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인생에서 편안하게 행복까지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역경과 시련이란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과도 같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요령이 아니라,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일 것이다.
 
6월 7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포기하지 마' 특집을 통하여 어떤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인생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시대의 '디바' 엄정화를 비롯해 이란에서 한국에 정착한 지 25년 차가 된 카리미 안왈씨, 국군수도병원 국군외상센터 문기호 중령이 출연했다.
 
이란 출신의 카리미씨는 KBS 건강정보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의 '3주간 술을 끊어보니' 편에서 금주에 도전하는 애주가로 출연하여 화제가 된 인물이다. 외국인임에도 "마누라, 나 집에 안가" 등의 생활 어록을 통하여, 능숙한 한국말만큼이나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 아재스러운 친근함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카리미의 아내는 한국인 현정화씨다. 방송출연을 신정한 것도 남편의 건강을 우려한 아내의 생각이었다. 정작 남편의 의사는 묻지 않고 덜컥 출연신청부터 했다고. 
 
부부는 아내의 어릴적 피아노 선생님이자 카리미가 근무하던 숯가마 가게의 오너였던 사장님의 소개로 만나게 된 인연을 소개했다. 아내는 "처음 만날 때 아기와 같은 순수함에 매력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까지 골인했다. 아내는 "그땐 정신이 나갔었나보다"고 쑥쓰러워했고, 카리미는 "그게 사랑이다"라며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자아냈다.
 
카리미는 22세에 이란을 떠나 자유로운 나라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서 한국을 찾아왔다. 이방인으로 타국에서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종종 무시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카리미는 현재 건설 현장의 자재를 수리하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어엿한 사장님이 되어있었다.
 
카리미는 한국에서 실감한 '빨리빨리' 문화를 언급했다. "저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한국인들은 더 급하다. 동료들과 국밥을 먹으러가면 저는 뜨거운 걸 못 먹는데 동료들은 5분이면 끝난다. 누구랑 밥 먹자고 하면 밥보다 술이 먼저 들어간다"는 한국인이라면 공갈할 만한 일화로 폭소를 자아냈다. 반면 장점으로는 "이라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러 갔다가 한국에서 배운 방식대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여 6개월 걸릴 일을 한 달 만에 끝냈다"고 소개했다.
 
카리미는 꾸준히 한국어를 공부하며 이제는 한국식 아재 개그까지 능숙하게 소화할 정도가 됐다. 현재는 귀화를 신청하여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을 마치면 가족들과 이태원에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는 카리미는 "나한테 행복은 가족밖에 없다. 오늘이든 지난주든 10년 전이든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아내와 자녀들은 "우리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 그런데 건강을 위해서 술은 좀 줄였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지뢰 환자들 특히 가장 가슴 아파"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의료 최전선에서 국가의 영웅들을 치료하는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 군의관 문기호 중령이 다음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문 중령은 지뢰, 수류탄 폭발 등으로 큰 외상을 당한 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다.
 
2022년 10월, 지뢰작업 중 폭발사고로 큰 부상을 당한 표정호 일병을 다시 걸을 수 있게 도운 것도 문 중령이었다.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을 회상하며 문 중령은 "환자의 간절한 의지가 느껴졌기에 어떻게든 이 다리를 살려보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지뢰환자는 신체절단을 선택하지만, 문 중령과 의료진은 '조직 이식'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잘못되면 처음에 절단했던 것보다 환자의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의료진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문 중령은 "지뢰 환자들이 특히 가장 가슴 아프다. 본인이 예상할 수 없으니까. 병사들 대부분은 스무 살을 갓 넘은 아이들이다. 표 일병이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잘하면 걷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하며 한국공공조직은행으로부터 인체조직을 지원 받아,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수술이지만 과감히 도전했다.
 
사고로부터 86일 만에 진행된 발뒤꿈치 이식수술에 17시간 동안 총 12명의 의료진이 참여했다. 어려운 수술과 재활을 거쳐 지뢰사고가 벌어진 지 약 155일 만에 표 일병은 기적처럼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문 중령은 "정호야, 나 약속지켰다"고 외쳤고, 표 일병은 "맞습니다"라고 화답하며 함께 기뻐했다. 문 중령은 "서로 믿음이 있었다.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고마웠다"며 감격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표 일병의 어머니 정석임씨도 "죽을 뻔한 애가 다시 살아났고, 걸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애가 다시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게 되니까 더 이상 바랄 게 없더라. 선생님께 너무 너무 감사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석임씨는 "정호는 내 자식이지만 이 고통을 참고 와줘서 정말 고맙고 대견하는 생각이 든다"고 뿌듯해했다. 현재 표 일병은 목발없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재활 치료를 진행중인 단계라고.
 
한반도는 아직도 비무장지대에 대한민국 국군의 숫자보다 많은 200발 이상의 지뢰가 매설되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타와 국제협약에 따라 대인지뢰 매설은 금지되었지만 한반도는 현재 휴전 상태라 이 협약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지뢰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는 완벽하게 파악이 불가하며, 자연 현상 등으로 토사에 유실되어온 지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도 높다.
 
문 중령은 다양한 사고 환자들을 치료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특히 무기 손상 환자들은 항상 힘들다"고 설명했다. 문 중령은 "중상을 입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6시간인데 병원까지 환자 이송과 수술 준비과정을 포함하면 아무리 빨라도 3~4시간이 소요된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은 결국 길어야 1~2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문 중령은 "내 판단으로 환자가 수술장에서 아무 것도 못 해보고 죽을 수 있다는 감정과 압박을 느꼈을 때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문 중령은 굳이 어려운 군의관의 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의사가 꿈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남아서 뭔가를 꿈꾸고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히며 "존경하는 은사님이 수술을 잘하는 비결이 궁금했는데 '환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니까' 그렇게 되더라. 환자의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하다보면 함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어도 피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문 중령이 치료했던 많은 장병들이 무사히 사회로 복귀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이나, 전역 후에도 종종 문 중령을 찾아오기도 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편으로 문 중령은 군 의료를 보는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군 의료가 국민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 하다보니 어려움이 많다. '군병원을 없애라, 군병원에는 돌파리만 있다'는 비난도 듣는다. 현장에 있는 저희도 비판에 공감하고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저희는 절대 여러분들을 저희 뒤에 두거나 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다짐했다.
 
'차정숙' 엄정화 "뜨거운 반응 20년 만에 느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화제의 드라마 <닥터 차정숙>으로 건재를 증명한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한국의 마돈나' 엄정화가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엄정화는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차정숙'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5주 연속 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를 차지할만큼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엄정화는 차정숙과 자신의 닮은 점으로 "20년 만에 가정주부에서 의사로 자신의 길을 찾은 차정숙처럼, 엄정화로서도 이런 반응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가다. 가수로서 활동할 때 느꼈던 뜨거운 반응을 20년 만에 느껴봤다"며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 첫 방 당시 <댄스가수 유랑단> 촬영중이었던 엄정화는 동료-지인들의 메시지와 실시간 언론 기사로 반응을 확인하고 호평이 쏟아지자 크게 안도하여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친분이 깊은 유재석은 "엄정화의 이미지는 도도하고 다기가기 힘들 것 같은데 실제로는 여리디 여린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극중 딸 역할로 나온 이서연이 눈물 연기를 어려워하며 촬영이 지연되자 엄정화가 따뜻하게 안아주며 격려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도 전한다. 엄정화는 "저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 배우가 얼마나 긴장을 했을지 안다. 극중에서 엄마라고 불리다보니 진짜로 엄마가 된 듯한 기분도 들더라"고 회상했다.
 
엄정화는 극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의사로 돌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남편에게 한 "도와달라고 하진 않아. 근데 걸어갈 수 있게만 해줘"와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제가 스스로 찾아볼게요. 제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 등의 대사들을 꼽았다. 엄정화는 "사람들에게 기대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자기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는 다짐이 너무 좋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엄정화는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떤 길이든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소감을 밝혔다. 엄정화는 극중 차정숙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하여 "그동안 정숙이로 살 수 있어서 행복했고 너로 인해서 나도 많이 성장하고 배웠다. 정숙이와 닮은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차정숙>이 배우 엄정화의 매력을 증명했다면, 현재 방영중인 <댄스가수 유랑단>에서는 가수 엄정화의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엄정화를 비롯하여 이효리, 보아, 화사, 김완선 등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여성 디바들이 한자리에 모여 화제가 됐다.
 
엄정화는 가수로서는 1993년 1집 <눈동자>를 통하여 데뷔했다. 고 신해철이 작곡한 <눈동자>는 가수 엄정화의 콘셉트를 정립한 곡으로 꼽힌다. 엄정화는 "신해철 오빠가 '네 눈을 보고 가사를 썼다'고 하더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며 "이 곡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1집 때 나의 이미지를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당시 여가수는 주로 청순 이미지가 대세였던 가요계에서 엄정화는 보기드문 도시적이고 몽환적인 콘셉트를 정립하며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후 엄정화는 '포이즌', '몰라', '초대', '페스티벌', '배반의 장미' 등 무수한 히트곡들을 배출해내며 일약 '한국의 마돈나'로 자리매김했다. 곡 콘셉트에 따라 장미 가시 헤어(배반의 장미), 부채(초대), 헤드셋(몰라) 등 각종 소품을 적극 활용하여 시대를 앞서간 화려한 패션과 스타일링, 안무도 항상 화제가 됐다. 엄정화는 "더 신나게, 더 변화를 주고 싶었다. 곡에서 주는 느낌을 이미지로 풀어가는 게 저한테는 즐거움이었다"고 고백했다.
 
배우로서도 데뷔 10년 만에 주연을 맡은 <결혼을 미친 짓이다>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는 연기자로 올라섰다. 엄정화는 자신의 대표작인 <결혼을 미친 짓이다>을 사실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수위높은 신들 때문에 주변에서 출연을 만류했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당시 엄정화는 "너무 영화를 다시 하고 싶었다. 이미지가 가수 쪽으로 굳어져서 작품이 오질 않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제안이 온 것도 감사했고, 담고있는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고백했다. 사랑(연애)와 조건(결혼) 사이에서 갈등하는 30대 남녀의 현실을 다룬 이 작품은, 동세대 청춘들은 물론 엄정화 본인에게도 많은 공감을 느끼게 했던 이야기였다.

엄정화는 이후로 가수활동을 병행하면서 배우로도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여성 만능 엔터테이너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가수와 배우 활동을 같이하는 게 서로의 커리어에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시도도 안 해볼 순 없지 않냐"며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를 전했다.
 
불혹을 앞둔 2008년에 선보인 '디스코'는 큰 인기를 모았지만 일각에서는 당시만 해도 나이 많은 여성가수(당시 38세)가 댄스 장르를 고집하는 데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존재했다. 이에 엄정화는 '항상 무대가 좋고 올라가고 싶은데, 그런 이유로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또한 동시대에 경쟁했던 이효리와는 각자 30~40대에 접어들며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면서 친해졌다고.
 
"여러분들도 제 목소리가 이렇다는 걸 받아들여주셨으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tvN

 
엄정화는 '디스코' 이후 갑상선암 투병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공백기를 가져야했다.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를 통하여 오랜만에 가수로 복귀했을 때도 두려움이 많았다고. 엄정화는 "노래를 꼭 다시 하고 싶었다. 노래를 부르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꿈을 찾아왔던 제 시간이 사라져버린 느낌이 드니까. 마지막 인사를 하더라도 그동안 감사했다는 무대를 꼭 갖고 싶었다. 사라지듯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해내서 무대에서 인사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현재 엄정화의 목소리는 여전히 회복중이다. 엄정화는 "댓글을 보면 걱정해주는 분들이 계신다. 아픈 건 아니다. 이제는 여러분들도 제 목소리가 이렇다는 걸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괜찮다"고 당부했다. 투병 당시를 회상하며 임정화는 "한마디도 못했을 때도 있었다. 이걸 단점이라고 자꾸 감추려고 하면 더 움츠러든다. '내 목소리는 특색이 있다. 이건 나야'라고 받아들였다. 지금은 제 목소리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엄정화는 <차정숙>을 하면서 느낀 교훈으로 "좋은 시간은 언제든지 올 수 있구나.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언제 올지 몰라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여섯 살에 부친을 여의고 희망조차 안 보이던 시기를 거쳤다는 엄정화는 "잘 준비하고 준비되어 있으면 정말 좋은 이야기가 선물처럼 오는구나라는 것을 느껴서 요즘 너무 좋다"라고 고백했다.
 
20년 만에 자신의 대표곡인 '페스티벌'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엄정화는 마지막으로 "요즘도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 지금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욕심인 것 같고, 고민을 안 하려고 한다. 이 순간을 그저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미소를 지었다.
유퀴즈 엄정화 닥터차정숙 문기호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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