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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에 일어났던 사북항쟁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는 '사북문학축전'이 지난 27일 오후 2시 강원도 정선 사북읍종합사회복지관 2층 다목적실에서 열렸다.

강원대학교 통일강원연구원이 주최하고 민족작가연합이 주관한 이 행사에는 당시 광부들과 지역 주민, 문학인, 예술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부 '그날의 사북 기억하기'와 2부 '광산쟁이들의 문학 : 시낭송회'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민족작가연합 강기희 상임대표는 "사북항쟁의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깊다"면서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배포하고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은 글과 노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행사를 진행하는 강기희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
 행사를 진행하는 강기희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
ⓒ 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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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 황인욱 대표가 '검은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항쟁 당시의 사북 상황을 사진으로 소개했다. 사북광업소 전경, 뒤집힌 경찰 지프차, 안경다리 전투 장면, 고한초등학교 교문을 막아 선 무장 군인, 사북역 앞에 모여든 군중 등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웅변하는 사진들이 소개되었다.

황인욱 대표는 "항쟁의 근본 원인이 되었던 경찰의 폭력성과 조사 과정에서 있었던 고문 등을 뒷받침하는 사진들은 여전히 은폐되어 있어 안타깝다"며 이제는 피해자들의 "검은 눈물 자국이라도 닦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발표를 마쳤다.

사북사건의 주모자로 몰렸다가 후에 무혐의 결정을 받은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전 회장은 조사 당시의 잔인한 인권유린과 혹독한 고문의 실상을 토로하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몽둥이와 고무호스로 내려치는 것은 예사고 타올을 얼굴에 씌우고 고춧가루물을 넣은 주전자로 물고문을 하는 등 온갖 고문이 자행됐음을 고발했다. 또, 말로 옮기기도 힘든 성적인 폭행이 여성들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전 회장이 당시 조사 과정에서의 잔혹상을 증언하고 있다.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전 회장이 당시 조사 과정에서의 잔혹상을 증언하고 있다.
ⓒ 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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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수 문학평론가는 "국가 기관과 회사가 연결된 사회 구조적 권력 카르텔의 억압 구조의 맨 아래에 광부들이 있었으며, 따라서 사북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사북을 다루는 많은 시인들이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문학적 기술은 역사가들이 기술하는 내용보다 더 명쾌하게 사건을 드러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2부에는 노래와 시낭송이 이어졌다. 박대우씨와 박경하씨가 2부 순서의 앞과 뒤를 장식하면서 시에 곡을 붙인 노래 '새벽 편지', '막장' 등으로 축전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6명의 시인들은 작품으로 승화된 광부들의 삶과 사북항쟁의 모습을 낭송했다.
 
광부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 공연
 광부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 공연
ⓒ 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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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막장으로 들어간다/ 노래 부르며 막장으로 들어가곤 했어요/ 더는 갈 곳이 없으니 삶도 막장이었죠/ 해마다 300명 넘게 광부들이 죽었어요'(최광임, 「사북, 1980년 4월」).

'끌려가 개처럼 두들겨 맞고 울었다/ 사북에 눈 내리던 밤에 아이들이 아프고/ 양식이 떨어지고 배고픈 시절을 살았다/ 그것보다 더 아픈 것은 폭도라고/ 군인과 경찰이 사북을 둘러싸고/ 빨갱이 새끼라고 불렀다'(김창규, 「사북의 마당극」).

'검은 도시가 활활 불타 올랐다/ 석탄 한 삽 캐기 위해 목숨을 거는/ 콧속 귓속 눈속 폐속 탄가루 쌓이고/ 땀과 탄가루 범벅이 된 석탄사람/ 노동의 가치가 땅속으로 떨어져/ 랜턴 불빛으로 가물거리는구나'(박금란, 「검은 소나무」).

'작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노동자 얼굴에/ 빛나는 미소가 해처럼 피어나는 사회/ 카메라 조명앞에서 자랑처럼 들어 올리는/ 탄가루며 기름때 묻은 손이/ 열렬한 박수를 받는 노동해방의 나라//이게 나라냐 싶을 때,/ 진짜 우리들의 나라는/ 그래, 막장에서 새로 시작하자'(지창영, 「막장에서 시작하는 새 나라」).


'마디 사이에 낡은 선로 따라 내리는 비는/ 광부의 관절에 떨어지는 눈물/ 해방구는 어디 있나 오늘도 막혔는데/ 속살 다 타야 끝나는 연탄처럼/ 벌겋게 다 내어준 진심/ 백년전당소 백열등은 천년만년 훤한데'(석민재, 「사북의 비」).

'빛바랜 임금명세서를 버리 못하고 모아놓은 건/ 저승사자와 사투를 벌이며 버텨낸 막장의 시간이/ 가족의 밥이 되고 옷이 되고 학비가 되고,/ 웃음을 주고 행복이 되고 눈물도 배어있기에/ 강산이 세 번 변하고도 남은 세월에도/ 한 장도 버리지 못하고 소중하게 간직했단다'(성희직, 「광부의 역사가 된 사나이」).

 
행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송영훈 통일강원연구원 원장
 행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송영훈 통일강원연구원 원장
ⓒ 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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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훈 통일강원연구원 원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국가폭력은 아픔의 시간이 길었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에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행사를 통하여 되새기고 기록으로 남겨서 기억하는 이유는 또 다른 아픔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가 한다"면서 행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참가자들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참가자들
ⓒ 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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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북문학축전, #민족작가연합,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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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학박사, 번역가. 충남 청양 출생. 시집 <<송전탑>>(2010). 번역서 <<명상으로 얻는 깨달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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