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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공방 응향원(凝香院)에 여행자가 들었습니다. 쥔장 박춘숙 선생의 향기가 서울·인천·평택에, 그리고 홍천까지 실려갔나요. 쥔장의 '그릇'이 궁금한 이들 열두엇이 모였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해가 중천일 때 길을 나섰죠, 술에 절어. 저마다 '큰 그릇' 하나씩을 품었습니다. '향기' 풀풀 풍기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응향도자.

여행은 느닷없습니다. 삶이 늘 그렇듯. 여행생활협동조합(이하 여생, 이사장 김일섭)을 시작한지 4년. 조합원이 2백여명 안팎으로 느니 가잔 데나 오란 데가 많습니다. 역마살만 커가고 제대로 된 '열매' 하나 거두지 못했으니... 올해엔 여행자의 집을 하나 만들자고 했습니다. 강화도로, 영월로 물색 중. 횡성에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이사들과 조합원 몇이 "한 번 가보자" 했던 응향원. 박춘숙 쥔장(전 명지대 도예관련학과 교수)을 만나고 강원지역 조합원들도 볼 겸 횡성 최남단 '달고개마을'로 출발합니다.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 바로 아래죠. 오대산에서 갈라져 나온 백두대간 영월지맥이 지나가는 곳. 선발 몇은 한 차례 들렀으니, 두 번째 방문인 셈이죠.

'여행자의 집' 물색, 치악산 자락...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21일 저녁 9시 30분. 표지판을 지나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홍천 사는 지봉일 선생이 손짓하네요. 하얀 수염이 일품인 여생 신임 이사. 어두워 잘 안 보이기는 하지만 큰 산채에 들어온 느낌입니다. 시끌벅적한 집으로 들어서니, 거나한 이들이 반기네요. 해질녘부터 모여 들이켰으니... 앉기도 전에 막걸리부터 권합니다.

먼저 온 이웃들이 고기반찬에 밥을 퍼옵니다. 동행한 늦깎이 여행자 곽경숙 조합원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냅니다. 명이(산마늘)나물 김치라네요. 하나는 익은 것. 또 하나는 막 버무린 것. 고깃집에서 장아찌로 몇 잎 싸먹었던 귀한 나물을 두 접시나 가득... 왜 이리 감격스러운지. 이런 식도락이 또 어디 있으리까.

도예공방 응향원에 전시된 박춘숙 작가의 작품들.
 도예공방 응향원에 전시된 박춘숙 작가의 작품들.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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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공방 응향원의 도자기 가마.
 도예공방 응향원의 도자기 가마.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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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가 부른 소요도 잠시. 막걸리가 돌고, 그들 삶이 펼쳐집니다. 치악산 북서쪽에 자리한 '박장대소'. 박순섭씨와 장춘학씨가 2012년부터 일구는 원주시 소초면 평장리에 있는 농장. 쥔장 박순섭씨가 명함을 건넵니다. 여생이 매년 6월이면 오디·고추(잼만들기) 따기, 밤줏기 등 품앗이 여행을 가는 곳. 두 분 성씨와 크고 작은 키를 빗대 지은 이름. 재밌네요.

홍천에서 농장을 일구며 '도농다리' 하는 지봉일 신임 이사. 그의 영원한(?) 직책은 이장이죠. 생명농업을 하며 도시와 농촌을 잇는 가교 역을 하고 있고. 요즘 태백산 명이를 도시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죠. 막걸리 안주로 즐기는 명이김치도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처음엔 그를 모를 뻔 했습니다. 수염을 짧게 잘라버렸기 때문이죠. "아깝다"고 토로했더니, 좌중이 찬반으로 갈립니다. "음식 묻으면 꼴불견"이라는 쪽과 "헤밍웨이급 구수한 멋" 평이 팽팽합니다. 쉰 중반인데 머리, 수염, 눈썹이 정말 하얗거든요.

동해에서 유기농 콩식품 전문기업 '바리의 꿈'을 운영중인 김현동 선생. 1950년대까지 세계 제일의 콩 생산지 연해주(만주). 소련 해체 뒤 10여년 방치된 농장을 가꿔 오갈 데 없는 고려인(스탈린이 시작한 고려인 흩어놓기)의 정착지원 사업을 시작한 '바리의 꿈'. 그 유기농 콩으로 메주, 된장, 청국장, 콩기름, 두부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죠.

'바리'의 유래가 궁금했는데, '바리데기'에서 따왔다네요. 갖은 고생 끝에 생명수를 구해 자신을 버린 아픈 아버지(임금)를 구하고, 북극성이 돼 생명을 관장하게 됐다는 신화 속 바리공주. 근현대 조국과 동북아 나라에서 버림받고 핍박받으며 사는 한국인들과 닮았죠.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단군 할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생명 살리는' 꿈을 실현하니 더욱.

'생명 살리는' 바리데기 꿈 키우며

취했습니다. 머리가 무거워질 때죠. 수다쟁이와 곁에서 하품을 해대는 이들. 밤이 깊어가는 때. 쥔장의 외침이 좌중을 사로잡습니다. "노래할 사람 나와 봐, 여기 기계 있어." 이 산중에 웬 노래방이냐고 혀를 차는데, 다들 마이크 앞으로 줄서네요. 푸념만으론 궁색해지죠. 한 곡 안 부르면 어떻게 할 기세. 어떡하나요. 노랫말 모른다고 잡아 뗄 수도 없고...

노랫소리에 귀가 멍해질 쯤 쥔장 또 외칩니다. "사우나 하실 분..." 쥔장과 안면이 있는 권순중 선생이 나섭니다. "내가 장작불은 잘 피워." 핀란드식 사우나를 즐겨보라고 권합니다. 정말, 산중에 없는 게 없네요. 쥔장 왈 '목원수'(木原水). 나무 본성(유약을 만들려고 태우고 남은 재)을 우려 만든 물. 몸에 좋다니 관심 폭발. "가자" 소리에 하나둘 자리를 뜹니다.

산중 광란(?)의 밤은 지나고. 지치고 취해 졸았나 봅니다. 이사장 안내로 도자기 작업장 한 귀퉁이 방으로 찾아들었습니다. 꿀잠에서 깬 건 "밥 먹으러 가자"는 소리. 곁에 분이 부스스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소릴 못들은 건 아니었습니다. 따라 새벽 산책을 하고 싶었는데, 술이 '웬수'죠.

요즘 은근히 술걱정이 잦습니다. 좀 덜 먹거나 하루나 이틀 걸러 먹겠다고 다짐하지만 맘뿐. 그나마 위안은 막걸리만 상대한다는 거죠. 소주·양주·폭탄주에 찌들었는데, 더는 못 버티겠다 싶었죠. 노트북에 휴대폰, 지갑 안 잃어버린 게 없을 정도. 전향(?)을 단행했죠. 기특하게도. 화학주 말고 발효주를 마시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그 덕에 후유증이 덜한다고 자위하지요.

구수한 누룽지입니다. 이보다 좋은 속풀이가 있을까 싶은. 밤새 식탁 한 가득 어지럽혀 놨던 음식과 그릇은 누가 치웠을까 궁금합니다. 몸 하나 주체 못하고 고꾸라진 게 미안해지는 때. 누군가 염치 좋게 거드네요. "누가 다 치웠데요?" 쥔장 잔소리 시작됩니다. "말도 마... 누룽지 준비는 또 어떻고..." 반성하는 아침, 명이김치는 언제 먹어도 최곱니다.

곽경숙 조합원 칭찬이 이어집니다. 그인 어머니의 손맛을 익혔다(타고났거나)고 했습니다. 품성까지 닮은 것이겠죠. "어머니가 늘 맛난 요리를 해놓고 여기저기 이웃들을 불러 대접하는 걸 즐기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여생 행사 때 이 분 나타나면 모두가 반기죠. 호사, 왜 마다하겠습니까.

아침을 먹곤 응향원 뒤뜰 머위 뜯기에 나섰습니다. 지천에 널렸습니다. 쑥, 머위, 고들빼기... 때 놓친 냉이 말고도. 기자는 밀린 일이 있어 잠시 인터넷과 씨름을 하고. 다시 밖이 시끌벅적하다 싶더니 나물 봉지 하나씩을 들고 들어옵니다. 그리곤 도자기 전시실과 공방 구경 가잡니다.

응향원 공방 나들목에 전시된 여인상. 심장을 껴안고 흙과 불의 맥을 느끼려는 듯...
 응향원 공방 나들목에 전시된 여인상. 심장을 껴안고 흙과 불의 맥을 느끼려는 듯...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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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많았던 그녀의 ‘큰 그릇’. 청자에서 나올만한 모든 빛을 발산,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그녀의 ‘큰 그릇’. 청자에서 나올만한 모든 빛을 발산,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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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아침, 명이김치에 누룽지

응향원은 쥔장이 횡성에 터를 물색할 때 한 스님이 권한 곳이랍니다. '향기가 모이는 곳', 이름도 지어주고. 나름 넓은 구릉에 도예공방 건물 서너동과 숙박시설이 여러 채 들어서 있습니다. 쥔장이 기거하는 목조건물 곁에는 작은 못을 조성했고요. 터 여기저기 그녀의 작품이 자태를 뽐냅니다. 온전하게 또는 부서진 채로.

전시실을 들어서자 마주한 큰 그릇. 크기가 어른 한명이 들어가 목욕하고도 남을 정도. 회백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상감기법)를 둘렀습니다. 푸른빛부터 자주, 회, 하양까지 가지각색의 빛이 감도네요. 청자가 띌 수 있는 모든 색을 갖춰다는... 받침대가 무너져 내리지 않고 완성된 게 불가사의하다는 진귀한 평가를 받는다네요.

이 작품을 만들며 혼절한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일주일째 계속되는 번조(燔造), 환원연소에 몸이 빨려들 듯 한 고통에 가마(窯)를 지키다 쓰러지고 말았다 네요. 병원에 실려가 치료중인 사이 전시회에서 이 작품이 쥔 허락 없이 팔려나간 이야기까지. 그 걸 되찾느라 별의별 고생을 다했다고.

흔히들 공방을 방문하면 전시실에 널린 걸 보고 '막사발'이라 부른다는데, 절대 그리 부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도자기 구을 때면 십여일 심장이 조여오고 온 몸이 불타는 듯한 노동을 몰라 하는 소리라고.

"여기 작품 어느 하나 내 심장 아닌 게 없는데, 막사발이라니..."

환원기법과 산화기법을 바꿔가며 검은 색 밝은 색으로 완성한 사발들. 고추(남자 성기) 형상의 손잡이를 한 차기(茶器). 자줏빛과 옥빛으로 흘러내린 유약이 몸통이나 받침에 영롱하게 결정체로 맺힌 사발. 여러 차례의 국내 전시회와 일본 등의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도예에 과문한 탓인지, 쥔장의 설명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기자들은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묻는 게 본성인데, 그녀는 질문금지 선언을 하고 말을 쏟아냅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겠다는 거죠. 해설에 지장을 줄이려 그리한 듣 싶기도 하고. 여튼, 열정과 카리스마가 넘쳐납니다.

설명을 들으며 노장자를 떠올렸습니다. 대기만성(大器晩成), 대상무형(大象無形), 대도무위(大道無爲). 큰 그릇은 늦게 완성(거의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되며, 큰 형상은 모양을 볼 수가 없고, 큰 도(道)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대기만성, 노자의 도(道)를 찾아...

전시회 때 사용한 '작은 여자, 큰 그릇' 글자가 새겨진 깃발(배너)이 눈에 띄네요. 딱 그거죠. 완성돼 멋지게 빛을 발하는 게 아니라 넘쳐흘러 형체가 없다는 대도범혜(大道氾兮). 작은 여자가 큰 그릇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음이 커지고 큼이 작아지는. 그러니까,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는 '큰 그릇'.

얼핏 본 쥔장 도예가의 모습입니다. 들은 이야기도 모자라고. 꽃전문가가로, 화병전문가로, 그리고 통일운동가로 살아온 그녀의 삶을 어찌 다 알리까. 이웃 북녘사람들을 돕는 데 응향원과 자신의 열정이 활용되기를 바랐다는 데. 권력이 바뀌며 중단되고 좌절된 남북교류와 통일염원. 그녀에게 남은 회한이 클 겁니다.

"겨레하나 활동을 할 때엔 북한에 여러 개의 빵공장을 운영했죠. 남녘의 물자와 북녘의 노동이 남북화해와 교류, 그리고 통일에 소중한 자산이라 여기면서요. 그런데 보수정권이 들어서며 다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내 또 다른 삶이 호전적 정치에 그쳐버렸네요."

일행은 이웃 영월군으로 향했습니다. 1천평 땅을 마련해 귀농 준비 중인 김일섭 이사장 농장. 꼬불꼬불, 봄꽃 만발한 백두대간 영월지맥의 매혹적 길을 돌아드는 재미. 두어 번 길을 잘못 들기도 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시골 지번(막다른 곳)이 잘 안나와서요.

몇 번 물어 찾아든 산골짜기 마지막 농가. 녹색건축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첫 작품으로 농막을 설치한 곳. 먼저 고양이 한 마리가 반깁니다. 낮선 사람과 잘 친해지지 않는 냥이가 웬일? 이 녀석, 완전 딴판입니다. 사람마다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떠네요. 사람이 그리웠던 걸까요?

공방 전시실에서 사발을 들고 작품을 해설하는 박춘숙 작가.
 공방 전시실에서 사발을 들고 작품을 해설하는 박춘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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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섭 여행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의 영월 농막.
 김일섭 여행생활협동조합 이사장의 영월 농막.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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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주인이죠. 24시간 농장을 지키니까요. 전 일주일에 사나흘 기거(주민등록도 이곳으로 옮김)하고요. 사료를 큰 그릇에 부어놓으면 알아서 먹죠. 이 녀석 덕에 들끓던 쥐가 사라졌어요. 한데, 며칠 전 와보니 한쪽 눈을 다쳐 못 보게 됐네요. 영역싸움 하다 그리 된 듯 싶어요."

냉이, 꽃다지, 고들빼기, 달래가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아름다운 4월, 땅이 주는 선물이죠. 1천여평 대부분 대추나무를 심었고, 사이 고랑에 감자와 콩을 심겠다고 합니다. 희망자 있으면 파종하고 수확해가라며 손짓합니다. 2층 농막에 현대식 화장실까지 갖춰다면서...

"모두가 선물 챙기네요, 고양이까지."

점심은 생선구이. 한적한 시골 음식점인데 앉을 자리가 없네요. 20여분 기다렸습니다. 가자미, 임연수어, 갈치, 고등어, 열기(불볼락) 철판구이 맛이 일품. 생선 뼈다귀를 고양이에게 주자며 조장래 선생(여생 조합원)이 봉지에 담습니다. 김 이사장이 한말씀 하네요.

"모두가 선물을 챙기네요. 심지어 고양이까지."

헤어질 시간입니다. 홍천·동해·영월 주민은 각자 길을 가고, 수도권에서 온 이들만 응향원에 들렀다 가기로 했죠. 박춘숙 선생이 차속에서 그간 하지 않았던 말을 털어놓네요.

"이제 와 생각해보니 헤어진 가족에게 좀 가혹했다 싶네요. 내가 물, 불, 흙을 다루는 사람인데 얼마나 기가 셌겠습니까. 나와 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응향원에 들어서는데 쥔장이 잠시 내리랍니다. 참나물이 활짝 피어났으니 뜯어가라며. 헤어지기 아쉬운 게지요. 운전자는 물을 마시고, 동승자들은 나물을 뜯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집 뒤편을 둘러보니, 도예에 사용하는 각종 나무(재로 유약 만드는) 패는 도끼 자루가 빠진 채 나뒹굽니다.

통일운동과 남북 민간교류에 몸담았던 활동가. '큰 그릇'을 만들겠다며 몸 던져 예술혼을 불태우던 도공. 이젠 지쳐 보이는 그녀처럼, 응향(凝香)이 더뎌 보이는 건 왜일까. 자루 빠진 도끼를 고쳐 다시 치켜드는 날을 기다립니다. 노자가 말한 그 '큰 그릇'을 다시 한번 만들겠다고 당차게 덤벼드는 '작은 여자' 모습을 그리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태그:#응향원, #박춘숙, #여행생활협동조합, #횡성, #도예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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