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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출근길, 저만치 나의 직장이 보인다. 출입문 앞 급식소가 딸린 작은 집에는 이제는 제법 친해진 길고양이 무무와 또치가 자고 있다. 무무는 실눈을 떠서 아는 체를 하고 또치는 오늘따라 무척 피곤한 듯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도 잠을 깨지 않는다. 곧 또치 아빠 뭉치와 달이도 나타나겠지. 

실내 조명등과 노트북, 포스 등 전자기기 전원을 켜고 간단히 내부 점검을 마친 뒤 문을 연다. 예상대로 네 마리 고양이가 아침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로 이들을 챙기는 것 또한 내 일터에서는 공식 업무다. 녀석들의 밥과 물 그릇을 채우고 후문 쪽 너무 빨리 엄마가 된 작은 고양이와 이미 어미만 해진 새끼들까지 챙긴다.  

고양이와 함께 여는 아침
 
한 식구와 다름 없는 길고양이들
 한 식구와 다름 없는 길고양이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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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기묘 보호소의 유자를 볼 차례. 유자는 인근 공장지대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길고양이였는데 3년쯤 돌봐준 '캣맘'이 보다 못해 임시보호를 요청했다. 처음 유자는 미간에 주름이 잔뜩 지고 눈꺼풀은 한껏 아래로 처져 말 그대로 울상이었다. 이송 중 격한 몸부림을 치다 깨진 콧등엔 피딱지가 한가득 붙어 있었고.   

그랬던 녀석이 밤낮으로 편히 먹고 자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예쁘다 예쁘다 말해주고 만져주니 하루하루 서서히 울상에서 웃상으로 바뀌었다. 벽을 보고서 잔뜩 움츠려 있던 몸도 돌려 기지개를 켜고 사람이 오면 눈을 맞추고 이제는 다가와 몸을 비비며 재롱을 피운다. 콧등은 다 나아서 고운 연분홍빛 제 모습을 찾았다. 
 
버려져 노숙생활을 하다가 유기동물보호소에 오게 된 유자
 버려져 노숙생활을 하다가 유기동물보호소에 오게 된 유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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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층의 호텔. 여기엔 반려인의 출장이나 병원 입원, 이사 등 다양한 사정으로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이상 투숙 중인 고양이들이 있다. 딱 사람 아이들 같아서 구김살 없이 명랑한데 이기적이고 버릇이 없거나, 소심해서 무리와 어울리지 못하거나, 혼자도 같이도 잘 놀거나, 자꾸만 곁에 와 애정을 갈구하는 등 성격도 제각각이다. 그게 다 고양이라서 그저 귀엽고 때때로 신기하다. 

과하고 사치스러운 반려동물 산업은 사람 사회의 부당한 빈부 격차와 몰지각한 소비문화와도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절한 범주 안에서라면 이런 대리 돌봄 서비스는 반려동물이 있는 가구 수가 600만에 육박하고 동물 또한 진정한 가족 또는 이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반드시 필요하다. 이 또한 근본적으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자각하게 된 뒤로 나날이 책임감과 애정이 커지고 있다.   
 
고양이 호텔의 투숙객들
 고양이 호텔의 투숙객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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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루 고양이들을 살피는 일 외에 다른 한 축의 중요 업무는 고양이를 위한 물품을 제작·관리·판매하는 일이다. 여기서 수익이 발생해야 결국에 먹거리와 잠자리 혹은 치료가 필요한 고양이들을 계속, 더 많이 도울 수 있게 된다. 길고양이, 유기동물, 반려동물에 대한 생명으로서의 존중과 책임 의식을 확산시키는 선한 영향력도 더 크게 미칠 수 있으리라. 

고양이를 위하기에, 고양이를 팔지 않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갑니다.' 
'고양이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은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믿음과 이 아이들도 가족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것이었다. 약 두 달 전 내가 지금의 직장에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린 이유가. 그리고 운 좋게 이제 나의 직장이 된 이곳은 바로 '고양이 가게'다. 많은 난관이 있지만, 위와 같은 신념과 철칙을 지키며 운영 중인 곳이다. 

고양이를 위하는 사람들이 있고 고양이를 위한 공간과 물건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 하지만 절대 고양이만은 팔지 않는! 손님들 대부분도 이런 취지에 공감해 일부러 가게를 찾아오고 모금이나 고양이 돌보는 일에 적극 동참하는 사람들이다.  

이따금 어미를 잃은 젖먹이 아기 고양이를 구조해 안고 오는 손님이 있는데, 그럴 때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뭘 먹일지, 어떻게 돌볼지 등을 상의한다.

업무 전반이 이렇듯 고양이와 고양이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니 여느 직종에서 흔히들 힘겨워하는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드물게 인성이 아쉬운 이가 다녀가도 곁에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만지면 금세 마음이 펴진다.   
 
손님들이 구조해온 아기 고양이들
 손님들이 구조해온 아기 고양이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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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나는 매일 즐겁게 '고양이 가게'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한다. 늦은 밤, 가게 문을 잠그고 밖을 나오면 아침부터 거의 온종일 근처를 맴돌던 길고양이 또치, 달이, 무무, 뭉치는 어디론가 가고 없는 때가 많다.

그런데 요 며칠은 또치가 계속 남아 배웅을 해준다. 한동안은 손끝만 대도 깜짝 놀라 저만치 도망가던 녀석이. 눈을 맞추고 자꾸만 졸졸 따라오는 녀석을 보는데 그 순하고 다정한 마음이 더해져 찔끔 눈물이 넘쳤다. 
 
퇴근길 길고양이 또치의 배웅
 퇴근길 길고양이 또치의 배웅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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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유기묘 유자의 참가족이 되어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입양 및 기타 문의는 mywonderfullife100@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이 글은 brunch에도 게재됩니다.


태그:#길고양이, #길고양이급식소, #유기묘보호소, #고양이가게, #고양이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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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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