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6 08:26최종 업데이트 20.06.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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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1일, 민주노동당 탈당을 선언한 노회찬·심상정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진보정당 건설 원탁회의'를 제안하며 창당일정등 계획을 밝히고 있는 모습. ⓒ 이종호

 
정치 리더십의 발전과 '딜레마적 상황'

앞선 기록연재에서 말한 것처럼 앤소니 다운즈(Anthony Downs)가 정당의 세계에서 이념의 역할을 강조하게 된 것은, 이념을 현실과 미래의 간극에서 오는 '확신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합리적 기제 내지 지름길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물론 제 아무리 현실적인 내용과 체계를 갖췄다 하더라도 이념만으로 정당조직이 직면하는 딜레마적 상황을 해결하기란 난망한 것도 사실이다. 정당론에 대한 '최후의 패러다임' 개척자로 알려진 파네비안코(Angelo Panebianco)가 강조하듯, 리더십의 발전 없이는 여러 딜레마(대표의 딜레마, 참여의 딜레마, 제도화의 딜레마 등)에 처할 수밖에 없는 정당조직을 통합할 방법은 없다. 거대한 규모의 정치조직을 제도나 추상적인 규칙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2010년 1월 노회찬마들연구소(이사장 노회찬)의 '활동가와 함께 하는 마들공부모임' 첫 모임에서 '정치를 이해하는 문제에 관한 하나의 소견'을 발제하며 특히 리더십의 발전을 강조한다.

"정당도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이 성장하고 커지면 커질수록 필연적으로 대면해야 할 주요 딜레마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한 기제로서 중요한 것은 기성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경쟁할 수 있는 대안적 이념의 발전과 리더십의 발전을 통해 정당이 성장하는 것이다.

정당은 인간의 공동행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대중의 확신을 조직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의 중심 영역에서 정당의 형태로 민중적 요소가 다투어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는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어 박상훈은 진보정당의 리더십에 대해 질타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사례로 볼 수 있듯, 한국의 진보정당은 개인으로 상징되는 리더십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정당조직 모델을 고집했다. 아마도 이 점은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진보정당이 갖는 자원과 잠재력을 조직하는 데 있어서 빈약한 성과로 나타났다. 정당이 하나의 조직인 한, 그것도 사회의 개혁자가 되고자 하는 진보정당인 한, 리더십의 문제를 경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간 한국의 진보정당은 보수정당과는 달리 '인치의 과잉'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기대와 대중적 열망을 응집시킬 수 있는 '인치의 부족', 즉 리더의 부재 때문에 더 많은 문제를 낳았다. 아데나워 시대의 독일기민당, 브란트 시대의 독일사민당, 맥도날드 시대의 영국노동당, 미테랑 시대의 프랑스 사회당, 베를링게르 시대의 이태리 공산당을 말하듯, 진보정당도 리더십의 특징과 결합된 직접적 책임성의 구조를 발전시키는 데 소극적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 먼저 리더가 조직을 통치할 수 있게 한 뒤에 그 결과에 사후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 없이 어느 조직도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야말로 리더가 조직을 통치하기도 전에 과도한 견제부터 하면서 조직을 통치 불능으로 만들어 온 우리 사회의 진보파들에게 가장 부족한 일이 아닌가 한다."


민주노동당, "리더의 분절현상"
: '당직-공직 겸직금지'와 '운동권 동창회로서의 정파'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로서의 책임감과 소명의식 속에 노회찬은 당의 리더가 되기를 자임한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베버(Max Weber) 표현을 빌자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맞닿는 지점에서의 소명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회찬의 당 지도부 출마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노회찬의 당직 출마 결과. ⓒ 조현연 정리

  
2004년 17대 국회에 진출한 노회찬 등 10명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일원이 될 수 없었다. '당직-공직 겸직 금지'라는 제도적 규정을 통해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2004년 5월 6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는 '국회의원단의 운영과 지원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당직-공직 겸직 금지 조항'("모든 국회의원은 의원단 대표를 제외한 선출직 당직을 맡을 수 없다")을 156명의 중앙위원 가운데 89명의 찬성으로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13인의 최고위원 가운데 의원단대표 1인을 제외한 12개의 최고위원직과 광역도당 대표직, 지구당위원장직 등을 맡을 수 없게 됐다. 당 대표와 사무총장, 정책위 의장은 모두 국회의원이 아닌 당원이 맡게 됐다. 또한 의원단의 지위와 관련, "의원단은 최고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원내활동을 집행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당발전특위는 당직-공직 겸직 금지의 원칙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2004년 5월 6일 열린 민주노동당 3기 7차 중앙위원회 당시 모습. ⓒ 민주노동당

  

2004년 5월 6일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를 열고 당규 제 17호 '의원단 규정 제정안' 처리를 통해 "모든 국회의원은 의원단 대표를 제외한 선출직 당직을 맡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노회찬 사무총장이 중앙위회의에서 중앙위원들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①이 제도는 진보정치를 의회정치로 협소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당의 정치활동이 국회의 운영 사이클에 갇힐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며, 당무의 공동화를 사전에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②공직 진출자가 한국적 선거주의 메커니즘의 포로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차원에서나 제대로 된 진보정치 활동을 벌이도록 만든다는 차원에서나 지역 수준에서도 선출직 당직과 공직을 분리하는 게 필요하다.
③이 제도는 권력 분산을 통해 지역과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새로운 지도자 군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이다.
④당직-공직 분리제는 '거대한 소수'전략이라는, 대중투쟁과 의회활동의 유기적 통일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기획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당직-공직 겸직 금지의 원칙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특히 당직-공직 분리의 이원구조 속에서 '거대한 소수'전략은 강화가 아니라 오히려 약화됐다. 이에 대해 노회찬은 "이론적으로 보면 집단지도체제가 더 민주적인데 우리의 집단지도체제는 대중에게 검증받지 않은 정파 지도자들을 안배하는 구조였다. ... 집행부에서 집행하는 게 아니라 정파 지도자들이 집행을 결정한다. 그리고 실제 집행은 실무자들이 알아서 한다. 이런 것들이 조직 원리에도 맞지 않다"(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196쪽)고 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194~195쪽).

"진보정당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인물을 잘 키우지 않는다는 데 있다. ... 국회의원은 당이 키운 리더 중에서 대중과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 중 하나다. 그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키워 리더군을 확보해야 하는데 오히려 당에서는 이들이 당에 간섭하고 개입할까 두려워 당직 금지를 결정했다. 당직을 못 맡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국회의원들은 명명가라는 이유다. 처음부터 자신의 진정한 리더가 명망가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조직 안에서 어떤 개인이 1인1표를 넘어서는 권한을 갖게 되면 두렵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대중적) 리더가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리더적 영향력을 갖는 사람이 생기는 걸 두려워한다. 누가 이런 분절의식을 가지고 있나? 정파 지도자들이다. 그래서 지도체제도 대표-부대표의 리더체제에서 힘이 분산되는 집단지도체제로 바꾸었다. ... 이름 없는 정파 대표자들이 최고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정파 안에서는 리더이지만 대중적 리더가 아니다. 이런 정파의 리더들이 검증 없이 정파의 쪽수를 가지고 조직의 리더가 됐다. 그래서 당 안에서 리더의 분절현상이 생겼다. 대중적 리더와 정파 리더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다."


보수가 과거의 시간과 경험에 확실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면, '있어야 할 유토피아'로서 새로운 미래를 '지금/여기서' 구상해 내고 실천해야 하는 진보에게 미래란 불확정적이며, 그것이 불확정적이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진보의 스펙트럼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진보정당 내의 '정파'는 그 자체로 존재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문제는 당은 21세기에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데, 당 내부의 정파 구조와 질서는 오히려 20세기적 낡은 사고와 전망에 갇힌 채 형성됐다는 점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회찬은 이렇게 말한다.

"집권이 최종 목표가 아니라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지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도 집권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최종 목표인 세상 바꾸기가 정파의 목표보다 우선한다면 민주노동당의 집권 역시 정파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대선 전부터 민주노동당이 가지고 있었던 정파 간의 갈등은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며 더욱 첨예하게 드러났다. 정파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선거운동 과정과 선거 결과가 적나라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회찬은 한국 운동권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이른바 '정파'가 '운동권 동창회'가 돼버린 것이 문제고, 이것은 운동 자체가 현실과 괴리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운동세력에게는 이해관계보다는 신념, 노선, 가치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따지고 경쟁하는 속성이 기본적으로 있다. 이해관계 중심이면 한탕 하고 흩어지면 그만이다. 정파 간의 대립과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정파는 대중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대표적으로 북한 문제가 그렇다. 북한 문제의 경우 정파 갈등이 이상하게 왜곡된 형태로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대중들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또 하나는 정파 대립이 시대의 흐름을 넘어선 고질적인 분파투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 NL-PD라는 변혁이론에 들떴던 1980년대가 있었지만 그 변혁의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파 간 대립과 갈등이 그 후에도 지속됐다. 이것은 운동 자체가 현실과 괴리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운동권 동창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한국 운동권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2014, 83~84쪽)


정파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 즉 드러나지 않은 권력으로서 작동함으로써 결정은 하나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노동당 내 정파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노회찬은 '새로운 정파질서를 위하여'라는 글(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149호, 2003.9.29.)에 이렇게 적고 있다.

"대체로 정파는 정당에 비해 그 규모가 작은 반면 인적 친밀도가 높다. 타 정파와의 일상적 경쟁 관계 때문에 결속력 또한 높다. 이 같은 정파의 강점은 자기 정화 기능의 상실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낳기 쉽다. 특히 낡은 전략, 낡은 학교 관계, 낡은 서클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정파의 경우 조직 보존 혹은 조직 확장의 논리 앞에 자기 정화 기능은 무력화되기 쉽다. 당의 공적 이익보다 정파의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종파주의의 근원도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전략 거점을 당 바깥에 둘 경우 이런 종파주의의 폐해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민주노동당 이전의 운동경험과 조직관계는 각자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야 한다. 이미 물질화된 낡은 관계들은 당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형체도 없이 녹아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당면한 현재의 과제와 미래의 전망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자. 어떠한 관계도 대중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면 맺지 않는 것이 좋다.

당의 이익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있다면 당 바깥에서 도모하는 것이 올바르다. 낡은 정파에 대한 염증이 당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뒤덮게 하지 말자. 정파의 질서와 그 미래는 다원주의라는 민주노동당 발전의 상에 부합되어야 한다. 당의 이익을 중심으로, 당면 과제를 중심으로, 대중의 눈높이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실천하고 검증하자. 올바른 당 활동만이 올바른 정파질서를 새롭게 만들어갈 것이다."

 

2003년 9월 29일 치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실린 노회찬 사무총장의 글. ⓒ 진보정치

    
'민주노동당과 정파'를 특집으로 다룬 <진보정치> 149호는 '정파=도깨비'라고 비유한다.

"민주노동당에는 '도깨비'가 하나 있다. 그 도깨비의 이름은 '정파'. 그것이 있다는 '설'은 무성한데, 정작 그것의 실체는 한번도 밝혀진 적이 없다. 이러니 도깨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더 '도깨비스러운' 것은 그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공개적으로 육하원칙에 의거해 자신의 실명을 걸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파만 도깨비인 게 아니라, 정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또한 도깨비인지도 모른다."
 

2003년 9월 29일 치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실린 특집 '민주노동당과 정파'. ⓒ 진보정치

 
<진보정치> 149호는 당 내외의 여러 정보를 일반 당원보다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광역지부장, 지구당위원장, 중앙당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이 도깨비에 대한 조사를 시도한다. 50명이 이 조사에 응했고, 그 결과는 이러했다.

'당에 정파가 있느냐'는 물음에 절대 다수가 그렇다고 답했다(48 : 2). 반면, '귀하는 정파에 소속돼 있느냐'는 물음에는 절대 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48 : 2). '제대로 된 정파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단 한 명도 "그렇다"는 답을 하지 않았다(50 : 0). 또 과반수 이상은 "정파가 앞으로 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32 : 18).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면 갈라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대다수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진보정치> 특별취재팀은 조사 결과에 바탕해 "이것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면 당의 미래는 밝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정파의 '그늘'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파의 이익보다 당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견해가 대다수를 이루는 한 당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결론 맺는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이후 민주노동당의 활동이 보여주듯이 수포로 돌아갔다. 당의 이익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아니 정파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당의 이익은 아예 무시해버리는, 노회찬이 우려한 '운동권 동창회'의 놀이터가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본질은 리더십의 문제이자 정치력의 문제"

앞서 살펴본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을 둘러싼 당시 상황에 대해 노회찬은 "사실 분당사태의 본질은 리더십의 문제이자 정치력의 문제"였다고 하면서 이렇게 회고한다.

"처음에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분당을 반대했다. 당시 제기된 문제들은 당 안에서 해결해야 하고, 기본적으로 NL과 PD가 당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북한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지만 그것도 당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 그러나 현실은 분당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일심회사건 관련자들 문제가 핵심이었다. 조직의 주요 당직자가 조직원들의 인적 사항을 포함한 주요 기밀을 조직 외부(북한)로 유출시켰는데 이를 내부에서 징계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분당했다기보다 그냥 밖으로 내몰렸다고 생각한다. ... 사실 분당사태의 본질은 리더십의 문제, 정치력의 문제였다. 다양한 생각을 공존하게 하는 노력이나 능력이 서로에게 부족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그러한 노력이 총체적으로 부족했다. 앞으로 이것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진보, 어디로 가는가?>, 2014, 142~143쪽)


"분당했다기보다 그냥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중심으로 2008년 3월 16일 진보신당이 창당되고, 1년 뒤인 2009년 3월 29일 진보신당 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단독 출마한 노회찬은 98%(6513표)의 찬성표를 얻는다. 정종권, 이용길, 박김영희, 윤난실 등 4명의 신임 부대표도 선출된다. 그동안 5명의 공동대표제(김석준, 노회찬, 박김영희, 이덕우, 심상정)를 유지해왔던 진보신당은 노회찬 대표 선출과 함께 단일지도 체제로 전환한다.
 

2008년 3월 16일 오후 동대문 서울패션아트홀에서 열린 진보신당 창당대회에서 노회찬, 심상정 상임공동대표와 공동대표를 맡은 이덕우 변호사, 박김영희 전 장애여성공감대표, 김석준 부산대교수가 손을 들어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2009년 3월 29일 열린 진보신당 당대회 모습. ⓒ 진보신당

 
<한겨레21>(제755호, 2009.4.9.)과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이렇게 답한다.

- 진보신당이 집단지도 체제 대신 단일지도 체제를 택했다. 과거 진보신당(혹은 민노당)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
"단독 대표 체제는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에서 나왔다. 단독 체제는 일의 적극적 추진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지금은 과감한 결단과 신속한 집행이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단독 대표 체제의 의미를 살리는 게 내게 맡겨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 과거 경험을 보면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정파들의 헤게모니 추구가 대표의 리더십과 충돌할 수 있다.
"집단지도 체제가 갖는 장점이 있지만 당내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측면이 있었다. 진보정당 안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목소리가 존중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당을 이끌어나가는 데에는 절충적 모습보다 확실히 끌고 나가서 나중에 평가받는 게 필요하다. 그게 단독지도 체제를 선택한 배경이라고 본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좌고우면할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학자 박상훈(후마니타스 주간)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정파 간 갈등을 피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에 불과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최성진 기자, '단일 대오 진보신당 탄력받을까', <한겨레21>. 제755호, 2009.4.9.).

"그동안 진보정당은 누구도 리더를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파 갈등이 권력 분점 형태로 나타난 것이 집단지도 체제다. 현실을 변화시켜야 할 진보정당이 집단지도체제를 고집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 대표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준 뒤,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건강한 조직이다. 단일대표 체제를 선택한 것은 늦게나마 잘된 일이다."

복수의 대표가 당을 함께 지휘한다는 사실은 곧 '진정한 대표'의 부재를 뜻하기 때문이다.

노회찬의 리더십: '실용적 변혁운동가의 리더십'과 '유머'와 '관용·상생의 정신'

2007년 대통령 예비후보들의 리더십을 연구한 호남정치학회의 <리더십 청문회 2007 대통령 후보>(부키, 2007)는, 현재의 '정치 부재'와 '리더십 실종'이 대통령에 대한 분석에만 집중할 뿐 대통령 후보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은 정치학자들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정치학자인 필자들은 대통령 후보로 꼽은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김근태, 노회찬의 리더십을 다양한 각도에서 면밀히 분석한다. '이데올로기와 조직·개인'을 핵심 쟁점으로 삼아 집중 탐구한 뒤, 김근태의 리더십(비대중적 진정성), 박근혜의 리더십(성장과 국가를 우선시하는 여성적 리더십), 손학규의 리더십(적절한 불균형의 융합 리더십), 이명박의 리더십('희망'과 '진보'를 중시하는 CEO형 리더십)을 규정하고, 노회찬의 '실용적 변혁운동가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다섯 가지 기준에 입각해 측정할 때, 노회찬은 정책 능력, 대자적 사유 능력, 전략적 유연성, 절차주의의 내면화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연고나 명망 및 민주노동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 기대감 등이 포함된 정치적 자원이란 면에서는 평균치에 비해 많이 낮다. (한말 이래 국난기에 한국의 지성계에 사회주의 사상이 전래되면서 사회주의가 민족주의와 결부되고,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여는 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거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남한의 사회주의는 독재 치하에서 탄압을 받은 여파로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순교자 분위기에서 나오는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끌어당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사회주의라는 구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가치의 상징이 아니라 빈곤과 폭력의 상징으로 암울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좌파 진영의 전투적인 이론과 행태에 많은 수의 국민들이 싫증을 느끼는 것이 수구 언론의 색깔 덧씌우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성향의 스펙트럼에 견주어 볼 때 주변 또는 바깥에 위치하는 노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신조를 지키기 위해 생존을 포기하는 순교자 취향에나 적합하다.

현실 정치에서 지지 기반의 확보라는 요소를 배제해서는 노무현식 실험의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회찬이라는 특정 정치인의 리더십을 논하면서 상황을 가장 중요시하고, 다음으로 행위, 그리고 개인적 특성을 가장 나중에 고려하는 것도 바로 그래서이다."

 

왼쪽은 '2007 대통령 후보 리더십 청문회'(호남정치학회, 부키, 2007년 3월) 표지. 오른쪽은 '유머니즘'(김찬호, 문학과지성사, 2018년 11월) 표지. ⓒ 부키, 문학과지성사

  
<유머니즘>의 저자 김찬호(성공회대학교 초빙교수)는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유머'를 꼽으며, "유머는 역사적으로 민중들의 지혜였다. 조상들이 남긴 예술 작품과 놀이에는 유머가 있다. 유머는 현실이 쉽게 바뀔 수 없고 처한 고통이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도 견디게 해주는 힘이다. 우리 사회에 유머가 풍부해지면 상호 순환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회가 바뀌면 유머가 풍부해지고 사회가 같이 발전한다. 매력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매력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머러스한 지도자'로 "자기가 처한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여유가 돋보인" 김대중과 노회찬을 꼽는다(김찬호 교수 "지도자에게 필요한 직관이 곧 유머", <머니투데이>, 2019.2.7.).

"지도자는 실무자가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전을 만드는 사람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공간이 넓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는 언어로 표현된다. 언어가 더 유연하고 풍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단어도 전혀 다르게 생각할 때 사고가 넓어진다.

이를테면 시인은 똑같은 일상 언어를 다르게 표현한다. 시와 유머는 통찰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하다. 지도자는 직관이 있어야 한다. 유머가 바로 직관이다. 유머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다. 논리적으로 보고 다른 걸 짚어내는 것이다. 또 유머는 관계 속에서 나오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유머가 나올 수 없다.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나도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유머를 구사한다면 분위기가 썰렁해지거나 상대방이 불쾌해질 수 있다. 유머감각이 있다는 것은, 생각이 남다르다는 것은 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모두 지도자의 덕목이다."


한편, 노회찬재단 이사장 조돈문(가톨릭대 명예교수, 사회학)은 그가 떠난 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리더의 덕목과 관련해 노회찬의 관용과 상생의 정신을 강조하며 이렇게 답한다(<한국일보>, 2019.11.5.).

"관용과 상생, 그리고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진보정치인이다. 하지만 요즘 진보 엘리트주의자들에게는 그런 미덕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진보니까 자기가 하는 건 모두 정당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다 틀렸고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치부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평소엔 군림하다가도 선거 때는 시장 바닥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는데 진보 엘리트주의자들은 그것조차도 안 한다. 대중의 눈높이에서 생각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들 가슴에 울림을 주고 지지를 끌어낼 수 있겠는가. 노회찬은 진보가 아닌 사람하고도 소통하고, 진보 메시지를 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위트와 유머로 스며들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회찬이 말하는 정치 리더의 자질과 리더십의 조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30일간의 단식농성(2011.7.13.~8.11.)을 마친 뒤 얼마 되지 않은 2011년 8월 18일 노회찬은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와 인터뷰를 한다.

이 자리에서 노회찬은 "현재 한국정치에서의 리더십이라는 것은 실제 이미지십(image ship)에 불과한 것일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리더십은 시대에 도전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러한 리더십이 시대를 만드는 것"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노회찬은 "더 이상의 금기와 성역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일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리더의 철학으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이야기하고 주변에 권하기도 한다(<'自由人' 인터뷰>, 2011.8.18.).

"이제는 금기를 타파하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노동문제도 그 금기 중 하나이다. 더 이상의 금기와 성역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보일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리더십은 시대에 도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라는 것이 버스처럼 기다리면 오는 것이 아니다. 대선 정류소에서 이미지를 관리하며 기다리는 리더십이 아닌 과감한 도전과 시도를 하는 리더십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리더의 철학이라 생각하는 것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이다. 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는 선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물은 어디서 왔는지 따지지 않고 함께 흐르고, 또 계속 합해져서 흐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반드시 돌파하는 것이다. 산이 있으면 휘감아 돌아가고, 낭떠러지가 나오면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높은 언덕이 있으면 밑에서 채워서라도 넘어가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제일 낮은 곳으로 흐르는데 제일 낮은 곳으로 흐르면 바다에 도달하게 된다. 정치의 목표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국민들의 행복이라면 바다는 민중, 국민들이다. 리더십의 철학으로 상선약수라는 말을 항상 이야기하고 또 권하기도 한다."

 

고 신영복 선생이 쓴 글귀. ⓒ 신영복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에서 노회찬은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서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힘을 기르는 능력"을 꼽는다. 진보정당 리더십의 조건에 대해서는 "개척자적 정신"과 "쇄빙선의 맨 앞처럼 얼음장을 깨고 나가는 능력, 정치력, 돌파력"을 강조한다(199~200쪽).

"약한 세력일수록 요구되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참 상반된 것이기는 한데 일단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당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개척자적 정신이 필요하다. 당을 잘 관리하고 대표하는 것은 부차적이다.

당 자체가 아직 허약하기 때문에 리더는 쇄빙선의 맨 앞처럼 얼음장을 깨고 나가는 능력, 정치력, 돌파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념과 철학이 확고하고 분명해야 한다. 또한 그런 신념과 철학을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러니까 안에서는 리더지만 국민들이 볼 때는 리더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당을 키워낼 수 없다.

운동권 출신들은 일상 활동을 열심히 하면 이런 괴리를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먹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러시아의 레닌이 일상 활동을 열심히 해서 혁명에 성공한 것도 아니고, 스웨덴 사민당이 각 지역에서 일상 활동을 열심히 해 지금처럼 커진 것도 아니다.

일상 활동은 일상 활동대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당 전체의 정치적 리더십이다. 또 하나는 최근 진보정당의 뼈아픈 역사가 말해주듯 다양한 세력을 공존시키는 정치력, 다양한 세력과 함께하게 하기 위한 리더십이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기록으로 만나는 노회찬의 꿈과 길 ⑥-2] 한국 정치엔 없는 언어... 노회찬 화법의 핵심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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