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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가에 마애삼존불을 선각한 바위가 보인다
▲ 바위 논둑가에 마애삼존불을 선각한 바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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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답사를 전문으로 하는 나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안내판이다. 안내판을 보면 그 지자체가 지역의 문화재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지자체라고 해서 안내판이 잘 되어있을 것이란 생각은 기우에 불과하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기 때문이다.

지방을 다니면서 그래도 제대로 안내판을 설치한 지자체를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전라북도 장수군이다. 장수군의 문화재는 큰길서부터 안으로 들어가며 길이 갈라지거나 굽은 곳에는 반드시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그런 지자체의 문화재를 답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이다.

선각한 마애불을 스케치로 그려 앞에 전시해 놓았다. 이 그림으로 마애불의 형태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이다
▲ 스케치 선각한 마애불을 스케치로 그려 앞에 전시해 놓았다. 이 그림으로 마애불의 형태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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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있는 바위, 그리고 선각한 마애불

18일 양양과 홍천의 경계인 오대산 구룡령을 넘었다. 그리고 19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차에 연료가 떨어졌다. 연료를 넣기 위해 길을 찼다가 만나게 된 문화재 안내판. 그저 무심히 지나친다고 하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안내판이다. 지방을 다니면서 문화재 안내판에 하도 작은 곳이 많아 이제는 길을 가면서 여기저기 눈여겨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원주 수암리 마애삼존불상'이라는 안내판이다. 안내판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섰다. 꺾이는 곳에 다시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길 안으로 900m를 들어가란다. 그런데 다시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앞에는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고, 그 저수지를 끼고 양편으로 길이 갈라진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여기가 딱 안내판이 있어야 할 곳이다. 다행히 동행을 한 일행이 저 언덕 위에 안내판 같은 것이 서 있다고 한다. 그 길로 들어서 배나무 밭을 지나자 말대로 그곳에 안내판이 서 있다. 이럴 경우 괜히 입안으로 중얼거리기도 한다. 한 마디로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이렇게 비 맞은 무엇처럼 투덜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애불을 선각한 거친 바위면. 그냥 육안으로 보면 잘 알아볼 수 없다
▲ 바위면 마애불을 선각한 거친 바위면. 그냥 육안으로 보면 잘 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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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에 잘 정리된 마애불 탐방로   

논 저편에 큰 바위가 한 무더기 보인다. 그곳까지 탐방로를 나무로 잘 꾸며 놓았다. 목책길을 걸어 마애삼존불 앞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선각으로 조성한 삼존불은 풍화에 이미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리고 보니 이 마애불을 몇 년 전에 한 번 들린 적이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지다니. 이젠 나이가 먹어간다는 것인지.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 마을 위편에 있는 논둑길 가 2m 정도의 바위면에 선각한 이 마애삼존불은 가운데 좌정하고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양편에 서 있는 보살상을 선각하였다. 하지만 삼존불의 얼굴은 전혀 알아볼 수가 없으며, 특히 왼편에 선 보살상은 아예 흔적조치 희미할 정도이다.

중앙에 좌정한 불상 역시 좌대 일부만 흐릿하게 알아볼 수 있을 뿐 얼굴부분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수인은 지권인(두 손을 가슴까지 올려 왼손을 역간 아래로 하고 오른손은 약간 위로 한 수인)을 한 듯하다. 이런 수인으로 보아 이 중앙에 불상은 비로자나불을 선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에 선각한 불상의 연화대. 자세하게 보아야 알 수가 있다
▲ 연화대 중앙에 선각한 불상의 연화대. 자세하게 보아야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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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으로 처리한 보살상. 그나마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다
▲ 보살상 입상으로 처리한 보살상. 그나마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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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기에 조성한 마애삼존불인 듯

원주시 소초면 일대에는 이곳 마애삼존불을 비롯해 마애공양보살상과 불두상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고 있어, 이 근방에 과거에 사찰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치악산으로 오르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 마애삼존불상은 비로자나불의 형식과 긴 하체의 표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이로 보아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통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강원도 여행길 끝자락에 만난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 마애삼존불상. 마애불을 찾으러 전국을 수없이 돌아다녔다. 남들은 이것이 무슨 문화재냐고 핀잔을 주면서 돌아서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문화재이다. 바위 앞에 서서 잠시 고개를 숙이고 돌아선다. 혹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저 지워진 선이 뚜렷해지지 않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불교문화신문과 티스토리 바람이 머누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애삼존불상, #원주, #소초면, #수암리,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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