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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2022년 발굴유해 2차 안치식이 2일 오전 10시 30분에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열렸다.
 한국전쟁 전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2022년 발굴유해 2차 안치식이 2일 오전 10시 30분에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열렸다.
ⓒ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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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2022년 발굴유해 2차 안치식이 2일 오전 10시 30분에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열렸다.
 한국전쟁 전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희생자 2022년 발굴유해 2차 안치식이 2일 오전 10시 30분에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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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말 대전 산내 골령골(대전 동구 낭월동)에서 발굴한 유해 중 세종 추모의 집으로 안치하지 못한 나머지 유해를 뒤늦게 안치했다.

앞서 대전광역시 동구(구청장 박희조)는 2022년 1학살지에서 111구의 유해를 수습해 11월 16일에 세종 추모의 집으로 안치한 바 있다. 하지만 2학살지 유해는 발굴을 끝내지 못해 함께 안치하지 못했다.

2학살지는 지난 2017년부터 유해를 찾기 위해 몇 차례 시굴 조사를 벌였지만, 유해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다 발굴작업 막바지에 이른 지난해 유해 흔적을 극적으로 발견하고 본격 발굴에 나섰다.

그 결과 80구의 유해를 수습하고, 단추, 안경과 시계, 수갑 등 1535점의 유품과 탄피를 수습했다. 3~6학살지 등 다른 지점에서도 추가로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시굴조사를 진행했지만 유해 및 유품은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해 산내 골령골 2학살지 유해발굴 현장과 발굴된 유품들
 지난해 산내 골령골 2학살지 유해발굴 현장과 발굴된 유품들
ⓒ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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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 골령골 학살지 모습. 지난 해 1지점(학살지)와 2지점(학살지)에서 111구와 80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나머지 지점에서는 시굴 작업을 벌였지만 유해나 유품을 추가로 발견하지는 못했다.
 산내 골령골 학살지 모습. 지난 해 1지점(학살지)와 2지점(학살지)에서 111구와 80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나머지 지점에서는 시굴 작업을 벌였지만 유해나 유품을 추가로 발견하지는 못했다.
ⓒ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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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안치식이 2일 오전 10시 30분 골령골에서 열린 가운데, 유해발굴을 맡았던 우종윤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은 "긴 무덤을 발굴조사하면서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은 정상적인 삶의 멈춤이 아니었고, 정상적인 매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우 원장은 "아픈 역사의 시시비비를 확실하게 가려내야 이 긴 무덤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또 다른 갈등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진실과 화해가 공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규용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 상임대표도 "지난해를 끝으로 유해발굴은 어느 정도 마쳤다"며 "이제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의 반성이 담긴 평화인권 교육을 할 수 있는 평화공원을 조속히 조성하기 위해 첫 삽을 뜰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 상임대표는 "오늘 세종으로 모시는 유해들이 다시 산내 골령골로 되돌아 올 때, 이곳이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도 유족회와 함께 지역 사회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유해 80구와 유품 1531구를 발굴해 오늘 이렇게 세종 추모의 집으로 모시게 됐다"며 발굴단을 비롯해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안치식이 끝난 후 유족들이 유해상자를 영구차로 옮기고 있다.
 안치식이 끝난 후 유족들이 유해상자를 영구차로 옮기고 있다.
ⓒ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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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추모의 집에서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오른쪽)이 산내 골령골에서 가져온 유해 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세종 추모의 집에서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미경 회장(오른쪽)이 산내 골령골에서 가져온 유해 상자를 전달하고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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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 골령골 안치식을 마친 후 이들은 유해와 유품이 담긴 상자를 영구차에 싣고 국가 임시 안치 시설인 세종 추모의 집(세종시 전동면)으로 옮겼다. 세종 추모의 집에는 2007년 골령골 2개 지점에서 수습된 34구(진실화해위원회)를 포함해 2015년 20구(민간단체), 2020년 234구(정부주도), 2021년 962구(정부주도), 2022년 1차로 안치된 111구와 이번에 안치한 80구의 유해를 합해 1441구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세종 추모의 집에는 산내 골령골에서 발굴된 유해뿐 아니라 경남 경산 코발트 광산, 진주, 충남 홍성, 아산, 충북 청원 분터골 등에서 수습된 유해도 함께 안치돼 있다.

향후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전국단위 위령시설인 가칭 '진실과 화해의 숲'을 조성해 봉안시설을 마련해 유해를 안치할 계획이다. 진실과 화해의 숲에는 봉안시설뿐만 아니라 평화와 인권 교육을 위한 전시 시설과 마련될 예정이다.

한편 대전광역시 동구는 오는 9일 오후 4시 30분에 지난해 진행한 유해발굴에 대해 최종보고회를 대구동구청에서 개최한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법적 절차 없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 최소 1800명 이상, 최대 7000여 명의 민간인이 집단 학살당해 암매장된 비극의 현장이다.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 중에는 제주4.3사건 관련자 300여 명을 비롯해 여순사건 관련자도 수백명 포함돼 있었고 대부분은 학살당했다. 9·28수복 이후에도 소위 부역혐의자 처벌이라는 이유로 학살은 계속됐다.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이 안치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우종윤 원장이 안치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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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안치식에서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가 골령골 유해발굴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해 안치식에서 박선주 충북대학교 명예교수가 골령골 유해발굴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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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산내 골령골, #골령골 유해 안치,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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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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