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 시즌2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카지노'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판을 키우던 차무식(최민식 분)의 장기판이 이제는 영역을 구분 짓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바다의 판으로 이어졌을 뿐.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은 사람은 장훈(이재훈 분)이라는 또 다른 욕망의 전차였다.

시즌2의 마지막 회에서 차무식은 자신을 찾아온 오랜 심복인 두 사람 이상구(홍기준 분)와 양정팔(이동휘 분) 앞에서 호언장담을 한다. 필리핀 카지노 제왕이던 차무식이 인적 드문 바닷가 초라한 집에 머물고 있는 처지에 말이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의 한 장면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의 한 장면 ⓒ 디즈니 플러스

 
입지전적인 사기꾼 차무식 

하지만 돌이켜 보면 차무식의 인생은 늘 그랬다. 불개미를 잡던 보육원 소년은 남들보다 월등하게 사업수완이 좋은 신문팔이 소년이 되었고, 민주화 시위를 하던 대학생은 북파공작원을 거쳐 학원 강사로 돈 좀 만지는가 싶더니 스스로 카지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돈을 쓸어 담던 대전의 카지노는 세금 포탈로 무너지고, 그는 도망치듯 필리핀으로 향했었다. 그때도 날마다 술을 들이부으며 지냈다. 돈을 갚지 못해 멱살까지 잡히던 처지였던 차무식은 보란 듯이 필리핀의 카지노를 휩쓸었다. 

2부 8회 쓸쓸한 바닷가에 서서 홀로 눈물 흘리던 차무식의 장면은 <카지노> 시즌 1, 2를 통틀어 몇 안 되는 감정 신이다. 양정팔의 말대로 '화무십일홍'인가 싶었는데, 초라한 피난처로 돌아온 차무식에게 서울에서 그의 뒤통수를 치려했던 장훈이 연락해 온다.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지노의 업장 관리를 맡아달라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 일어서면 되려니 했는데 '화무십일홍'이었다. 

<카지노> 드라마의 시즌 1, 2를 이끌었던 카지노의 제왕 차무식은 그러나 꽃이 떨어지듯 툭 하고 퇴장해 버렸다. 차무식의 은신처를 급습한 이들도 쓰러지고, 그들 모두를 제압하는가 싶었던 차무식도 끝내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차무식의 퇴장 장면이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구성은 <카지노>라는 드라마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의 한 장면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의 한 장면 ⓒ 디즈니 플러스

 
헐거운 개연성을 인물들이 채운다

"요즘에 누가 본방사수를 해요?" 시간 맞춰 텔레비전 앞에서 본방송을 챙겨 보는 것은 이제 정말 옛일이 돼버렸다. OTT가 등장하고 몰아보기는 자연스런 습관이 되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제는 OTT 가입도 하지 않고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보기도 한다. 심지어 더 짧은 숏폼 콘텐츠를 애용한다. 어쩌면 이런 세상에 <카지노>란 드라마는 참 안성맞춤이다. 유튜브 몰아보기로 보면 이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있을까 싶다.

초반 차무식의 어린 시절을 몰아보기 하던 기자는 회차를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기자뿐만 아니었다. 1, 2회에서 포기했다는 소식들이 꽤 들려왔다.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아버지, 고생하는 어머니, 찢어지게 가난한 집, 그 속에서도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재빠른 소년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들이었다. 제 아무리 AI의 힘을 빌린다지만 어색했던 젊은 최민식이 등장해서 대뜸 카지노 판에서 돈을 만지면서부터 그래도 이야기는 좀 동력을 가졌다.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손석구 나올 때부터 보면 된다고 말하듯, 많이 등장하지도 않았지만 손석구가 등장하는 회차부터는 드라마가 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손석구는 "<카지노>란 드라마가 다큐멘터리와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배우가 정확하게 짚은 듯하다. 제작진의 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상상 못 할 이들이 벌어진다. 학원 강사를 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허름한 공간 하나 빌려, 도박판을 벌이고 돈을 긁어모으는가 하면 또 필리핀으로 건너가 줄을 잘 잡으니 필리핀 카지노의 제왕으로 거듭난다.

이런 신기루 같은 이야기들이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들을 통해 이어진다. 마동석이 인연이 있는 형사들의 경험담을 기반으로 <범죄도시>를 만들어 가는 듯한 사실성이다. 또한 그런 사실적인 이야기들을 건조한 다큐적 구성으로 이어가며 한국 드라마 특유의 '신파성'을 자제하다 보니 외려 그게 드라마적 강점이 된다. 시즌 1, 2를 이끄는 최무식의 퇴장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의 한 장면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카지노>의 한 장면 ⓒ 디즈니 플러스

 
하지만, 그런 사실성이 <카지노>의 드라마틱한 재미를 온전히 채워주지는 않는다. 사실과 같은 사건들은 나열되어 있지만, 그 행간이 헐겁다. 사건들의 개연성을 묻고 따지고 하며 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북파 공작원을 다녀올 만큼, 어떤 면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차무식, 그리고 그런 자신의 본질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사람 좋은 사업가인 척하며 필리핀의 모든 실세들을 자기 손아귀에서 주무르던 차무식이 시즌 2에 이르러 '급발진' 하며 스스로 무너져 가는 모습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차무식의 자멸이라 할 만한 시즌 2에서 가장 뜬금없는 인물은 양정팔이다. 갑자기 도박을 하지 않나, 친구를 끌어들이지 않나, 그 친구로 인해 유치장에 갇히지를 않나. 그의 뜬금없는 해프닝들이 캐릭터의 개연성을 넘어 드라마의 필요성에 의해 이어진다. 그저 이쯤에서 그가 차무식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쯤에서 배신을 하면서 양정팔이란 인물이 최후에 내릴 선택의 개연성을 만들어 간다. 

그래도 차무식은 그의 몰락이 시즌 2를 주도했다. 극 중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에는 자비가 없다. 차무식 몰락의 트리거가 되는 김소정(손은서 분)과 필립(이해우 분)란 인물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마치 순번을 기다리듯 죽음을 맞이한다. 그만큼 차무식이 활동하는 필리핀이란 지역이 가지는 약육강식의 토양을 증명하는 듯하지만, 그러기엔 인물들의 소모적 서사로 시선을 잡아 끄는 캐릭터들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차무식이 봐줬음에도 날뛰다 죽음을 당한 서태석(허성태 분)이 아니었을까. 그를 비롯하여 캐릭터의 소모일까, 열연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인물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캐릭터들의 서사는 그저 드라마의 진행을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보여진다. 덕분에 그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하게 되지 않으니, 그의 퇴장에 큰 미련을 남기지도 않게 된다. 이게 바로 제작진의 의도일까 싶다. 

그럼에도 <카지노> 시즌 1, 2를 정주행 하게 만든 건 최민식이 만들어 낸 차무식이란 캐릭터의 매력에 빚진 바가 크다. 헐거운 개연성과 다큐멘터리같은 진행의 빈틈을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능글맞게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면서도 돈을 향해 직진한다. 심지어 때로는 인간적이기까지 한 다층적인 캐릭터를 최민식이 설득해 낸다. 그렇게 차무식이란 인물의 절대적인 기반 위에 이상구, 양정팔, 오승훈(손석구 분)란 인물들이 빚어낸 서사가 카지노라는 드라마를 끝까지 놓지 않도록 만든다. 서사는 헐거워도 인물과 사건만으로 돌진했던 드라마 <카지노>다.
카지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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