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일 블루 아이>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일 블루 아이> 포스터. ⓒ 넷플릭스

 
1830년, 하얀 눈으로 뒤덮인 미국 뉴욕주 어느 오두막에서 살고 있는 은퇴한 형사 아우구스투스 랜더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웨스트포인트 미국 육군사관학교 부교장이었다. 그는 전설적인 형사 랜더에게 수사 요청을 하러 온 것인데, 자그마치 주지사의 추천이라고 했다. 랜더는 3년 전에 아내를 잃고 딸은 행방불명인 상황이라 경황이 없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웨스트포인트로 향한다.

시체안치소로 갔더니 목을 매고 죽은 채 발견된 한 생도의 심장이 예리하게 도려내져 있었다. 사건이 확대되면 안 그래도 존망이 위태로운 육사가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었다. 랜더는 술집에서 한 생도를 만나는데,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한 그는 육사의 규율을 경멸하고 소설과 시를 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에드거 앨런 포였다.

랜더는 호기심 충만하고 능력도 있으며 사건에 관심이 많은 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로선 엄격하게 교육받아 침묵을 지키려는 생도들에게서 의미 있는 얘기를 듣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랜더는 피해자의 심장이 알 수 없는 의식에 쓰였다는 걸 알게 되고, 점점 더 사건의 핵심으로 다가가는데... 랜더와 포는 끔찍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칠 수 있을까? 해결할 수 있을까?

창백한 푸른 눈동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페일 블루 아이>는 미국 작가 루이스 베야드가 2006년 내놓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크레이지 하트> <아웃 오브 더 퍼니스> <블랙 매스> <몬태나> <앤틀러스>까지 선굵은 영화들을 꾸준히 내놓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한 '스콧 쿠퍼' 감독이 영화화했다. 지난 2021년 베를린영화제 부대 행사 유럽필름마켓에서 넷플릭스가 자그마치 5500만 달러를 들여 이 영화의 글로벌 판권을 구입해 화제를 뿌린 바 있다. 넷플릭스 공개 후 괜찮은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스콧 쿠퍼 감독과 <아웃 오브 더 퍼니스> <몬태나>를 함께한 오스카 수상자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으로 참여해 비할 데 없는 중량감을 선사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더들리 더즐리로 유명한 '해리 멜링'이 에드거 앨런 포 역으로 참여해 비할 데 없는 풍성함을 선사한다. 자칫 지루하고 또 산만할 수 있는 영화를 두 배우가 탄탄하게 이끌고 간다.

제목 <페일 블루 아이>는 영어 'pale blue eye'를 그대로 가져온 모양새인데 직역하면 '창백한 푸른 눈동자' 정도 되겠다. 영화를 끝까지 봐야지만 깨달을 만한 제목의 의미인데, 영화를 시종일관 가득 채우는 설원의 풍경과 맞물려 시리도록 슬픈 사연이 뒤따른다. 추리를 위한 추리, 미스터리를 위한 미스터리가 아닌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딕 미스터리 스릴러

<페일 블루 아이>는 고딕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다. 중세 고딕 양식 건축물의 신비롭고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기인했는데, 오늘날에는 광범위해졌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인간의 이상 심리를 다루면 '고딕' 장르의 범주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정통에 가까운 고딕 장르다. 웨스트포인트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섬뜩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로 풀어냈으니 말이다.

사건을 풀어내는 이성보다 분위기에 압도되고 인물에 빠져드는 감정에 호소하는 스타일이기에, 작품을 즐기는 결이 맞지 않으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반대로 충분히 감정을 이입해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도 있다. 작품 자체의 만듦새, 즉 작품이 힘을 준 포인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기보다 작품의 태생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개인적으로 지루한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설원을 배경으로 온갖 감정이 끼어들고 대립하고 격랑에 휩싸여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하게 하는데, 정작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탄탄하지 못했다. 탁월한 연기력과는 별개로 스토리 자체가 빈약하지 않았나 싶다. 또는 분위기와 배경에 압도되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차라리 분위기와 배경이 영화 자체를 떠받들게, 보다 더 황량하고 처절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에드거 앨런 포

영화는 2시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슬픈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여타 추리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이 떡 벌어지게 하거나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듯한 대반전이 아니라 가슴 아픈 사연이 동반된 반전이라 영화 전체의 서사를 조금 더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사실 이 영화를 즐기는 데 있어 키포인트가 될 수 있는 인물이 있는데, 다름 아닌 '에드거 앨런 포'다. 추리소설의 시초로 불리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실제로 웨스트포인트에 입교해 생활하기도 했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알 만한 분들은 알겠지만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음울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 영화의 분위기와 결을 같이 한다. 그러니 에드거 앨런 포를 아는 만큼 <페일 블루 아이>를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테다. 

스콧 쿠퍼 감독과 크리스찬 베일의 조합은 꽤 적절한 것 같다. 영화계를 뒤흔들 만한 퍼포먼스를 내뿜지는 못하지만, 애초에 그런 의도로 기획된 영화들을 만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진중하고 선굵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수요가 있을 것이니 때맞게 공급하면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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