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이날만큼은 햄버거집 사장님이 아닌, 당당한 메이저리그(MLB) 스타 플레이어의 귀환이었다. 지난 19일 방영된 KBS 2TV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선 김병현의 미국 방문기가 그려졌다. 최근 김병현은 MLB 앰버서더 자격으로 미국을 찾아 당시 전지훈련중이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을 격려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낸 바 있다. 

​이번 시간에는 20여 년 전 처음 미국 프로야구 신인으로 입단했던 첫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홈구장 체이스플드를 찾아간 'BK' 김병현의 추억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한국 출신으로 MLB에 진출한 선수는 수없이 많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을 지닌 인물은 김병현 단 한 명 뿐이다. 그것도 두 차례(2001년 애리조나,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 우승 반지를 획득할 만큼 BK는 당시 손꼽히는 마무리 투수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그때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지금은 요식업 사업가, 방송인으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 김병현은 TV 중계로 MLB 경기를 시청하던 야구팬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황금기였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을 찾아간 김병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또한 그 시절 추억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4년 만에 열린 팬 페스티벌... 랜디 존슨 등 우승 주역 참석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구단마다 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MLB팀들은 봄철 합동 훈련인 '스프링캠프'(2월) 돌입에 앞서 팬들과 선수 또는 레전드 은퇴 스타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마련한다. 편의상 팬 페스티벌로 부르는 이와 같은 행사는 지난 2019년을 끝으로 3년가량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못했고 4년 만에 개최가 이뤄졌다. 

애리조나 구단은 1998년 팀 창단 후 처음이자 현재로선 유일한 우승 시즌인 2001년의 주역들인 밥 브랜리 감독(현 해설자), 에이스 투수 랜디 존슨(사진작가), 강타자 루이스 곤잘레스(사업가) 등을 초대해 팬 미팅을 주최했다. 여기에 당시 팀 내 막내 선수 격이었던 'BK' 도 참여하게 된 것이다. 

​가수 이찬원과 함께 고급 리무진 차량을 타고 구장에 방문한 김병현은 즐거움으로 가득찬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우승과 더불어 곧바로 미국 무대로 진출했던 그는 주로 불펜 투수로 활약했던 애리조나 시절 가장 빼어난 성적(우승, 한 시즌 36세이브 달성, 올스타 선정)을 거뒀기에 가장 추억 어린 장소일 수 밖에 없었다.

모처럼 만난 그 시절 동료들... 그리고 눈물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이찬원을 데리고 자신의 추억이 담긴 구장 곳곳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현지 팬들은 여전히 BK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통의 강자 뉴욕 양키스와의 치열한 2001 월드시리즈에서 비록 연달아 홈런을 맞긴 했지만 우승에 일조했던 선수였기에 김병현을 만난 애리조나 팬들은 반갑게 그를 맞이해줬다. 최근 한국을 찾아 BK의 식당을 들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병현은 모처럼 환한 미소를 드러내기도 했다.

​입단 당시 친하게 지냈던 구단 직원들과도 반갑게 재회한 그는 20여 년 전의 각종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어 진행된 행사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로 깜짝 등장해 인사를 나누는 등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스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라커룸과 트레이닝실 외에 힘들 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때론 잠도 잤다는 세탁실을 들러 이찬원에게 그때 일화를 전해주던 김병현은 그라운드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중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리곤 뒤돌아서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늘 그라운드에서 당당했고 예능에서 유머감 넘치는 입담을 과시하던 BK의 낯선 모습에 스튜디오 출연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도 애틋한 심정을 갖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미안함... 야구에 대한 애정과 미련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지난 19일 방영된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한 장면. ⓒ KBS

 
많은 팬들이 기억하듯이 김병현의 전성기는 짧고 굵게 지나갔다. 2004년 보스턴 소속으로 두 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했지만 부상에 따른 투구 밸런스 붕괴 등으로 인해 성적은 애리조나 시절에 비해 좋지 못했다. 결국 BK는 계속 팀을 옮겨다녔고 2007시즌을 끝으로 미국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후 일본, 호주 등을 거쳐 한국 프로야구에도 뛰어들었지만 예전의 영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애리조나 체이스필드를 방문한 김병현은 "좋으면서도 가슴이 아리다"고 언급했다. 20여 년 전 투구 도중 부러진 배트에 다리를 맞아 다쳤지만 회복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찍 마운드에 오르면서 그의 표현을 빌자면 '평범한 선수'가 되고 만 것이다.  

"후배들에게 부상이 왔을 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그때는 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그에게 당시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해준 눈물이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를 향한 마음의 빚을 털어낸 것 같다."  

​햄버거집을 야구장에 차린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야구장에 가깝게 있고 싶었던 그의 미련 때문이기도 했다. 그동안 철부지 꼰대 사장님으로만 비춰졌던 김병현이었지만 우리들에겐 "영원한 마무리 투수 BK"였음을 이번 방송을 통해 다시 한번 일깨워준 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가 마련한 멋진 선물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in.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사장님귀는당나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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