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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해 주고 싶어 기회가 될 때마다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함께 둘러 보았다.

첫 여행지였던 런던에서는 내셔널 갤러리를 비롯해 테이트 모던까지 런던에 있는 미술관은 거의 둘러봤는데 루벤스 그림은 화려했고 고흐의 해바라기는 입체감이 느껴졌다. 그 후에 가게 된 파리의 루브르에서 본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후광이 느껴졌고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은 크기와 장엄함에 압도되었다.

로마에서 본 미켈란젤로 작품들은 얼마나 경이롭던지. 창세기를 그림으로 나타낸 <천지창조>의 상상력, <최후의 심판>에서 표현된 인류 최후의 날에 대한 각양각색 인간 군상들에 대한 묘사는 훌륭하고 놀라웠다. 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본 잭슨 폴록의 그림들은 얼마나 자유분방하던지, 미국의 정체성을 보는 듯 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술관에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나는 그들의 그림에 압도되었고 섬세한 디테일에 숨 죽여야 했다. 사실적인 묘사들, 명암 처리와 구도와 표현의 완벽함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작은 그림들
 
건물 전경과 전시 현수막
▲ 마을미술관 비읍  건물 전경과 전시 현수막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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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의 나는 작고 소박한 그림들이 좋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그림에서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과 위로, 가슴 뭉클함이 느껴져서인 것 같다.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그림에는 그림이 좋아서 그냥 그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려낸 순수함이 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사람들의 작고 순수한 마음이 담겨있는 그림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우리 지역에 문을 열었다. 마을미술관 이름은 'ㅂ'(비읍)인데 보령의 첫 글자인 'ㅂ'과 미술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보다', '보이게 하다'의 첫째 자음인 'ㅂ'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퇴락해 가는 구도심을 활성화시키고자 도시재생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45평 규모의 마을미술관 비읍은 5월 19일에 개관했다. 개관 기념으로 열린 전시회 주제는 <인생그림책전 - '내 인생에서 잊히지 않는 것들'>이다.
 
시민들의 그림 전시
▲ 마을미술관 비읍 시민들의 그림 전시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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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인생그림책 만들기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물로 7명의 보령 시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그리고 써서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미술관에는 그림책뿐 아니라 원본 그림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에 그림을 그린 김환영 선생님이 마을미술관 비읍의 관장으로 인생그림책 만들기를 이끌었는데 7명의 작가들이 색연필이나 마카펜, 수채화를 써서 그린 그림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정감과 편안함을 준다. 그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이같은 순수함과 정직함이 보인다. 그리고 7권의 그림책에는 7개의 각기 다른 인생의 아픔과 슬픔, 그리움이 담겨 있다.

각자의 인생 
 
원본 그림(글, 그림: 박계순)
▲ 인생그림책 <밥숟가락> 원본 그림(글, 그림: 박계순)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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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진의 <반장 선거>에는 조용한 아이가 자신감을 갖게 된 사연이, 박계순의 <밥숟가락>에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이명희의 <대목 장날>에는 아버지의 고생스러움이, 박종오의 <어머니와 해피>에는 어머니와 강아지 해피와의 슬픈 이별이 담겨 있다. 박연숙의 <관악체육관>에는 어릴 적 추억이, 최윤희의 <나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에는 타지에 와 살면서 위로받은 이야기가 있다.

김주영의 <석탄박물관을 다녀와서>는 어린 시절 아픈 경험을 떠올리며 죽을 힘을 다해 살아온 이들 덕분에 얻게 된 오늘의 행복을 되새김질 해 보는 작가의 따듯하고 확장된 시선이 마음에 와 닿았다.

<밥숟가락>의 작가 박계순씨는 그림책을 탄생시키기까지에는 실력이나 재주보다는 노력과 헌신, 끈기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억 속 힘든 일들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힐링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작가의 말처럼 7인의 그림책에는 고단한 가족의 삶이 있었고 아픈 사람이 있었고 위로와 공감과 사랑이 있었다. 그것은 보는 이에게도 그대로 느껴져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인생그림책 그림 전시 공간
▲ 마을미술관 비읍 인생그림책 그림 전시 공간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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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단함과 슬픔, 아픔과 이별, 위로와 힐링이 7인의 인생그림책에 담겨 있는데 이들의 전시는 5월 19일부터 9월 19일까지다. 전시회에 와서 그림을 보고 그림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을미술관 비읍의 가장 좋은 점은 감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령 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해 나만의 인생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을미술관이 사람들의 고단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되고 생활 속에서 그림을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인생그림책 작가가 관람객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
▲ 마을미술관 비읍 인생그림책 작가가 관람객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장면
ⓒ 임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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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술관, #마을미술관, #마을 미술관 비읍, #그림, #인생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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