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인물들의 심리를 탐구해봅니다. 그 때 그 장면 궁금했던 인물들의 심리를 펼쳐보면, 어느 새 우리 자신의 마음도 더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편집자말]
"난 대한민국 사교육 과열은 다 엄마들 책임이라고 봐. 너무 유난들인 거지. 유난이 유난을 낳고 유난이 집착이 되고. 집착은 또 경쟁을 낳고"
 
tvN <일타스캔들>의 첫 회. 국가대표 반찬가게 사장 행선(전도연)은 이렇게 말한다. 가정 형편을 고려해 스스로 공부하는 해이(노윤서)의 '엄마'(낳지는 않았지만 버려진 어린 해이를 키운 행선은 엄마와 다름없는 존재다)인 행선은 사교육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수학에서 번번이 1등급을 놓치는 해이는 조심스레 행선에게 수학 일타강사 치열(정경호)의 강의를 듣고 싶다하고 그렇게 행선 역시 대한민국 사교육 현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다짐한다. "나도 열혈 엄마가 되어 보겠다"고.
 
이렇게 시작된 <일타스캔들>은 일단 재밌다. 진심과 열정이 있지만 나름의 아픔을 지닌 치열이 행선의 음식을 통해 치유되어 가는 과정 또한 따뜻하다. 쇠구슬 살인으로 버무려진 스릴러의 요소도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가 거듭될수록 마음 한편에 찜찜함이 올라왔다. 이는 아마도 드라마가 '당연하게' 그리고 있는 사교육에 대한 '강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일타스캔들>속 인물들의 '공부 강박'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본다.
  
 강박적인 사교육 열풍이 극의 주요 모티브인 '일타스캔들' 포스터

강박적인 사교육 열풍이 극의 주요 모티브인 '일타스캔들' 포스터 ⓒ tvN

 
강박적으로 공부에 집착하는 어른들
 
행선의 표현대로라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모두 '열혈맘'이다. 아이들의 학원이 끝나는 밤 10시면 교통이 마비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이 엄마들의 일과는 학원 스케줄에 따라 정해진다. 그 중 첫 아이를 '스카이'에 입학시키는데 실패한 변호사 서진(선재맘/장영남)과 맘카페 인플루언서로 학원가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희(수아맘/ 김선영)는 열혈맘 중에도 열혈맘이다. 이들은 이런 대사를 종종 던진다.
 
"엄만 너밖에 없는 거 알지? 너마저 잘못되면 엄마 진짜 죽어." (2회, 서진)
"얜 네 경쟁자야." (3회, 서진)
"개념이 없네. 그런 자료를 유출하다니." (6회, 수희)

 
나는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고, 친구마저 '경쟁자'로만 바라보도록 하는 이 엄마들의 말들이 참으로 씁쓸했다. 동시에 이런 말들이 현실에서도 낯선 것이 아님에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현실적인' 대화들이 오가는 가운데 급기야 5회 한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들은 함께 공부하던 아이의 죽음 앞에서도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난 이럴수록 휴강은 아니라고 봐. 어차피 애들도 다 알 텐데 얼마나 놀랍고 무섭겠어요? 근데 수업까지 안 해? 그럼 우리 애들 멘탈 더 흔들려요." (수희)
"그건 저도 동감이에요. 이럴 때 휴강하고 방치하면 애들이 더 동요하죠." (서진)

 
이 대목에선 소름이 끼쳤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에게 애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공부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딘가 많이 아파 보였다. 공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 인물들의 모습은 '심리적으로 무언가에 집착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태인 '강박'과 매우 유사했다. 더 소름 돋는 건 이런 대사들이 개연성 있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이런 전개가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 자체가 '공부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 실제 현실이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강박을 유발하는 세상
 
심리학자들은 강박을 일종의 불안반응이라고 본다. 무언가에 심한 불안과 압박감을 느낄 때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강박이다. 이런 강박적 사고와 행동의 많은 부분은 '파국적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걸 하지 않으면 큰일이 생기거나 파괴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들 때 점점 더 그 행동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일타스캔들> 속 엄마들에게 공부에 대한 집착은 일종의 강박과 같다. 이들은 좋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큰일'이 나고, 친구와의 우정을 나누거나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매우 '큰 문제'인 것처럼 지각한다. 공부가 아닌 다른 모든 것은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위험한 것이라 여기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인물들이 한두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속 대부분의 학부모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 사교육을 비판했던 행선마저 해이가 올케어 반에서 빠지자 마치 '큰일'인 것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이런 설정들이 전혀 억지스러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현실에서도 대다수가 이런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모두가 이런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은 그 원인이 개인이 아닌 사회에 있다는 뜻일테다.
 
 <일타스캔들>의 엄마들에겐 학원수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타스캔들>의 엄마들에겐 학원수업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 tvN

   
이는 드라마에서도 잘 드러난다. <일타스캔들> 속 세상엔 '아버지'가 부재한다.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는 이는 모두 엄마들이고, 엄마들은 아이의 학업적 성취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 이는 여성의 삶을 엄마 역할에 그것도 자녀의 출세에 가두는 유교적 가부장 문화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또한, 오직 '의대'만이 살길인 대한민국의 현실도 잘 드러나 있다. 드라마에서 '올케어' 반은 의대 입시를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 올케어반에 들어간 아이들이 의대를 가고 싶어하는지는 드라마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해이조차 자신이 의대를 원하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올케어반에 붙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한다. 이는 다양한 직업이 존중받지 못하는, 그러니까 위계적 직업관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공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파국적 사고를 확장시킨다. 그리고 이는 치열이 말하듯 모든 부모와 아이들을 "데스게임"(5회)속으로 끌어들인다. '데스게임'은 당연히도 불안을 조장한다. 불안은 강박을 키우고 결국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불안해도 괜찮은' 사회
 
그렇다면 이런 강박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단지 '공부를 잘해 의대에 가야 한다'가 아니라 '내가 왜 공부에 집착하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불안은 무언가를 잘 알지 못하고, 모호할 때 더욱 커진다. 내 마음의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불안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와 선을 긋는 용기도 내어 보아야 한다.
 
'불안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상담자들은 불안으로 인한 강박으로 상담실을 찾은 이들에겐 '불안해도 괜찮다'는 것을 느끼도록 돕는 개입을 한다. 사실 불안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정서이다. 불안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위협을 지각하고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불안 자체는 터부시할 감정이 아닌 것이다. '불안한 상태'를 불안해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불안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불안에 압도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러니까 불안해도 괜찮은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조금 불안한 미래를 꿈꾸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의대처럼 미래가 보장되는 곳에 진학하지 않고, 진짜 내 꿈을 위한 불안을 선택한다면 '도무지 괜찮지 않을 것'처럼 몰고 간다. 보다 다양한 꿈과 진로가 존중받고, 이를 찾아가는 동안 느껴지는 불안들을 사회가 '괜찮다'고 수용해준다면, 의대 진학을 위해 공부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일타스캔들>의 아이들은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사망한 후에도 바로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다.

<일타스캔들>의 아이들은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사망한 후에도 바로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다. ⓒ tvN

 
나는 <일타스캔들>의 인물들이 이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지나친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서진이 아이들의 공부에 집착하는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수희가 아이에게 바라고 있는 게 무엇인지 성찰해 볼 수 있다면 '공부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이와 드라마 속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꿈을 추구하는 모습도 그려진다면 정말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일타스캔들>은 정말 재밌다. 치열처럼 멋진 일타 강사가 내 아이의 선생님이 되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전하는 재미를 누리는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이는 드라마에서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현실의 부조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을 무시하지 말고 질문해보았으면 한다. 이 '공부 강박'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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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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