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차정숙> 명세빈 인터뷰 이미지

ⓒ 어니스트엔터


"(최)승희는 상처에 갇힌 여자라고 생각한다.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차정숙뿐만 아니라 승희에게도 성장하는 이야기다."

배우 명세빈이 당당하고 뻔뻔해서 더 얄미운 '불륜' 의사로 변신했다. 자칫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캐릭터를 명세빈은 밉지만 어딘가 실제로 살아있는 인물처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의사 면허는 있지만 가정에만 충실하게 살았던 차정숙(엄정화 분)이 20년 만에 다시 레지던트에 도전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인생 봉합기를 그린다. 명세빈은 극 중에서 차정숙의 대학교 동기이자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과 내연 관계인 가정의학과 교수 최승희로 분했다. 

지난 5월 2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만난 명세빈은 "생각지도 못했던 큰 사랑을 받고 있어서 요즘 너무 신난다. 20대에 연기했을 때 좋아해주셨던 느낌을 오랜만에 다시 받고 있는 기분이다. 다시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하다. 매일 재밌고 기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주인공 몰래 서인호와 데이트를 즐기는 최승희 캐릭터는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기는 어려워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는 대학생 때 서인호와 연인 관계였지만 서인호가 차정숙과 하룻밤을 보낸 이후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서 서인호와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때의 상처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미국에서 서인호를 다시 만나 아이를 낳고 홀로 기르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명세빈은 최승희를 향한 세간의 비판과 비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저 스스로는 최승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승희가 '내 입장도 있다'고 얘기하려고 하면 늘 (차)정숙이 칼같이 잘라버리지 않나(웃음). 저는 (최)승희가 일차원적인, 단순한 불륜 여성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에는 승희의 전사가 많이 없지만, 제가 해석하고 소화해야 감정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주변에서는 배우들이나 관계자분들이 많이 격려해주셨다. 내가 연기해서 정당성,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해주시더라"고 덧붙였다.

불륜과 상처, 혼외자 등 최승희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분명 배우에게 어렵고 난감한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닥터 차정숙>에서 명세빈이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를 결정했단다. 출연 결정을 하자마자 곧바로 촬영이 시작됐다고. 명세빈은 최승희 캐릭터를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막막했을 때 배우들에게 도움을 많이 얻었다고 고백했다.

"다른 배우들은 몇 개월 전에 대본을 받았고 (제작진이) 마지막으로 최승희 캐릭터만 고민하고 있었다더라. 제가 하겠다고 했을 때 감독님도 제작진도 배우들도 모두 '이제야 촬영 들어갈 수 있다'며 너무 좋아하고 에너지를 뿜뿜 분출했다. 빨리 대본도 봐야 하고 캐릭터 준비도 해야 하는데 나는 마음이 급해지더라.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배우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이미 대본을 많이 봤고 생각도 많이 했고 이해도도 높을 것 같았다. 내가 고민하는 것보다 배우들에게 물어보면서 답을 찾아나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특히 김병철씨와 둘이서 (최)승희와 (서)인호의 대학생 시절과 전사 등에 대해 많이 대화를 나눴다."

<닥터 차정숙>에서 최승희가 서인호를 20년째 놓지 못하면서 생겨나는 상처와 불행은 딸 은서(소아린 분)에게까지 이어진다. 은서는 차정숙의 딸 이랑(이서연 분)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는가 하면, "왜 나를 유부남의 자식으로 낳아서 평생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만드냐"고 엄마에게 눈물로 항변하기도 한다. 명세빈은 드라마와 연기일 뿐이지만 딸 역할의 배우 소아린이 상처 받을까봐 걱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가 욕을 먹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물론 막상 (욕을) 먹으니까 쉽지는 않더라. 맞는 말이지만 기분이 살짝 나빴다. 그런데 내가 이 정도면 우리 딸은 어떨까 싶어서 너무 짠하더라. 저는 나이가 들었고 이게 연기라는 것도 다 알지만 딸은 이제 스무 살이다. 올해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갓 입학했다. 그날 아침에 일어나서 문자를 남겼다. 딸도 처음에 (비난이) 무서웠다더라. '우리 딸 너무너무 잘하고 연기도 너무 잘한다'고 칭찬했더니 '잘 이겨내고 있다'는 답장이 왔다. 물론 악플도 있지만 시청자 분들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 드라마 분위기가 좋구나 생각하고 있다."

"배우들과 드라마 방송 함께 본 적도"
 
 <닥터 차정숙> 명세빈 인터뷰 이미지

ⓒ 어니스트엔터

 
<닥터 차정숙> 시청률이 매주 고공행진을 그리고 있는 만큼, 배우들도 매일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배우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도 있다고 고백한 명세빈은 "우리끼리 만나서 드라마 방송을 함께 본 적도 있다. 심오하게 연기나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웃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방송을 제대로 보지도 못해서 다시 봐야겠다고 하면서 헤어졌다"며 "서로 좋은 소식들을 전하는 채팅방이다. 요즘 엄정화 언니가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도 잘하고 있지 않나. 바쁠까봐 연락을 많이 하지는 못하지만 시청률이나 좋은 소식은 공유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명세빈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엄정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도 했다. 극 중에서 차정숙과 최승희는 서로 죽도록 미워하는 대립관계이지만 실제로 명세빈과 엄정화는 서로를 응원하며 연기했다고. 그는 "엄정화는 너무나 대스타고 시대의 '디바'였고 여러 가지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인데 드라마에선 소탈한 엄마 역할이지 않나. 그게 너무 신기했다. 언니가 늘 '난 진심으로 하고 싶다.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성격이 워낙 좋아서 많은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고 많은 걸 흡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드라마에선 대립해도 서로 챙겨주고 일으켜주는 관계였고 그게 작품이 잘 되는 데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극 중에서 사이가 안 좋으니까 (촬영 아닐 때도) 긴장감이 생길 수가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마음을 열고 연기할 때 미워할 수 있었다(웃음). 그래서 좀 더 시청자들에게 진실성 있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1998년 KBS 2TV 드라마 <순수>를 통해 연기 생활을 시작한 명세빈은 올해로 어느덧 28년 차 배우가 됐다. 숫자를 얘기하며 크게 웃은 명세빈은 "최승희 캐릭터가 색달라서 나도 끌렸던 것 같다. 그동안 '청순가련'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꼭 그런 역할만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어릴 때 만들어진 것에서 탈피하고 싶었다"며 "이 나이에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흔쾌히 받아들여 주시고 박수쳐주시는 분들도 감사하다. <닥터 차정숙>을 통해 자신감도 얻었고 배우로서도 한 단계 성장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명세빈은 "앞으로도 새로운 캐릭터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가 어렸을 때는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물론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배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부분이 많이 사라졌고 배우를 꿈꾸는 사람도 많아졌다. 후배 배우들을 봐도 자기를 표현하는 게 당당하고 자연스럽더라. 요즘 배우들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떻게 저렇게 거침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할까. 배우라는 직업이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고 위로하는 직업이지 않나. 저도 새로운 캐릭터로 더 다양하게 접근해보고 싶다."
닥터차정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