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7 11:49최종 업데이트 24.02.07 11:49
  • 본문듣기

택시 시장은 이제 과거의 길손님 중심에서 호출앱에서 부르는 콜 중심으로 변화했다. ⓒ 김지영


택시를 타기 위해 큰 길 가에 서서 빨간 빈차등을 켠 택시를 기다려보지만 먼저는 그런 택시가 쉽게 보이지 않고 가끔 보여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분명 빈차등이 켜져 있었고 택시 기사와 시선도 마주쳤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택시 잡기 더럽게 어렵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한 낮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 빈 택시가 긴 줄로 서있다. 젊은 여성이 택시 승강장 앞에 섰지만 빈 택시에 오르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저 멀리서 예약등을 켠 택시가 줄지어 선 택시 차선 옆으로 달려와 여성을 태우고 가버린다. 긴 기다림 끝에 맨 앞에 도달했던 택시기사는 허탈하지만 이미 익숙한 듯 무덤덤한 표정이다.

길빵, 줄빵, 콜빵

'길빵'은 택시 업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다. 보통은 길을 걸으면서 담배 피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로 사용하지만 택시 쪽에서는 길에서 손 드는 사람을 태우는 영업행위를 말한다. 길빵에 버금가게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는 '줄빵'이 있는데 역이나 버스터미널에 길게 줄지어 선 빈 택시를 본 사람들은 금방 이해가 된다. 그게 '줄빵'이다. 


업계 사람들을 만나거나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길빵과 줄빵이다. 그만큼 화젯거리라는 방증이다. 전통적으로 택시가 손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이 두 가지였다. 집집마다 일반 전화가 있던 시절 집에서 부르던 콜택시가 있었지만 길빵과 줄빵을 대체 할 만큼은 아니었다. 

일단 전화를 걸어야 하고 있는 곳과 목적지도 설명해 줘야 하고 또 배차를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시간이 예비된 사람들이나 넉넉하게 활용하는 정도였다. 급한 사람들은 일단 큰 길 위로 나와 손을 들었다. 그게 빨랐다. 

하지만 핸드폰이 스마트폰이 되는 순간 택시업계에도 격변이 일어났다. 그 시작은 스마트모빌리티 세계가 구축되면서였다. 지금 서 있는 그곳이 어디든 손에 쥔 스마트폰 앱을 로그인하면 택시가 오는 세상이 되었다. 이른바 '콜빵'의 시대가 도래했다. 

길빵과 줄빵이 위축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정보통신 속도가 세계에서도 압도적으로 빠른 대한민국에서 콜빵의 시대 역시 압도적으로 빨리 찾아왔다. 

택시를 타기 위해 더 이상 큰 길까지 애써 나가지 않아도 된다. 골목길 집 앞에 도착한 택시를 타서는 굳이 목적지를 설명할 이유도 없고 내릴 때 요금이 얼마인지 물을 필요도 없다. 계산을 위해 카드를 꺼낼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모든 걸 스마트폰 앱이 수렴했다. 

택시를 타고 내리는 순간까지 간단한 인사말 외에 다른 말을 보탤 이유도 사라졌다. 보태야 할 말이 사라지면서 택시 안 대화도 사라졌다. 손님이 말을 걸지 않는 이상 기사는 말을 건네지 않고 늙은 기사에게 들어야 했던 '라떼'와 '꼰대'가 마구 뒤섞인 주입식 대화도 상식 밖의 무례가 되었다. 

근대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
 

이제 기계식 미터기로만 조작되던 택시는 사라지고 앱미터기와 함께 호출 시스템에 맞는 기기가 택시 안에 자리잡고 있다. ⓒ 김지영

 
택시기사에게도 이는 근대 이후 택시가 등장한 이래 가장 극적인 변화다. 손님을 찾기 위해 가장자리 차선을 질주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목적지를 묻지 않아도 되고 요금시비에서도 자유롭다. 앱에서 지정한 곳에 가서 태우고 앱에서 지정한 목적지에 내려주면 된다. 요금은 자동으로 결제된다.  

정보통신의 혁명이 불러 온 시대정신은 택시에서도 발견된다. 모든 부분에서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고 주관적 선택과 자기중심적 시간 관리에 익숙한 세대가 시대 문화의 중심에 섰다. 이전 세대와 함께 살았던 불확실성의 문화는 점차 낡고 도태되는 옛것이 되었다. 

과거 선착순으로 좌석을 채우다 자리가 없으면 좌석 사이 계단에 앉거나 그마저도 없으면 양쪽 벽에 빼곡하게 붙어 서서 영화 관람을 하던 풍경을 요즘 세대는 상상도 이해도 하지 못한다. 

터미널에 가야지만 탑승 가능한 버스와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버스 좌석마다 담배 재떨이가 붙어 있었던 모습도 상상이 안 된다. 

반면, 유명 맛집 '시그니처'를 맛보기 위해 몇 시간이고 '웨이팅' 하는 건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 풍경이지만 이전 세대에게는 여전히 거북하고 불편하다. 가게 안 키오스크 앞에서의 체크시간이 중장년은 더디고 젊은이는 거침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모니터 안에 있는 가상의 공간으로 현실을 능숙하게 끌어들이지만 종이와 활자에 익숙한 이전 세대는 모니터 밖에 실재하는 현실만을 능숙하게 살아갈 뿐이다. 

택시를 타기 위해 집 안에서 폰을 먼저 집어드는 사람과 길에 나와 손을 드는 사람의 구분도 세대를 가른다. 자기 주도적이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움직이는 세대의 등장은 택시문화에도 점차 확실성이 지배적 가치로 자리 잡는 과정에 있다. 이제 불확실성은 그 세계를 살았던 세대와 함께 상식에서 밀려나는 중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과 전기자동차의 순정모니터로 빛나는, IT가 만들어낸 택시 안 풍경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이제 어떤 택시기사들은 더 이상 '길빵'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무기력하게 빈차로 줄서는 일도 없다. 오직 모니터로 접수 되는 '콜'을 수행한다. 

그들에게 콜손님은 택시를 하면서 직면 가능한 위험에서 회피할 수 있는 세 가지를 모두 안겨준다. 첫째,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가 어디 가는지를 알 수 있고, 그가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도 예측 가능하다. 호출앱은 택시기사에게 필요한 확실성을 모두 수렴해준다. 

길에서 손을 들어 타는 손님에 대한 사전정보는 전혀 없다. 그가 누구이고 어디를 가고 어떻게 계산할 지는 택시를 타야지만이 알 수 있는 정보다. 익명성과 정보의 모호성에 가려진 손님을 기피하는 택시기사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호출앱의 등장은 위험으로부터의 구원이었다. 

게다가 언론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택시범죄 관련 가해자의 대부분은 콜이 아닌 길손님이었다. 호출앱에 가득한 개인정보들이 빤한데 그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택시를 앱으로 불러 타지 않는다. 

호출앱이 승객에게도 차량과 운전자의 정보를 손에 쥐게 해주면서 늦은 밤 여성이나 동료들이 택시를 타기 전에 차 넘버를 수첩에 적거나 사진 찍는 풍경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택시를 부르고 타고 내리는 순간까지 굳이 말을 나눌 이유도 없다. 

세대간 공존을 위하여

하지만 전자책이 영 거북하고 읽히지 않는 종이책 세대처럼 '길빵'과 '줄빵'에 기대 살아 온 십 수 년 경력의 택시기사들에게 호출앱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택시문화는 이질적이고 자기 살아 온 상식에 반한다. 

기사와 승객으로 잘 돌아가던 시장판에 난데없이 호출앱이라는 거간꾼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무료로 승객들을 소개해주면서 새로운 영업방식에 호감을 갖게 했던 이들이 스마트모빌리티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하고 중개료를 뜯어가기 시작했다. 

큰 길에서 태우고 큰 길에서 내려주어도 영업하는 택시에 대한 예의라고 용인해주던 문화가 사라지고 좁은 골목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별점 테러로 보복당하고 긁힌 차에 대한 보상은 없다. 

순발력 빠른 스마트폰 세대에 콜을 뺏기고 제때 업그레이드가 되지 못한 프로그램은 렉에 걸려 먹통이 된다. 그나마 잡은 콜도 도착 직전 손쉽게 취소당한다. 

그래도 대세가 그러하니 애써 적응해보려 하지만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워지는 기기와 프로그램과 그에 맞춰 변주되는 택시문화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호출앱을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택시로의 변화는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세대에 따라 확연하게 적응도와 선호도를 가른다. 스마트폰 세대는 환호하고 폴더폰 세대는 분노한다. 단지 기기의 문제만이 아니라 기기 안에 내재된 정보와 기술의 차이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까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는 갈등이 내재된다. 급변하는 모빌리티 플랫폼 시대, 달라진 택시 문화를 둘러싼 세대 간 차이는 기사와 승객 모두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다만 이전 문화는 그 수명이 다하기까지 배제가 아닌 존중으로, 새로운 문화는 발전적 수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여전히 어떤 사람은 택시를 타기 위해 앱을 열지 못하고 큰 길 위에 선다. 역이나 터미널에서도 앱을 켜지 않고 줄을 선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길을 달리고 줄을 서는 택시 기사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2023년 12월 기준 서울 택시기사 열 명 중 여덟 명은 60세 이상, 네 명 중 한 명은 70세 이상이었다. 그들은 스마트폰을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고 나이 들어 스마트폰에 적응해야 하는 세대다. 

 '길빵'과 '줄빵'의 시대가 완전히 저물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호출앱의 등장으로 불거진 택시문화의 변화와 갈등은 세대 간 공존을 전제로 변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