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 디즈니플러스

 
최근 성황리에 진행중인 잉글랜드 축구 FA컵대회에서 5부리그(내셔널리그)팀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주인공은 렉섬 AFC다. 지난 1월 30일(한국시간) 열린 경기에서 2부리그(챔피언십리그) 소속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접전 끝에 3:3 무승부를 기록해 2월 8일 재경기를 갖게 되었다. 만약 여기서 승리를 거둔다면 16강에 올라 손흥민이 이끄는 토트넘 홋스퍼와 맞붙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1부격인 EPL도 아닌, 하부리그 팀의 돌풍은 프로와 아마추어팀 모두 자웅을 겨루는 FA컵에선 종종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다. 렉섬이 관심을 모으는 건 엄청난 전력차이를 극복하고 이변을 일으킨다는 점 외에도 세계적인 스타 배우가 이 팀의 구단주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데드풀> 라이언 레이놀즈가 동료 배우 롭 매컬헤니와 함께 2020년 렉섬을 인수하면서 영국 축구계의 화제를 모은 것이다. 지난 1월 11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웰컴 투 렉섬>은 바로 축구와는 관련이 없는 캐나다 출신 영화배우가 어떻게 구단주가 되었고 팀을 재건시키는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전통의 명문(?) 구단 렉섬 AFC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 디즈니플러스

 
​EPL이 아닌, 하부리그 팀은 아무래도 열혈 해외 축구팬들에게도 관심 밖의 존재이다. 하물며 5부리그라면? 그런데 렉섬 AFC는 좀 독특한 이력이 눈길을 모으는 팀이다. 인구 6만여 명에 불과한 웨일즈 지역 소도시에 연고지를 둔 렉섬은 지난 1864년 창단되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프로 축구단이라는 것이다. (렉섬은 웨일스 지역 구단이지만 웨일스 프로리그 탄생 훨씬 이전에 창단된 팀이어서 지금까지 잉글랜드 축구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기자주)

​하지만 렉섬은 전통의 팀이지만 명문 구단은 아니다. EPL에는 단 한 번도 진출한 적이 없고 2부 챔피언십조차 41년 전인 1981-1982시즌을 끝으로 4시즌 만에 강등되고 말았다 이후 3부(리그1), 4부(리그2)를 거쳐 내셔널리그까지 내려 앉은 게 지금의 렉섬이다. 이조차도 지난 2019-2020시즌에는 6부리그로의 강등을 걱정해야 할 만큼 추락을 거듭했다.

​한마디로 정의하지만 "더 이상 떨어질 곳조차 없다"가 이 팀의 불과 3년 전 상황이었다. 자본, 팬이 집결하는 상위 리그와 달리 하위 리그는 열악함 그 자체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0년 무렵 발발한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무관중 경기는 더욱 렉섬을 위기에 몰아 넣은 것이다. 이때 천군만마처럼 등장한 인물이 라이언 레이놀즈였다. 그런데 '데드풀'은 대체 왜 이런 최하위리그 팀을 인수하게 된 것일까?

친분조차 없던 공동 구단주… 스포츠에 대한 호기심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 디즈니플러스

 
​2020년말 레이놀즈와 매켈헤니는 렉섬 서포터즈 이사회 투표를 통해 90% 이상의 동의를 받아 렉섬을 인수하게 되었다(해외 구단 중에는 서포터즈의 지지 없이는 구단을 매각, 매수할 수 없는 팀이 더러 존재한다, 기자주). 일부 의구심은 들었지만 변변한 재정 지원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던 전임 구단주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두 사람을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받게 만들었다.

​그런데 레이놀즈-매켈헤니는 놀랍게도 이 팀을 사들이기 이전엔 이렇다한 친분조차 없던 사이였다. 매켈헤니의 지인이 레이놀즈를 소개해 SNS상에서만 교분을 쌓았을 분 작품 혹은 대면으로 관계가 있던 건 전혀 아니었다. 여기엔 매켈헤니의 호기심이 발단이 되었다.  

야구, 농구, 미식축구 등 프로스포츠의 본 고장 필라델피아에서 어렵게 생활했던 그는 비록 축구에 대해선 문외한이었지만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비슷한 환경을 지닌 렉섬에 동질감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팀을 인수할 만한 자금은 갖고 있지 못했고 결국 생각한 것이 '갑부 스타' 라이언 레이놀즈를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미쳤거나 반쯤 정신나간 행동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너무도 간단히 의기투합했고 즉각 행동에 돌입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후원 속에 각종 운동을 섭렵했던 레이놀즈는 <데드풀> 성공을 지켜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부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스포츠 팀 인수에 적극 동참한다.

우리 삶의 일부분... 축구가 선사하는 묘한 매력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디즈니플러스 '웰컴 투 렉섬' ⓒ 디즈니플러스

 
​지난해 9월 미국의 케이블 채널FX를 통해 첫 방영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 18부작은 뒤늦게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는 디즈니플러스와 훌루 등 OTT 플랫폼을 통해 본격 소개가 이뤄졌다. 케이블 채널 방영이 먼저 고려된 작품이다보니 여타 다큐멘터리에 비해 긴 호흡을 요구하는 단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라이언 레이놀즈 특유의 낙천적이면서 넉살 좋은 화법과 행동은 축구라는 종목이 선사하는 재미와 맞물려 시청자들을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 나간다.  

​1980년대 초반 이후 각종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경제적으로 쇠락한 소도시 렉섬과 주민들에겐 축구는 삶의 일부분이었다. 비록 좋지 못한 성적에 분노하고 때론 경기장 폭력 사태도 발생해 경찰조사도 이뤄질 만큼 거칠 성격의 팬들이었지만 레이놀즈의 든든한 후원 속에 점차 성적 반등을 이루면서 관중 입장이 재개된 홈구장 레이스코스 그라운드에는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이 다큐는 그저 유명 연예인의 괴짜스런 행동보단 렉섬 사람들의 일상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하찮게 여겨질 수 있는 5부리그 팀과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축구가 공놀이 이상의 가치를 지닌, 어찌보면 내 자신을 투영한 또 다른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마치 마블 영화 속 웨이드 윌슨이라는 인물이 데드풀로 변신한 것처럼 렉섬 구단 역시 이전과는 다르게 변화한다.

​그런데 <웰컴 투 렉섬> 방영 이후 렉섬 AFC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의 성적표는 이 다큐멘터리의 스포일러 역할을 담당한다. 1월 31일 기준으로 2022-2023시즌 내셔널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은 다름 아닌 렉섬이다. 어느새 4부 리그 재진입 문턱까지 도달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in.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웰컴투렉섬 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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