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3 15:40최종 업데이트 23.10.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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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편집자말]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장병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어떠한 도전 앞에서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성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강한 국방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2023년 3월 10일 해군사관학교 77기 졸업식 및 임관식)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 (2023년 5월 2일 미국 방문 후 열린 국무회의)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구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수호할 것입니다." (2023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


'힘에 의한 평화'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을 한마디로 정리한 말이다. 강한 힘이 있어야, 군사력으로 상대(북한)를 압도할 수 있어야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기실 역대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철학에 따라 차이가 있긴 했지만 힘과 평화를 동시에 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한편으로는 이전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국방예산을 지출했고 특히 무기를 구매하고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적대적이었지만 '통일 대박'을 말하는 등 겉으로는 남북교류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평화적인 수단-교류나 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연일 압도적인 힘이 있어야 평화가 온다는 태도만 반복하고 있다. 
 

제7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참단무기와 병력이 참여한 시가행진이 26일 오후 서울 숭례문에서 광화문까지 세종대로에서 열렸다. ⓒ 권우성

 

제7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참단무기와 병력이 참여한 시가행진이 26일 오후 서울 숭례문에서 광화문까지 세종대로에서 열렸다. ⓒ 권우성

 
대통령의 이런 태도와 입장이 잘 드러난 것이 지난 9월 26일 열린 건군 75주년 군국의 날 행사다. 마침 한미동맹 70주년이기도 한 올해 윤석열 정부는 국군의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했다. 6700여 명의 장병과 200여 대의 군사 장비가 서울의 한복판인 남대문에서 광화문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3축 체계의 핵심인 장거리 지대공 유도 무기, 고위력 지대지 미사일 현무의 실물이 처음 등장한 행사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도 "강한 군대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2008년이 마지막이었던 시가 퍼레이드도 다시 했는데,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군부대의 퍼레이드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다. 그리고 이런 군사력 과시는 전쟁억제력보다는 군비 경쟁을 부추긴다.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북한의 열병식을 떠올렸다. 

윤 대통령과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 피란민과 부상자, 팔다리를 잃은 어린이와 고아들에게 의술을 폈던 영국인 부부인 의사 존 콘스의 살아생전 모습. 옆에는 아내인 간호사 진 매리(진 그로스). 2011.6.7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을 받은 존 콘스(John Cornes)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을 때였는데, 놀랍게도 존 콘스는 병역거부자였기 때문에 수교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존 콘스는 24살인 1951년 영국 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던 중 징집영장을 받게 되었다. 1947년부터 퀘이커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던 존 콘스에게 병역거부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퀘이커는 평화주의 전통을 가진 기독교 분파로 병역거부를 비롯해서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매우 행동적인 특징을 가진 종교이고, 평화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194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영국 퀘이커 봉사 협회·미국 퀘이커 봉사 위원회)했다. 퀘이커 모임에 꾸준히 참석한 존 콘스는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에 저항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퀘이커에 영향을 받아 병역거부를 실천한 것이었다.

징집영장을 거부한 존 콘스는 1952년에 재판을 받게 되었다. 20명이 함께 재판을 받았는데 18명은 병역거부가 인정되지 않고 구속되었고, 한 명에게는 병원 질서유지인을 내용으로 하는 대체복무 명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존 콘스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를 거부했지만 "전쟁의 공포를 피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대체복무를 하기를 희망했다. 

마침 퀘이커가 조직한 재한친우봉사회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한 사회를 위한 의료 지원을 계획하고 있었다. 결혼한 부부를 한국으로 보낼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존 콘스는 간호사인 여자친구 진 그로즈(Jean Grose)에게 청혼하며 한국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진 그로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양쪽 부모님이 모두 결혼을 반대했지만 퀘이커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하고 한국 군산에 대체복무로 의료봉사를 오게 되었다. 재한친우봉사회가 팀 구성을 마친 것은 1952년 말이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한창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고, 휴전 협정이 끝나고 약 4개월 뒤인 1953년 11월부터 재한친우봉사회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한반도 전역이 의료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북한에서 온 전쟁 난민 3만 3천여 명이 군산에 머물고 있어 의료 지원이 절실했다.

존 콘스와 진 그로스는 1954년 1월 전라북도 군산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고 1956년 9월까지 군산에 머물며 전쟁 난민들을 위한 의료 봉사를 이어갔다. 한국 정부가 수여한 수교 훈장은 군산에서 존 콘스가 대체복무로서 행한 의료봉사가 전후 한국의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사회를 복구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존 콘스가 행한 의료 봉사에는 깊이 감사하지만, 그가 왜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그가 징집영장을 받은 1951년은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로, 존 콘스가 만약 징집되었다면 한국전쟁에 군인으로 참전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는 총을 들고 적을 죽이는 일을 거부하고, 의사로서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택했다. 존 콘스의 의료봉사는 인도주의적인 실천이면서 동시에 전쟁에 반대하는 '병역거부'라는 정치적인 행동이었다. 

지금, 존 콘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
 

2013년 1월 25일, 60년 전 한국에서 진료 활동을 펼친 영국인 고(故) 존 콘스 박사에 대한 수교훈장 수여식이 런던 주영 한국대사관에서 열렸다. 부인 진 매리(진 그로스)(85) 여사는 15개월 전 작고한 남편을 대신해 박석환 주영 대사로부터 수교훈장 흥인장을 전달받았다. 매리 여사(왼쪽)와 딸 루스(오른쪽)가 훈장과 서훈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선전포고도 없이 남한을 침공한 김일성도,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압록강에서 먹겠다며 북진통일을 떠들어 대던 이승만도 서로 세계관은 달랐지만 압도적인 강한 힘(군사력)으로 상대방을 섬멸하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한 것은 공통적이었다. 이 공통점의 귀결이 한국전쟁이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존 콘스는 강한 힘이 과연 평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고, 결국 힘(군복무)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생각에 평화적인 수단(대체복무)을 택했던 것이다. 한국 정부가 기려야 하는 것은 존 콘스의 의료봉사뿐만이 아니라, 강한 힘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약자들의 곁에서 평화적인 수단으로 평화를 일구려 했던 존 콘스의 정신이다. 

존 콘스가 대체복무를 하기 위해 왔던 1954년의 한국은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거리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넘쳐났고 병원, 도로, 전기와 같은 사회의 기본적인 인프라가 무척이나 열악한 상태였다. 지금 한국은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 강국이자 군사 강국이다. 강한 힘이 평화를 지킨다는 언설이 무색할 만큼 이미 지나치게 강한 힘을 가진 국가다.

한국의 군사비 지출은 북한의 국가 총생산을 넘어선 지 오래며, 한국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10개국이 되지 않는다. 또한 한국은 무기 수출과 수입 모두 전 세계 10위 안에 드는 주요 무기 생산국이다. 7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것도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더 강한 힘을 부르짖고 있다. 강한 힘에 따르는 강한 책임에 대한 고민은 좀처럼 보이지 않은 채로.

70년 전에도 평화를 가져온 건 강한 힘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만약 한국이 이겼더라도 그것을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3년 동안 수백만 명이 죽고 다쳤는데 김일성 정권을 무너뜨렸다 한들 그것을 평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70여 년 전, 강한 힘은 오히려 전쟁을 가져왔다. 당시 조금이라도 평화를 구축한 것은 김일성이나 이승만의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욕구가 아니라, 그 힘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존 콘스의 병역거부와 대체복무로서의 의료봉사 같은 행동이었다. 힘에 의한 평화는 가짜평화에 가깝다. 그 가짜평화를 얻기 위한 수단이 전쟁이 될까봐, 나는 두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교훈장을 받은 존 콘스의 이야기에 관심 갖기를 바라는 이유다. 
 

녹색연합, 전쟁없는세상, 정의평화기독연대,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오후 ‘건군 75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이 열리는 서울 세종대로 부근 서울시청앞에서 ‘힘에 의한 평화 없다 STOP ARMS RACE’ 현수막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글 <전쟁을 겪은 한국, 대체복무에 빚지다>http://www.withoutwar.org/?p=14096 를 참고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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