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의 한 장면.

넷플릭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의 한 장면. ⓒ 넷플릭스

 
1855년 이탈리아에서 한 여성이 변호사가 되었다. 토리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에서 여자가 변호사로 실제 활동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성은 후견인 남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던 시절, 그녀의 변호사 직위는 박탈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물론, 여성이 공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성의 인권 신장 운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40여 년이 흐른 후 65세가 되어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변호사 명부에 정식으로 등록했다. 그녀의 이름은 리디아 포에트, 넷플릭스 드라마 <리디아 포에트의 법>은 그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은 6부작으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드라마이다. 초록색 눈의 아름다운 여주인공, 매 장면마다 그녀의 패션쇼로 눈호강을 하게 해주는 비주얼, 거기에 양념처럼 등장하는 19금의 장면들 등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요소들이 많은 드라마이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흥밋거리를 차치하고, 드라마의 서사를 꽉 채운 것은 1800년대의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찾고자 애썼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가족도 인정하지 않는 그녀의 '자격'
 
 넷플릭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의 한 장면.

넷플릭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드라마 속 여주인공 리디아는 자신의 변호사 증명서가 너덜너덜해지도록 들고 다니며 자신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의 공적인 사회 활동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젊은 여성이 변호사라니, 변호인 접견을 위해 교도소에 드나드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엄연히 자격을 갖췄음에도 보수적인 남성들로 가득찬 법조인 사회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외려 자격 박탈 결정을 내린다. 어디 사회뿐일까. 가장 가까운 그녀의 아버지, 그녀의 오빠, 변호사를 가업으로 하는 가족들 역시 '니가 무슨 변호사냐'는 반응일 뿐이다. 심지어 아버지는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그녀를 결혼시키려 한다. 그런 아버지를, 원하지 않는 결혼을 거부하며 집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변호사 자격 박탈에 맞서, 역시나 변호사인 오빠의 법률 보조로라도 현장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이 후견인이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후견인이 될 뻔한, 아버지가 강제로 결혼시키려 했던 약혼자의 법률적 후견인이 되어 그를 구해낸다. 

드라마 속 리디아는 멋진 의상을 매 장면 선보인다. 그런데 그 보기에 아름다운 의상이라는 게 그녀의 몸을 단단히 조이는 코르셋을 기반으로 하여, 극도의 우아함을 추구하는 하지만 활동성이라고는 없는 드레스이다. 변호인도 만나야 하고, 법정에도 달려가야 하고, 억울함을 벗기기 위해 사건 수사도 해야 하고, 할 게 너무 경우, 그녀의 의상은 도무지 기능적이지 않다.

극 중 오빠 부인의 남동생, 즉 사돈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다짜고짜 자전거를 한 대 산 리디아, 그리고 그녀의 '포기배추'같은 드레스를 길게 가른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바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 장면은 그녀가 살던 시대 속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삶에 대한 그녀의 '응전 태세'를 상징하는 결정적 장면 중 하나다.

그렇다면 그렇게 전투복을 갖춰입고 달려간 리디아의 '법 현장'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녀가 처음 수임하게 된 사건은 당대 최고 인기를 끌던 발레리나의 죽음이었다. 밀실같은 공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그녀, 경찰은 그녀를 흠모했다는 초상화가를 체포한다. 가난한 예술가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와 사랑했다는 그의 주장은 묵살된 채 살인범이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법은 그랬다. 가난한 자, 여성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변호조차 하지 않으려는 가난한 화가의 변호를 맡은 리디아, 그녀가 찾아들어간 사건 안에는 보여진 것과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세상의 주목을 끄는 인기 발레리나는 당연히 잘 나가는 가문의 아들과 결혼하여 행복한 미래를 꿈꿀 줄 알았는데, 사실 그녀가 사랑한 건 가난한 예술가였고, 그녀는 부유한 귀족과의 결혼이 아니라, 발레리나로서의 미래를 꿈꿨던 것이다. 

즉 사건은 통속적이지만, 그 통속 속에 그 시대의 진실이 담겨있는 것이다. 부유한 공장주가 사망하자, 당연히 그의 후처로 들어온 젊은 여성이 잡혀들어가게 된다. 교수가 살해되자 오랫동안 그를 보필했던 여성 조교가 범인이 되었다. 그런 식이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는 게 아니라, 당시 사회적 시선으로 범인일 것 같은 사람을 범인으로 법정에 세웠다. 

당시 시선으로 변호사답지 않은 여성 리디아는 그렇게 세간의 선입견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에 반기를 든다. 변호사 자격증을 들고 거리를 누빈다. 
 
19세기 이탈리아 여성사 보여주는 작품
 
 넷플릭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의 한 장면.

넷플릭스 <리디아 포에트의 법>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교수를 살해했다는 여성 조교, 그녀의 진실은 이탈리아 판 <더 글로리>와 같다. 가난한 미혼모의 딸이었던 그녀, 그런데 그녀의 교수와 그 동료들은 가난한 미혼모들을 대상으로 의학 실험을 벌였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오랜 세월 그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았다. 자신의 어머니를, 가난한 미혼모들을 희생시켰듯 그들에게 복수를 돌려줄 때까지. 그저 살인범이었던 한 여성의 진실을 리디아는 법정에서 밝히도록 독려한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리디아에게 요구되는 것처럼 부유한 남편을 만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부채나 부치면서 문화 생활이나 하는 게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인 듯이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산업화가 시작되며 가난한 여성들은 임노동자로 나섰고, 변호사나, 교수처럼 그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역에 도전했다. 또한 결혼 대신 자신의 꿈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사회적 운동을 꾀하고, 한 걸음 더 나서서 당시 유럽을 휩쓴 사회주의 운동에 자신을 내던지기도 하던 시대였음을 <리디아 포에트의 법>은 보여주고 있다. 한 여성의 성장사인 6부작의 시리즈는 다른 면에서 19세기 이탈리아 여성사이기도 한 것이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애쓰던 리디아는 바로 그런 이탈리아의 현실에 발 담그게 된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녀의 남다른 수사로, 변호로 6부작의 사건들이 진실을 드러냈음에도 '자격 박탈'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을 변호사로 인정하는 미국이라는 신세계로 떠나야 할까? 다시 또 한번 몰래 집을 떠나는 그녀 앞에 많은 여성들이 기다리며 박수를 보낸다. 변호사는 여전히 아니지만 그녀가 이룬 게 없는 건 아니었다. 과연 리디아의 선택은? 
리디아 포에트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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