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5 05:43최종 업데이트 23.10.25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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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인 서울 구로동 주택가 ⓒ 구교형


택배도 기사마다 일하는 요령과 방식이 다 다르다. 물론 배송 환경에 따라 꽤 달라진다. 아파트 배송이 많은 기사의 경우 하루 200~300여 개를 배송해도 고객과 얼굴도 마주치기 힘들다. 반면, 동네 위주로 배송하는 경우 고객은 물론 이웃 주민들과 가게 주인, 야쿠르트 여사님까지 두루 만나게 된다.

나 역시 지금껏 동네 위주의 배송을 했기에 비교적 다양한 사람을 만나 왔다. 특히 가게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와 인사 정도는 주고받는다. 언젠가 여름, 한산한 카페에 큰 상자 여러 개를 배송했는데 아르바이트가 어찌하지 못해 쩔쩔매기에 창고까지 다시 옮겨주었다. 그 후 아르바이트는 갈 때마다 얼음을 잔뜩 넣은 커피를 주었다. 나 역시 그가 두 번 옮기지 않도록 창고까지 들어가 쌓아주곤 했다.


이렇게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과 이심전심 주고받는 끈끈함이 생긴다. 특히 다른 택배사 기사들과 친하게 지내고 자주 만나는 기사와는 도움도 주고받는다. 초짜 시절 집을 못 찾아 그들에게 자주 물어봤다. 그때만 해도 초보 티를 내며 회사에서 준 코팅 지도를 들고 다니는 '가련한' 내 모습을 보며 다른 기사들이 애처롭게 여겼다. 나는 지도도 없이 도로명만 보며 편하게 배송하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가끔 내가 정신없이 잘못 배송한 물건을 대신 찾아주기도 했다. 나 역시 아파트 입구에서 그들은 만나면 함께 올라가야 할 물품을 달라고 하여 대신 배송해 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동업자 정신이 뿜어나온다.

사람은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몇 살 위 동료 기사 형님이다. 그의 배송구역을 하루 함께 돌아본 적이 있었다. 벼르던 아내와의 해외여행을 위해 내게 한 주간동안 구역배송을 맡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택배기사가 아니라 통반장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일단 오가는 동네 어르신들은 거의 다 안다. 이름까지 불러가며 '어디 가느냐, 지난번에 아픈 데는 다 나았냐, 한동안 안 보이던데 어디 갔었냐'는 등 모르는 게 없었다.

어르신들도 일부러 나와 음료수를 잔뜩 건넨다. 심지어 젊은 새댁에게는 "배가 홀쭉해진 걸 보니 애 낳았구나?" 묻는다. "아들 낳았어요." "아이고, 수고했어."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도 불러 세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집 손자 손녀라며 아기 때부터 봐 왔다고 한다.

단순히 친절한 게 아니라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예전 통반장 같은 모습이다. 물론 지금처럼 타인의 관심과 사적 관계를 기피하는 시대에는 지나쳐 보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계나 무인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있는 지금 시대야말로 오히려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인 관계가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아닐까?

형님 기사와 주택가 골목에 정차해 놓고 배송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열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슬금슬금 트럭으로 오더니 정확히 분간할 수 없는 말을 건넸다. 요즘 시대에 어린아이가 택배 차량에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동료가 "그래, 지금은 다른 사람이랑 얘기하는 중이니까 너랑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니, 알아들었다는 듯 아이가 갔다.

동료 기사의 말을 들으니, 아이가 아무에게나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다니니 사람들이 성가셔하며 무시하거나 자리를 피하는데, 자기는 할 수 있는 한 아이와 눈을 맞춰 얘기도 들어주고 여러 번 만나니 자기만 나타나면 일부러 찾아온다고 했다. 하루는 아이 엄마가 그걸 보고 먹을 것을 잔뜩 사다 주면서 그렇게 고마워하더라는 것이다. 이웃의 정의가 이렇게 넓고 풍성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날만 해도 배송하는 몇 시간 동안 동네 주민들은 둘이 다 처분하지 못할 만큼 음료수를 많이 놓고 갔다. 그는 한 동네에서만 10년 넘게 배송한 이력을 갖고 있다. 어쩌면 같은 곳을 10년 동안 누비고 다니면 돌멩이 위치까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10년 경력이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역시 관심이다. 사람은 관심을 먹고 사는 존재다.

사실 택배기사가 부부 여행을 위해 휴가를 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가 내게 그런 요청을 했을 때 두말없이 수락했다. 오래전 사업 실패로 가족들을 고생시켰다는 미안함이 많은 그는 그런 아픔이 있고 나서 가족에게 정말 잘한다. 특히 고생한 부인에게 잘하려는 진심 어린 행동을 잘 알고 있기에 그 부부의 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사람이 타인의 삶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고 변해가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대립하는 사회... 작은 몸부림이 필요할 때

그동안 나도 꽤 잘한다고 자부했지만, 그 일 이후 배송 태도에 더 신경 쓰게 되었다. 배송 중 만나는 고객에게 최대한 밝게 인사하고 이런저런 부탁을 받으면 최선을 다해 처리해 주려고 한다. 어느 날은 점심 식사 때인데도 따뜻한 가을 햇볕만 쬐고 있는 할머니에게 배송 중 내가 먹으려고 준비한 밤빵을 나눠드리고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과의 관계는 조심스러울 때도 많다. 일하다 보면 뒤늦은 점심을 먹을 때가 많다. 어느 날 동네 한복판에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다. 그런 곳에는 대개 나 같은 일꾼이나 동네 가게 이웃이 많이 온다. 그날도 늦은 시간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몇몇 손님들이 들어와서 서로 눈인사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다음날 같은 식당에 들어가니 어제 왔던 손님 중 한 분이 잔뜩 취했는데 또 맥주를 시켜놓고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앉으니 주인 할머니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는 내게 주사 부리면서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무슨 일을 하냐?' '어디 회사냐?'고 묻기 시작했다. 나는 목회 시절에도 취객을 어렵지 않게 대해 왔기에 할머니에게 염려 마시라고 한 후 적당히 응대해 주었다.

쉽게 끌려 들어가지 않자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결정적인 질문을 해왔다. '당신 몇 살이야?'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결정타이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주인 할머니의 염려를 덜고 나도 편안히 밥을 먹을 수 있으려면 답변이 필요해 보였다. '○○년생 ○○살입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목소리 톤이 잦아들더니 '어! 나보다 위네'라고 하고는 맥주 한잔 더 들이켜더니 나가버렸다. 역시 한국 사회는 나이가 깡패다.

서로 원수진 것 없어도 마치 원수진 것처럼 극단적으로 미워하고 대립하는 살벌한 사회. 할 수 있는 대로 우리가 서로 원수가 아님을 드러내는 작은 몸부림이 필요할 때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로마서 12장 15,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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