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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최강희씨
 최근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최강희씨
ⓒ 위라클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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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배우 최강희가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최강희는 30∙40대라면 모를 수 없을 만큼 유명한 연예인입니다. 기사에 나온 영상을 찾아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연예인이 아니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도해 보고 싶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인이 겪었던 우울증까지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전성기 때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단단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저의 시간과 겹쳐졌습니다.

내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일

그동안은 주로 머리를 쓰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수시로 새로운 보고서와 논문, 책을 읽고 이상이 현실에 어떻게 가 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에 큰 가치와 기쁨을 느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고민은 치열했고, 기획은 설렜으며 실행은 늘 다음 숙제를 남기는 시간의 반복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발 물러서 바라볼 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연료가 떨어진 차가 덜컹이는 듯 불안정한 일상 끝에서 완전히 멈춘 것이 지난여름이었습니다.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의 '뜻'을 위해 움직이는 치열함 속에는 각자의 이용 가치와 계산이 가득합니다. 필요에 의한 만남과 헤어짐도 넘쳐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저 마음이 많이 아파지고 나서야 저는 그 끝없는 반복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PTSD 진단을 모두 받고 먹던 약. 10알이 넘는 약을 먹고도 숨을 편히 쉬지 못하고 잠들지 못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PTSD 진단을 모두 받고 먹던 약. 10알이 넘는 약을 먹고도 숨을 편히 쉬지 못하고 잠들지 못했었다.
ⓒ 서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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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공포가 심해지고 공황상태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어나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었지만 때때로 이 두려움이 활력을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또 다른 불안도 생겼습니다.

조금 움직여야겠다고 느끼던 어느 날 '사람에게 곧바로 영향을 주지 않는 일, 복잡한 관계로 얽혀야 하거나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일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음식점 주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일을 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무척 낯설었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전혀 모르는 타인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식기를 깨끗하게 닦는 일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었습니다.

약 없이도 잠을 자고 맑은 머리로 일어납니다. 매일 나에게 집중하니 숨쉬기 어려워질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요와 기대'가 없는 사회생활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물게 할 수도 있음을 느낍니다.

완전히 소진되어 멈추었을 때 그 상태 그대로 머무르는 시간은 분명 필요합니다. 그러는 동안 다시 움직일 때 무엇을 중심에 두고 싶은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멈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은, 보통으로 살기

죽는 순간까지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배움의 과정에서 '나'를 버리거나 바꾸는 일들이 흔쾌하거나 유쾌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나의 가치관은 틀리지 않았고 이 방향이 맞다고 믿으면서요.

굉장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더라도 내 자리에서 조금 더 멋지고 좀 더 대단한, 혹은 영향력도 있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회에 이로운 일을 하며 타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크고 대단한 일들 앞에서 작은 불의는 참고 넘기는 선택이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큰 변화를 위해 일상의 작은 부당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들이 불편했습니다. 여기에 맞고 틀림은 없습니다. 그저 개인이 무엇을 더 중요시 하느냐의 다름일 뿐입니다.

다만 그 시간을 살아보고 저는, 대단하게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바로 옆 평범한 사람들에게 만만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분명 필요하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Love yourself. 직장에 다니는 동안도 저런 메시지를 늘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Love yourself. 직장에 다니는 동안도 저런 메시지를 늘 지니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 서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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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일상에도 열정은 가능합니다. 그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내 몸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이전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더 응원하게 됩니다.

어쩌면 설거지를 했다는 배우 최강희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빛나거나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 '대단한' 혹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 말입니다. 나의 가치는 타인의 인정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는 것으로도 세상은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태그:#우울증, #번아웃, #마음건강, #자기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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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따뜻하고 더 정갈한 사회를 꿈꾸는 엄마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어디에 있든 모든 사람이 각자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런 사회를 바라며 저는, 느리지만 분명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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