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헌법재판소는 군대 훈련소 종교행사 참석 강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제는 '법적으로' 훈련병들에게 종교행사 참석을 강제할 수 없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군대 훈련소에서는 일요일 오전마다 의무적으로 기독교와 불교, 천주교로 나눠서 훈련병들에게 종교행사를 보냈다. 따라서 종교가 없는 훈련병들에게 종교행사는 정신교육의 연장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훈련병들은 대부분 자대배치를 받은 후 더 이상 종교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행사의 짧은 1~2시간이 힘든 훈련과 긴장된 훈련소 생활을 잠시 잊게 해주고 그 시간 만큼은 마음의 위로를 받는 훈련병들도 있었다. 그렇게 훈련소에서 종교행사의 도움을 받았던 훈련병들은 자대배치 후에도 꾸준히 종교행사에 참여하고 그중 일부는 전역 후에도 종교를 갖고 왕성하게 활동하기도 한다. 어떤 이가 힘든 순간에 종교로 인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면 이는 종교가 좋은 방향으로 아주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종교는 누군가의 삶에 위로와 힘이 되는 순기능도 있지만 종교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종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에 개봉해 많은 영화 마니아들로부터 2000년대 호러 영화의 수작으로 평가 받았던 이용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불신지옥>은 종교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포 스릴러 영화다.
 
 <불신지옥>은 치열한 여름 극장가 경쟁에서 상영관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며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불신지옥>은 치열한 여름 극장가 경쟁에서 상영관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며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주)쇼박스

 
햄버거 가게 알바생에서 배우로 캐스팅

배우나 가수가 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거나 가수를 키우는 기획사의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다가 뜻하지 않은 기회로 연예계에 데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모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미모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유명세를 탔다가 연예기획사에 캐스팅돼 배우가 된 남상미는 상당히 독특한 계기를 통해 연기자가 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배우 데뷔 후 드라마의 조·단역과 단막극을 통해 경험을 쌓던 남상미는 2004년 <그녀를 모르면 간첩>을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재미 있는 사실은 당시 김정화가 연기한 간첩 출신의 림계순이 햄버거 프랜차이즈 얼짱 아르바이트생으로 출연했고 남상미는 림계순을 질투하는 선배 아르바이트생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같은 해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는 강동원의 여자친구 역을 맡아 김하늘과 묘한 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05년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를 통해 주연으로 도약한 남상미는 2006년 영화 <강력3반>에서 강력계 형사를 꿈꾸는 교통과 경찰을 연기했다. 2007년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 2008년 <식객>을 연속으로 히트시킨 남상미는 2009년 영화 <불신지옥>에서 동생의 실종사건을 쫓는 언니를 연기했다. 하지만 <불신지옥>은 영화의 좋은 평가와는 별개로 전국 25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남상미는 2011년 2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64부작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 고아 출신의 가수 지망생에서 최고의 배우가 되는 이정혜 역을 맡았다. 2012년 조승우, 류덕환과 함께 배우 구혜선이 연출한 영화 <복숭아 나무>에 출연한 남상미는 2013년 SBS 주말 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그해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배우로 입지를 단단히 굳혔다.

하지만 남상미는 2014년 <헬로우 고스트>의 김영탁 감독과 차태현이 다시 뭉친 <슬로우 비디오>가 110만 관객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영화활동을 접었다. 남상미는 이준기와 함께 했던 <조선총잡이>를 히트시켰고 2015년 결혼 후에는 2017년 <김과장>에 출연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남상미는 2018년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을 끝으로 연기활동을 중단했고 2021년 경기도 양평에 카페를 오픈해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영화 마니아들이 인정하는 21세기 호러 명작
 
 드라마를 통해 입지를 넓혀가던 남상미에게 <불신지옥>은 영화에서의 주연 데뷔작이었다.

드라마를 통해 입지를 넓혀가던 남상미에게 <불신지옥>은 영화에서의 주연 데뷔작이었다. ⓒ (주)쇼박스

 
시계를 잠시 2009년 여름으로 되돌려 보자. 7월 22일에 개봉한 <해운대>가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여름 극장가를 지배했고 같은 달 29일에 개봉한 <국가대표>도 800만 관객으로 하정우의 티켓파워를 확인했다. 물론 박해일과 신민아, 박희순, 정유미, 이민기 같은 스타배우들을 앞세우고도 43만 관객에 그쳤던 <십억>처럼 실망스런 성적의 영화도 있었다. 하지만 20억 원이 채 되지 않은 제작비로 만든 <불신지옥>에겐 모두 배부른 소리였다.

실제로 <불신지옥>은 <해운대>(753개)나 <국가대표>(580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37개의 스크린 밖에 확보하지 못했고 영화의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첫 주 흥행성적이 16만에 머물렀다. 결국 <불신지옥>은 <오펀: 천사의 비밀>과 <퍼펙트 겟어웨이> <요가학원> 등 신작들이 대거 개봉한 2주 차에 주간 흥행성적이 14위로 떨어지면서 사실상 극장에서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신지옥>은 영화팬들이 '2000년대 한국 호러영화의 수작'을 이야기할 때 2003년작 <장화, 홍련>, 2004년작 <알포인트>, 2007년작 <기담>과 함께 언제나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품이다. 특히 <불신지옥>은 호러 영화의 뻔한 클리셰 중 하나인 '점프 스케어(무언가 튀어나와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연출)'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도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호연만으로 런닝 타임 내내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불신지옥>에서 이야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희진(남상미 분)과 소진(심은경 분)의 엄마(김보연 분)는 '모든 질병은 병원이 아닌 기도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기독교 광신도로 나온다. 여기에 영화의 제목마저 <불신지옥>이다 보니 영화가 개신교에서 곱지 못한 시선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불신지옥>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종교에 대한 맹목적인 '광신'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기도 했던 이용주 감독은 2003년 대학선배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연출부로 일하며 영화계에 뛰어 들었다. 이용주 감독은 2009년 장편 데뷔작 <불신지옥>으로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흥행에서는 쓴 맛을 경험했다. 하지만 2012년 자신의 대학생활 경험을 투영한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410만 관객을 동원하며 <불신지옥> 흥행실패의 아쉬움을 달랬다.

<불신지옥>에서 드러났던 심은경의 떡잎
 
 <불신지옥>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인 심은경은 2년 후 <써니>를 통해 740만 관객을 동원했다.

<불신지옥>에서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인 심은경은 2년 후 <써니>를 통해 740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쇼박스

 
지금이야 <수상한 그녀>로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심은경의 연기를 의심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하지만 2009년 <불신지옥>이 개봉할 당시만 해도 심은경은 <황진이>에서 하지원 아역, <태왕사신기>에서 이지아 아역을 맡았던 평범한 청소년 배우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렇게 관객들에게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심은경은 <불신지옥>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엄마와 단둘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희진의 동생 소진을 연기한 심은경은 귀신이 들린 중학생을 소름 끼치게 연기했다. <불신지옥>에서 접신연기를 선보였던 심은경은 2년 후 첫 주연작 <써니>에서도 빙의 연기를 코믹하게 표현해 많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2014년 <수상한 그녀>를 통해 또 한 번 접신연기로 많은 관객들을 울렸던 심은경은 현재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년 연속 천만 영화에 출연했던 류승룡 역시 <불신지옥>에 나왔던 2009년은 한창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부지런하게 필모그라피를 쌓아가던 시절이었다. <불신지옥>에서는 투병 중인 딸(김유정 분)이 있는 소진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태환을 연기했다. 특히 영화 후반 희진을 공범으로 의심했다가 자신의 딸로 빙의한 희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류승룡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꼬방동네 사람들> <은마는 오지 않는다> <경마장 가는 길>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김보연은 2000년대에도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꾸준히 활동했다. <불신지옥>은 김보연이 오랜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로 김보연은 종교에 빠져 이성을 잃은 엄마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재미 있는 사실은 <불신지옥>에서 기독교 광신도를 연기했던 김보연이 실제로는 불교신자라는 점이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남상미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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