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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현대사 최악의 인권유린을 자행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폭력을 인정하고 정부의 사과를 권고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자를 선도한다며 현대사 최악의 인권유린을 자행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국가폭력을 인정하고 정부의 사과를 권고했다.
ⓒ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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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인 유아무개씨는 지난달에야 48년 동안 떨어져 있던 가족과 극적으로 만났다. 1975년 남편이 숨지자 어려움을 겪었던 어머니는 당시 11살이던 유씨를 보육원에 맡겼다. 그러나 유씨는 가혹행위를 참다못해 시설을 탈출했고, 이때부터 강제실종 상태에 놓였다. 어머니를 찾고자 부산역을 찾았다가 형제복지원으로 강제수용된 것이다. 이후 겨우 살아남았지만, 그는 수십 년간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다.

40대 후반인 안아무개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1982년 당시 6세인 안씨는 어머니와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5년 뒤 어머니와 분리돼 타 시설로 옮겨졌다. 하지만 다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로부터 41년이 흘렀고, 최근 더는 만나지 못할 것 같던 형제의 소식이 극적으로 전해졌다.

중앙정보부 보고 "형제복지원 부산시 필수기관"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사라진 사람'이 됐던 피해자들이 이제야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 있다. 8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해자들의 최근 상봉 사례를 함께 공개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수용과정에서 실종 처리돼 가족과 강제로 단절된 경우가 빈번했다.

공식기록만으로도 600명 이상이 사망한 형제복지원은 한국 현대사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로 불린다. 과거 군사정권은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랑인 등을 마구잡이로 강제수용해 노역, 학대, 폭력을 일삼았다. 지난해 8월 국가폭력을 인정한 진화위는 정부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으로 사과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전체 진실규명 대상자 중 앞서 1차로 인정된 피해자는 191명에 달한다. 진화위는 이번 추가조사를 통해 146명의 피해자를 더 찾아냈다. 이로써 현재까지 확인한 피해자는 337명으로 늘어났다. 조사가 계속되고 있어 그 규모는 더 커질 예정이다. 이날도 진화위는 권고에 따른 정부의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거듭 촉구했다.

이번 발표에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기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사건을 형제복지원을 묵인한 정황도 담겼다. 새롭게 공개한 자료를 보면, 1977년 중앙정보부는 "형제복지원이 선량한 시민을 감금·폭행하고 있다"라는 첩보를 입수해 내사에 들어갔으나 두 달 만에 사건을 종결했다. 형제복지원이 '부산시의 필수적인 기관'이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이 첩보를 보면 ▲부산 체신청 산하기관 모집 시험에 응시하러 부산에 간 20대 청년이 야간 통행금지 위반으로 붙잡혀 형제복지원에서 2일간 삭발·불법감금 ▲원양어선 어부가 야간 통행금지를 위반해 형제원에 감금, 승선하지 못하고 생업을 잃음 등의 여러 피해 경위가 기록돼 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는 '문제가 없다'라는 복지원 측의 소명을 수용해,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부산 시내의 부랑인을 수용·선도함으로써 범죄의 사전 예방 및 건전한 부산시가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라고 형제복지원의 범죄를 두둔했다.  

태그:#중앙정보부, #형제복지원, #강제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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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보성 기자입니다. kimbsv1@gmail.com/ kimbsv1@ohmynews.com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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