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우주의 중심을 발견하는 날, 많은 사람들이 그 중심이 아님을 깨닫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버나드 베일리가 남긴 말이다. 우주에는 주인이 없고 누구의 소유도 허락하지 않았건만, 정작 인류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주를 차지하겠다고 지금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주 탐사는 인간을 위한 또다른 기회의 신대륙일까. 아니면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재앙의 시작일까.
 
1월 31일 방송된 tvN 역사교양예능 <벌거벗은 세계사> 84회는 '기회인가 재앙인가, 21세기 우주패권경쟁' 편을 통하여 인류의 장대한 우주탐사 역사를 조명했다. 천문학자인 김성수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미합중국 항공우주국(NASA)는 미국 대통령 산하 직속기관으로 전 세계를 대표하여 우주개발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조직이다. 인공위성, 국제 우주정거장, 천체관측, 달 탐사 등은 모두 나사의 주도하에 남긴 우주 관련 성과들이다. 미국에서도 나사는 진정한 천재들만 갈 수 있는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고.
 
이러한 나사가 탄생하고 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에는, 바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Cold War)이 있었다. 20세기 들어 세계의 두 초강대국으로 자리잡은 미국과 소련은 지구는 물론이고 우주에서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은 미국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은 소련의 우주기술이 자신들보다 앞서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인공위성 기술을 바탕으로 소련이 이제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미국 본토에 언제든 핵미사일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직면한 것. 이를 미국에서는 '스푸트니크 쇼크'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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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지 한 달 뒤인 1957년 11월 3일에는 2호를 발사하며 이번에는 '라이카'라는 개를 탑승시켰다. 떠돌이 개였던 라이카는 '우주로 간 최초의 생명체이자 우주견'이라는 타이틀을 안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발사한 위성을 다시 회수할 수 있는 기술까지는 없었고, 발사 과정에서 온도조절 장치까지 손상되며 라이카는 발사 몇시간 만에 안타깝게 사망했다. 현 시대의 관점에서는 동물학대와 생명 경시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지만 1950년대의 사회적 인식은 지금과는 달랐다.
 
소련에 자극받은 미국은 같은해 12월 6일 로켓 '뱅가드 TV3'를 완성하지만 발사 2초만에 이륙도 못 하고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더 큰 망신만 당했다. 
 
우주개발경쟁에서 소련에 밀릴 위기에 놓인 미국은 독일 출신의 로켓 공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1958년 1월 마침내 인공위성 '익스플로러'를 발사하는 데 성공한다. 폰 브라운은 '로켓 공학의 천재', '미국 우주개발의 아버지'로까지 불리우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가 2차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의 나치 독일에서 민간인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2차대전 이후 패권경쟁을 위하여 독일의 과학자를 포섭하는 데 공을 들였고, 폰 브라운도 이 과정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미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소련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적인 우주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하여 1958년 10월 1일 항공우주국 나사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1961년 로켓에 생명체를 태워 우주로 보내는 실험을 진행했다. 소련에게 강아지 라이카가 있었다면, 미국은 침팬지 '햄'이 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라이카와는 달리, 햄은 사전에 레버를 누르는 훈련을 받았고 발사 이후 약 16분의 비행 만에 캡슐과 분리되어 대서양에 추락했으나 무사히 구조됐다. 햄은 비행완료 이후에도 약 20년간이나 건강하게 살았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패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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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을 확인한 미국과 소련의 우주패권 경쟁은 이제 '우주인'의 탄생으로 눈높이가 바뀌었다. 1961년 4월 12일 오전 9시 7분,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소련의 공군조종사 유리 가가린은 무사히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하며 '세계 최초의 우주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소련이 이번에도 미국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한 발 앞선 것이다. 미국도 불과 한 달 차이로 해군 조종사였던 앨런 셰퍼드가 우주비행에 성공하지만, 가가린의 그늘에 가려서 셰퍼드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이제는 달(Moon) 탐사로 옮겨갔다. 존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아폴로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사람에 의한 달 탐사와 무사귀환을 추진하는 비행탐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불과 10년 안에 달 탐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케네디의 선언은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68년 아폴로 8호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하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의 사진을 촬영하며 '사람의 눈으로 지구 전체를 바라보는 우주여행'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 등을 태운 아폴로 11호는 지구를 떠나 마침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달에 발자취를 남긴 최초의 인간이 된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 있어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당시 생중계된 방송을 전 세계인들이 시청하며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약을 함께 목격했다.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비행사들은 무사히 지구로 귀환에 성공했다. 아폴로 계획을 처음 공개했던 케네디 대통령은 달 착륙 6년 전에 암살 당하며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꿈은 이어져서 결국 현실이 된 것.
 
당시 우주비행사들은 달에서 채취한 월석과 먼지 샘플 22kg을 가지고 돌아왔고, 미국은 이벤트 차원에서 우주비행서들에게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고 통과하게 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격리기간까지 무사히 마친 후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축하 퍼레이드를 벌였다.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탐사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이 아폴로 계획에 투자한 비용은 현대 원화로 환산하면 무려 약 200조 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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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각에서는 달 착륙이 조작된 거짓이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음모론자들은 '공기가 없는 달에서 어떻게 성조기가 휘날렸는가', '습기가 없는 달에서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는 게 가능할까', '뜨거운 달 표면에서 어떻게 사진촬영이 가능했나' 등을 놓고 의문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들을 하나씩 반박했다. 달은 레골리스라는 토양층을 가지고 있으며 쉽게 눌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발자국을 남기는 게 가능하다는 것. 또한 달에 비바람같은 기상 현상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주비행사들이 남긴 발자국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달은 대기가 없기 때문에 태양빛을 그대로 흡수하여 높을 때는 최고 120도까지 온도가 치솟을 수 있지만, 그만큼 열 전달률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폴로 11호는 달의 온도가 높지 않은 시점에 착륙했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했다는 것.
 
달 탐사는 대성공으로 끝났지만, 한편으로 이는 한동안 우주패권경쟁이 시들해지고 나사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1972년 아폴로 17호를 끝으로 나사의 유인 우주비행은 9년간이나 명맥이 끊겼다.
 
인류에게 큰 감동과 전율 준 보이저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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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경쟁을 벗어나면서 진정한 우주탐사 프로젝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로 '태양계 탐사'였다. 나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라는 별명이 붙은 탐사선 보이저 1, 2호를 발사했고 이들은 1977년부터 지금까지 인류역사에서 가장 먼 거리를 관측했다는 기록을 경신중이다.
 
보이저는 태양계를 탐사하며 목성 일대에서 화산활동의 흔적을, 토성의 대기가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되었다는 것과 고리의 복잡한 구조를 밝혀내는 등, 우주탐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 기념비적인 성과를 남겼다. 보이저는 최초이자 최후로 남은 천왕성과 해성왕의 사진까지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보이저호가 찍은 수많은 사진 중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큰 감동과 전율을 준 한 장이 바로 '창백한 푸른 점'이다. 태양계를 붉은 띠처럼 둘러싸고 있는 우주먼지 속에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지구였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카메라를 태양계 안쪽으로 돌려 찍은 사진이 지구에 전송되었고, 당시 보이저와 지구간의 거리는 60억 km였다. 이는 인류역사상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찍은 사진이었고 이는 우주역사를 다룬 <코스모스>의 저자인 고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세이건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일부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주 탐사만큼이나 인류의 풀지 못한 미스터리 중 하나는 바로 '외계생명체'의 존재 여부다. 보이저 1, 2호에는 '황금 레코드'라는 자료가 들어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수 있는 우주 생명체와의 조우를 대비하여 총 55개국의 언어로 지구의 삶과 음악, 생활소음 등의 기록을 담아놓은 것. 이처럼 외계의 지적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나 흔적을 찾는 것은 1960년부터 '세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어 왔다.
 
지구에서는 그동안 외계 생명체에 대한 수많은 목격담과 음모론이 양산되었지만 뚜렷하게 확인된 것은 없으며 수수께끼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확고한 증거를 찾기 위한 탐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나사는 1960~1970년대 우주탐사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 눈을 돌린다. 나사는 우주탐사에 대한 대중의 줄어든 관심을 만회하기 위하여 우주왕복선에 민간인인 교사를 탑승시키는 '티처 인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선생님을 우주선에 태워서 우주에서 원격 수업으로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는 '챌린저호 폭발 사건'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 1986년 1월 28일, 무려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고등학교 사회 교사 크리스타 매콜리프를 비롯한 8명의 우주인들이 발사 73초 만에 챌린저호가 폭발하며 전원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 당시 미국 전역에 발사 장면이 생중계되었기에 실시간으로 폭발사고를 목격한 학생들과 국민들은 패닉에 빠졌고 기절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사고 원인은 작은 부품의 균열에서 비롯됐다. 연소를 막기 위하여 장착되었던 'O링'이라는 부품이 하필 발사 전날의 갑작스런 이상 추위로 균열이 생겼고, 기능에 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초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 당시 사고의 여파로 나사의 우주 관련 추가계획들이나 우주왕복선 발사는 모두 연기되거나 정지됐다. 이 사건은 지금도 미국 항공우주과학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억된다.
 
민간 우주개발 시대, 일론 머스크의 'SPACE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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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tvN

 
1990년대 소련의 해체로 인한 냉전이 종식되며 우주개발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2000년대 들어 나사는 민간기업에 로켓과 우주선의 개발을 위탁하는 '우주협력 협약'을 발표했다. 이로써 정부 및 민간기업이 상업용 우주운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2002년 테슬라의 창업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SPACE X'는 21세기 우주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우주탐사기업으로 꼽힌다. SPACE X는 '팰컨9'를 개발하며 수직착륙을 통하여 2015년 12월 '로켓 회수'에 처음으로 성공하는 업적을 세웠다. 우주산업이 그동안 국가 주도에서 '민간 우주개발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팰컨9의 등장은 인류에게 '로켓 재사용'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우주선 1회 발사 때마다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었고 한 번 쏘아올린 로켓은 그대로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면, 팰컨9을 통하여 회수가 가능해지면서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민간기업들이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면서 여러 기업들이 앞다투어 '민간 우주여행'에 투자하고 있다. 준궤도 여행, 궤도 여행, 달 여행과 우주정거장 체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과 코스에 따라 시간은 10분에서 일주일, 비용은 적게는 3억에서 많게는 700억까지 이른다고. 이렇게 비싼데 누가 가겠냐 싶겠지만, 2001년 미국의 사업가 데니스 티토는 민간인 최초의 우주여행객으로 화제에 오르며 "우주여행은 낙원에 다녀온 기분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현재 인류의 또다른 목표는 지구를 벗어난 인류가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아폴로 계획의 후신으로, 2025년까지 달 표면에 다시 인류를 보낼 목적으로 추진중인 우주계획이다. 아르테미스 1~3호를 순차적으로 시도하여 궁극적으로 여성 우주인을 비롯한 유인 달 착륙과, 달 자원의 채굴 가능성을 확인한 이후 지구에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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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브라이든스타인 나사 국장은 "이번엔 달에 발자국을 남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달에 머물기 위하여 가는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인 '달에 정거장 건설-인프라 구축'을 통한 인류의 '거주' 가능성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무한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세기에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2030년까지 미국보다 앞선 달 유인 착륙탐사와 달 기지 건설을 목표로 내세웠다. 한국도 지난 2022년 12월 27일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호'가 달 궤도 진입에 성공하며 우주개발 산업에서 그 위상을 차츰 높여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가 달 탐사에 이처럼 주목하는 이유는, 달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헬륨-3과 희토류 등의 자원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에서는 생산지가 한정된 전략자원들을 달을 통하여 확보할 수 있다면 인류의 판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도의 달 탐사선에서는 달에 물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인류의 무분별한 우주개발 경쟁은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우주개발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우주 미생물의 유입은 코로나19처럼 파괴적인 팬데믹을 초래할 수 있다. 인류가 쏘아올리고 회수하지 못한 로켓이나 인공위성, 발사체의 파편과 부식 등으로 인한 우주쓰레기의 증가도 지구와 우주를 위협하는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실제로 최근 수명이 당한 미국의 인공위성이 한반도에 추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거론되어 전국적으로 경계경보가 내려지고 안전안내문자가 발송되기도 했다.
 
인류에게 펼쳐질 '뉴 스페이스의 시대'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기회인 동시에,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인류가 우주를 신대륙 삼아 또다른 혁신적 전환기를 맞이하는 과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보다도 공존을 위한 협력과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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