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7 14:44최종 업데이트 23.12.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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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2023년의 출판시장이 위기라고 한다. 출판 매출은 5% 내외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2021년부터 연속 3년간의 침체라고 한다. 거기에 제반 비용(제작과 물류, 종이)의 인상은 이익률의 감소로 연결된다. 출판에 종사하는 우수한 인력들은 자연스럽게 타 업종으로 유출되고, 출판시장은 총체적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출판시장의 이러한 위기감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관심이 크다. 많은 이들이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가까운 지인들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태도를 봐도 그렇다.
 

출판시장이 위기라는데, 글쓰기는 계속 이어진다. 책이 꽂힌 도서관 모습(자료사진). ⓒ 픽사베이

 
그 외에도 조금만 검색하면 글쓰기와 관련 콘텐츠가 쏟아진다. 무수한 직업군이 사라지게 된다는 미래에도 "사람이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쯤 되면 글쓰기 관련 서적이 자기 계발서의 윗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요즘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는 마음 치유 글쓰기 강의가 많다.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통찰은 바람직한 삶으로 이끈다. 그것이 글로 표현되면 읽는 이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다. 힘 있는 글은 살아가면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무수한 상처를 회복하게 하는 힘이 된다. 또한 자존감을 세우는 데 있어서 글쓰기만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모든 시민이 저자가 되는 책 쓰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시민의 삶이 치유되는 부천형 책 쓰기 프로젝트 일인일저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시민의 삶을 치유한다는 책 쓰기 프로그램의 강사로 지난 8월부터 12월까지 17차시의 강의를 진행했다. 반 학기의 시간을 24명 중학교 학생들과 책을 쓰는 일에 몰두했던 시간이었다.

22명이 새로 얻은 '작가'라는 이름
 

학생들이 만든 책 중 'Soul Trip' 책표지. 위 도서는 부천시립상동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장순심

 
그 결과로 9권의 책이 나왔다. 공저를 포함해 시민작가 597~605(작가번호)까지, 도합 22명이 새롭게 작가의 이름을 얻었다. 중학교 학생들이 만들어 낸 아이들의 첫 책, 아이들에게도 그 작업을 이끈 내게도 의미가 남다르다.

책 쓰기에 관심 있는 학생은 모인 24명 중 6명 정도였다. 책 쓰기는커녕 읽기도 싫어하고, 책 자체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18명이 함께 한 책 쓰기 수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적과 같다. 그리고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본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 나는 사람 좋은 웃음에 전문적 내용까지 장착한, 그런 모범적인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중간중간에 버럭과 정색을 오고 갔던 것 같다. 마감을 앞두고는 급하게 몰아치며 아이들을 독촉하기까지 했으니, 돌아보면 훌륭한 강사는 아니었다.
  
생각의 폭을 확장시키는 출판 경험 
     

학생들이 만든 책 중 '너를 위한 플레이리스트' 책표지. 위 도서는 부천시립상동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장순심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수업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책의 실물을 보고는 아이들은 뿌듯해했다. 이어 각자의 소감을 돌아가며 발표했다.

처음 강의가 시작될 때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대학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도움이 될 거라는 담당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참여를 결심했다고 했다. 아이들의 이어지는 더 솔직한 말에 나는 조금 웃기고도 당황스러웠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  

책 쓰기가 대학의 길을 여는 도구로 매력이 있다니. 참여의 의미가 달랐다면 좋았겠지만, 인구감소의 시대에도 여전히 대학은 인생에서 넘어야 할 큰 관문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더불어 어떤 수업이든 100% 만족은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서너 명의 긍정적인 소감을 마음에 소중히 담기로 했다.
 

학생들이 만든 책 중 '권유민씨의 우울전시관' 책표지. 위 도서는 부천시립상동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장순심

 
책의 완성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나온 책에 대한 아쉬움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내용의 검토가 부족했고 단어의 사용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일러스트를 직접 그려 삽화로 쓰고 싶었는데... 이야기의 진행이 중학생이 생각하는 내용일까 계속 고민했고, 전문 용어를 넣고 자신의 말로 적절히 풀어쓰고 싶었는데...' 등등.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이번의 출판 경험이 책 쓰기에 대한 생각의 폭을 확장시켰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경험한 자의 이유 있는 즐거움이었거나 또는 고역이었을 테니. 어떤 경험이든 앞으로의 삶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고 자존감은 좀 더 두둑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만든 책 중 '중학생의 꿈을 위한 모험' 책표지. 위 도서는 부천시립상동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 장순심

 
지금의 시대는 남들과 똑같은 것으로는 경쟁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과 화법이 통하는 시대다. 둥글둥글 원만한 삶보다는 모가 나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함이 오히려 독자를 자극한다는 말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책은 예외적이고 새로웠으며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물론 이번 경험이 아이들을 지도한 나의 삶에도 큰 의미가 될 것은 분명하다. '책 쓰기 강사'라는 타이틀로 처음 아이들과 마주했을 때, 처음의 우려는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백지에서 시작해서 17차시라는 시간 내에 한 권의 책을 각각 완성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말하자면 내가 맡은 책임에 대한 부담만 컸다.

성인도 하기 힘든 일을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책을 완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잔뜩 갖고 시작했었다. 정 안되면 아예 '문집'처럼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탈출구도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지난 학기의 결과물을 봤고, 그때 아이들이 만들어야 할 책의 대강이 어렴풋이 보였던 것 같다. 성인의 책과는 다른 문장과 구성과 내용과 깊이 등이 말이다.

적어도 내용에는 간섭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또한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방향은 여러 가지를 제안하되 내용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마음껏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세히 묘사하라고 말했다. 요즘 인기 있는 웹툰이나 게임의 무대를 나름대로 재구성해서 글로 펼치는 것도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글을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지만,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아이들에게 가르친 방법을 내게 적용한다면 책이 나올 수 있는 걸까. 누군가 나에게 단계마다 방향을 짚어준다면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수업을 통해 얻은 것은 분명히 있다. 먼저 경험한 자의 이유 있는 즐거움과 어려움이 과거 내게도 있었다는 것. 그 과정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넓혀 주었고 수업을 이끄는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 앞으로 나 또한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새로운 마음가짐도 갖게 됐으니, 이 또한 분명한 소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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