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4 13:36최종 업데이트 23.08.1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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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11일 오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폐영식에서 폐영사를 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지난 11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폐영식, 그리고 '잼버리 케이팝 슈퍼 라이브'가 열렸다. 뉴진스, 아이브, ITZY(있지), 마마무, NCT 드림 등 수많은 케이팝 스타의 공연이 펼쳐졌다. 4만 3천 명의 참가자들도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에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지난 열흘간 운영 미숙으로 얼룩진 '잼버리 사태'가 무사히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유종의 미'를 말하기에는 섣불러 보인다. 이 공연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을 돌아보자.

10억 들여 손 본 잔디, 누가 책임지나

우선 첫 번째 희생자는 축구계다. '케이팝 슈퍼 라이브'는 원래 8월 6일 전북 새만금 야외 특설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연 일정과 날짜가 두 차례 바뀌었다. 잇단 온열질환과 안전사고 문제, 태풍 '카눈'의 북상이 겹치면서 공연은 8월 11일 전북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변경되었다. 이 과정에서 8월 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FA컵 4강전 '전북 현대 vs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원정팀인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우 구단과 팬들이 미리 전주에 도착해 훈련장과 숙소 등을 예약했으나, 결과적으로 헛걸음을 한 셈이 되었다. 최종 공연 장소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정해지면서 12일 열릴 예정인 K 리그 경기는 예정대로 열리게 되었지만, 장기 레이스인 구단의 일정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전북 현대를 이끌고 있는 루마니아 출신의 단 페트레스쿠 감독은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했다.
 

2023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폐영식이 11일 오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홈팀인 FC 서울 측의 한숨도 깊어졌다. 최근 FC서울은 10억 원 이상을 들여 구장의 잔디를 하이브리드 잔디(천연 잔디와 인조 잔디를 혼합한 형태)로 개조했다. 잔디의 상태는 선수들의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최근 이 경기장에서 친선 경기를 치른 맨체스터 시티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의 해외 빅클럽 역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배수 시스템을 극찬했다. 경기 직전 폭우가 내렸음에도 문제없이 경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디 개조에 대한 극찬이 무색하게, 케이팝 콘서트와 함께 잔디가 훼손될 가능성이 커졌다. 잔디 위에 무대가 설치되었고, 그라운드 곳곳에 좌석이 깔렸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은 "경기장 훼손을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라고 공언했지만, 이미 손상된 잔디의 모습이 팬들 사이에 퍼지면서 우려가 커졌다.


이에 FC 서울의 공식 서포터즈 '수호신'은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일방적 소통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공단, 공조직을 넘어 기업과 대학과 같은 사조직에게도 이미 많은 자발적 협조가 강요된 지금,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부분들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여러 장소들이 여러분들의 야영장으로 변화됐듯, 우리의 경기장은 공연장이 됐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잔디 복구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애써 뿌리내린 잔디가 이미 큰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성공적인 공연? 석연찮은 '케이팝 콘서트'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에서 그룹 아이브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가요계 역시 잼버리 대회의 피해자 중 하나다. 인지도가 높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을 위주로 특집 콘서트가 꾸려지는 동안, 이 시간에 방송될 예정이었던 KBS2 '뮤직뱅크'는 결방 처리되었다. 그리고 뮤직뱅크의 제작진이 대신 잼버리 콘서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몇몇 중소기획사의 신인 그룹들은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데뷔 무대를 미루게 되었다.

며칠 만에 여러 케이팝 아티스트의 섭외가 일제히 이뤄졌다. 최근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한 뉴진스도 갑작스럽게 라인업에 합류했고, 그룹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던 마마무 역시 갑작스럽게 공연에 합류했다. 걸그룹 아이브가 스케줄 문제로 잼버리 콘서트 출연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1일 공연을 하루 앞두고 출연을 확정 지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아이브가 자발적으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공연 바로 전날 아이브의 소속사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김범수 창업주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진 상황이라, 문체부의 '자발성 강조'에 대해 의심 섞인 시선이 모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인 2023 전주 얼티밋 뮤직 페스티벌(JUMF)의 출연진 중 한 팀인 오마이걸을 잼버리 콘서트 측에서 빼 가려고 했다는 폭로가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부산 공연 이후 완전체 활동을 멈춘 방탄소년단의 이름도 난데없이 소환되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방부는 BTS가 국격을 높일 수 있도록 세계잼버리대회에서 공연할 수 있게 지원해 주시길 바란다"는 발언을 했다가 설화에 휩싸였다.

성 의원은 지난 1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가가 힘들고, 또 외국 손님들이 4만 3000명 정도 와 있으니까 과정이 어찌 됐든 간에 잘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성 의원은 민주당 정부에서도 방탄소년단을 UN과 백악관에 데리고 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두 경우에는 UN과 백악관이 방탄소년단을 사전에 정식으로 초청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행사를 며칠 앞두고 불거진 '콘서트 차출론'과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 성 의원의 발언은 대중문화에 대한 정계 일각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체가 불분명한 국익을 위해서 예술인을 관제 행사에 마음껏 동원할 수 있다는, 위험한 믿음에 근거한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K-컬처를 세계 문화의 미래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거치는 동안, K-컬처를 만드는 이들에 대한 존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K컬처의 세계적인 영향력은 '자유' 가운데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정부가 호출하면 출동해야 한다는 식의 전체주의적 가치관에는 빚을 지지 않았다.

오는 16일과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잼버리 대회의 진상 규명을 위한 현안 질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당국의 무능을 문화예술계와 스포츠계, 그리고 팬이 대신 짊어진 일 역시 톺아 보아야 할 것이다.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즐거운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잼버리 콘서트는 '유종의 미'로 기록되어선 안 된다. 누군가의 희생과 동원을 당연시한, '관제 행사'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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