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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지난 연말 헬스장 PT를 등록했다. PT는 생전 처음이었다. 겨우내 춥다고 게으름을 피웠더니 체력이 떨어져 어지럼증까지 도졌던 터다. 동네 병원에서는 과로했냐며 전정기관 기능이 약해졌으니 푹 쉬라고 했다. 연말 작은 애 입시 결과에 조바심 낸 것이 탈이었을까. 한 달 동안 약을 먹으며 몸을 사렸다. 몸이 약해지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 통증들이 시작됐고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약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듯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마침 동네에 새로 오픈한 여성 전용 헬스장이 괜찮다는 이웃의 추천을 받았다. 헬스장이야 전에도 다니곤 했지만 주로 체중감량을 목표로 트레드 밀에서 유산소 운동을 줄창 해댔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깨와 허리, 무릎이 통증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마당에 체중감량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었다. 

나를 챙기는 일은 뒷전이 돼 버렸다

흐느적거리는 몸을 세우려면 근육강화만이 살 길이라 여겨졌다. 나랑은 상관없다 여기던 헬스장의 여러 운동 기구들을 유심히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운동 의지는 충천했으나 기구 사용법을 몰랐다. 근육이라곤 평생 신경 써 본 적도 없기에 PT 트레이닝이 필요했다. PT를 신청하려는데 막상 비용이 꽤 부담스러웠다. 고가의 비용 앞에 며칠을 고민하며 주춤거렸다. 다른 대안을 찾아보고 비용을 비교하며 궁리하기를 여러 날.

고민하느라 운동 시작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게 문득 한심했다. 평소 애들과 남편을 위해서라면 거금이 드는 곳에도 거리낌 없이 척척 쓰면서, 도대체 내 몸 돌보려는 비용에는 왜 이리 민감한지. 결혼 20여 년 동안 이리도 깊이 박힌 주부습성이라니... 나는 급할 게 없다고 뒤로 미루는 게 어느새 고질적인 습성이 되어버렸나 보다. 돌아보면 가족들 뒤치다꺼리에 나 자신을 챙기는 일은 대개 뒷전이었다.

식재료는 무조건 아이들 취향으로, 남편 옷가지만은 값이 좀 나가더라도 번듯하게, 가족들 한약을 다 챙겨 먹여도 나는 괜찮다며 쉽사리 생략했다. 여태껏 그리 가족을 위해 살아왔으면 이젠 나를 위한 PT 비용쯤이야 과감히 쓸 수도 있을 텐데 왜 자발적 제동을 거는 건지... 스스로 구차하게 구는 꼴이 점점 보기 싫어 어느 날 등록해 버렸다. 그마저도 액수가 큰 30회 수업은 감히 못하고 10회라는 타협안으로. 주부습성이 참 질기다.

그렇게 빠져든 PT의 세계는 매우 흥미로웠다. 기구에 앉아서 몸을 놀린다고 저절로 근육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근육이 제대로 자극받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가 관건이었다. 자세감각을 익히며 대퇴사근과 햄스트링, 대둔근, 중둔근 등 근육이름들을 익히는 재미도 있었다. 근육이름들로 새로이 알아가는 나 자신이랄까? 그간 일체로만 여겼던 몸을 부위 별로 인식하고 각종 근육 이름들로 부르는 일이 점점 친숙해졌다. 
 
새롭게 알게 된 PT의 세계는 알아가는 어휘만큼씩 다가왔다.
 새롭게 알게 된 PT의 세계는 알아가는 어휘만큼씩 다가왔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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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던 김춘수 시인의 시구처럼, 근육들의 이름을 알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내가 돌봐야 할 온전한 내 몸의 일부로서 의미 부여가 된 것 같았다. 브릿지, 플랭크, 데드리프트 등 여러 자세의 이름들과 렛풀다운, 레그 익스텐션 등 각종 기구들의 이름도 함께 익혀갔다. PT라는 새로운 세계는 새로이 알아가는 어휘만큼씩 다가왔다.

2kg만 들어도 부들부들 떨리던 팔로 4kg 아령을 올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운동하는 재미가 났다. 10회 3세트도 버겁던 것이 15회 5세트를 갈 때 뿌듯했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좋았던 건, PT 한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온갖 통증이 거짓말처럼 잡히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경을 조금만 써도 그렇게 뭉치고 결리던 목과 어깨가 편안해졌고, 묵직하던 허리와 아프던 무릎이 잠잠해진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저절로 미소가 방싯방싯 지어졌다.

사람 몸이란 어찌 이리 신비로운지. 방치하면 조금씩 뻣뻣해지다 기어코 탈이 나지만, 또 운동하고 잘 돌보면 금세 회복하는 힘을 가졌으니 말이다.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강조하는 트레이너님 말씀에 따라 식사에 주의를 기울이니 체중까지 약간 줄어 일거양득, 두 배의 기쁨이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PT의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낸 PT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은 건 물론이었다.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 때

10회 PT 수업이 거의 끝나가자 수업을 더 받고 싶은 욕심이 올라왔다. 효과를 보았으니 거두절미하고 바로 등록하면 될 것을 질긴 주부습성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스멀거렸다. 건강을 좀 더 챙기느냐, 돈을 아끼느냐의 갈림길에 또 서성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민을 짧게 잘랐다. 결심에 방해되는 생각들을 쳐내고 바로 눈 딱 감고 등록해 버렸다. 운동을 게을리하다 혹시 또 아프게 되면 병원비로 내는 돈이 더 아까울 테니 말이다. 

힘이 붙어 그런지 걸을 때 가슴이 저절로 쫙 펴진다. 무릎통증에 신경 쓰지 않으니 걸음걸이도 한결 가볍다. 건강을 잃기 전에 챙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더불어 PT비용 고민은 내가 꽤 오랜 시간 가족만을 우선시하며 살아왔음을 알아차리는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이젠 가족만을 위해 소진되지 말고 조금 더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 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새롭게 피어나는 봄날의 새싹처럼 나도 새롭게 피어나야겠다. 운동뿐 아니라, 그간 미뤄왔던 취향과 식성 등에서 나의 선호들을 좀 더 드러내며 그때그때 만족하고 채우며 말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만족은 오직 나의 책임이고, 나만이 빚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며.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PT비용,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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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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