니라 조야(朝野)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제22대 국회가 역사왜곡금지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하는 이유다. 

한일 극우세력의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극우세력이 역사를 왜곡하고 수정하며 피해자 대중을 조롱하고 억압하는 현상이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항상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역사 청산의 절호의 기회였던 1945년이 그냥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청산 실패로 인한 피해는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서도 심대하다. 한국이 친일청산에 실패한 것처럼, 일본은 극우 군국주의 청산에 실패했다. 그래서 일본 민중은 위안부·강제징용·강제징병의 방법으로 자신들을 억압한 군국주의세력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그 후예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1945년의 태풍을 피해간 한·일 극우세력은 그같은 민중의 한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전쟁까지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역사를 과감히 개조하는 역사수정주의까지 표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건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일왕 생일파티가 2023년에 이어 금년 2월에도 서울에서 열린 점 등에서 느낄 수 있다.
 
일본은 1905년으로부터 세 번째 을사년인 2025년에 나루히토 일왕(천황)의 한국 방문을 성사시켜 한일관계의 마침표를 찍고 싶어 한다. 3·1절 기념사 때 윤 대통령은 '2025년에 한일관계를 한 단계 도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세력의 도발이 더욱 강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22대 국회가 역사왜곡금지법을 제정한다 해도 이 법으로 일본발(發) 역사왜곡은 막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 법이 제정되면 한일 극우세력의 연대를 약화시키는 효과는 거둘 수 있다.
 
역사왜곡금지법을 만드는 근원적인 동력은 국민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그 힘이 제22대 국회를 떠받쳐야 한다. 그래야 역사를 흉기화하는 흉포한 극우세력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더욱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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