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8 15:49최종 업데이트 23.02.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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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휴게소는 세계의 자랑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휴게소장과 우리나라에서 휴게소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회사의 본사팀장, 휴게소 납품업체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9년간 근무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자의 글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성별 현재흡연율. 출처_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 국가지표체계

 
[기사 수정 : 1월 19일 오후 6시30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팔아야 할 기호상품 중 하나는 담배입니다. 우리나라는 성인 남성 흡연율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한때는 담배 권하는 것이 미덕이었을 정도로 성인 남성 흡연율이 70%에 육박했으나 지속적인 금연 활동으로 현재는 40% 이하까지 내려온 상태입니다.


2022년 국내 담배 시장 규모는 17조 7000억 원대로 이를 담뱃갑으로 환산하면 35억 9000만 갑에 달합니다. 담배 판매량은 2014년 43억 6000만 갑을 정점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로 흡연율 감소와 함께 전자담배가 궐련형 담배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코로나19를 전후해 높아진 건강에 대한 관심, 늘어난 재택근무, 담배 연기에 대한 거부감 등은 담뱃재도 없고 냄새도 덜 나는 전자담배에 대한 선호를 높이는 추세입니다.

1988년 시장개방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외산 담배가 들어왔는데, 대표적인 회사는 필립모리스, 브리티쉬 아메리칸 토바코(BAT), 재팬 타바코(JTI)입니다. 시장개방 초기 수입 담배는 월등한 품질과 맛, 세련된 포장, 차별화된 광고, 담배자판기와 같은 혁신적 영업방식을 도입하여 점유율을 42%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안마당을 다 뺏기게 생긴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는 뒤늦게 각성하여 품질을 개선하고 생산효율을 개선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통해 2021년 기준 시장점유율 65%, 전자담배 점유율 40%를 회복했습니다.

KT&G의 이런 치열한 노력에는 여러 가지 꼼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부서나 정치권을 통한 구역 지키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관공서의 매점, 군대의 PX, 역과 터미널의 편의점 등에서는 외산담배 판매가 거의 불가능했죠.

이러한 불공정 관행에 대해 외국계 담배회사가 지속적으로 이의제기를 했고 결국 2016년에는 군대 PX까지 외산 담배가 취급되며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외산 담배가 뚫지 못한 시장이 한 곳 있습니다.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입니다.
  
유독 외산 담배만 기피하는 이유

2023년 1월 기준, 고속도로 휴게소 중 외산 담배를 취급하는 곳은 14곳입니다. 이 중 5곳은 민자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이며 나머지 4곳은 임시주차장의 편의점, 그리고 한 곳은 옥천IC 밖에 있는 옥천만남휴게소입니다. 그동안 도로공사가 관리하는 정규휴게소는 외산 담배를 취급하지 않았으나 지난 1일부터 4곳의 휴게소가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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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약 250곳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고 모두 담배를 취급하는데 유독 외산 담배만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KT&G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습니다. 즉 각종 홍보비, 지원 물품을 명목으로 외산 담배 취급을 근원적으로 차단한 것입니다. 

​이 문제가 외교와 정치권까지 번지자 2015년 공정거래위원회는 KT&G가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자사 제품만 취급하도록 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리고 2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KT&G의 불공정 계약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휴게소는 외산 담배를 취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엽연초 농가의 시위입니다.

2018년 영동고속도로에 위치한 휴게소가 외산 담배를 취급했다가 엽연초 농가의 시위와 정치인의 압력으로 판매를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민간기업인 고속도로 휴게소가 시위를 유독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재계약 때문입니다. 휴게소는 매년 평가를 거쳐 도로공사와 재계약하는데 민원이나 시위가 발생하면 평가에서 감점을 받기 때문입니다. ​​ 

사실 엽연초 농가의 주장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국내산 잎담배를 사용하지 않는 외산 담배를 판매하면 농민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국내산 잎담배 전량을 KT&G가 수매하니 외국계 담배회사는 국내산 잎담배를 사려 해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KT&G가 판매하는 담배가 국내산 잎담배를 100%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KT&G도 제조 과정에서 외국산 담뱃잎을 80% 정도 사용하며 특히 수출용은 거의 100%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외산 담배라고 부르는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도 사실 '외산'이 아니라 '국산' 담배입니다.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는 경남 양산과 사천에 각각 담배공장을 짓고 한국인을 고용해 생산하므로 수입산 담뱃잎을 사용했더라도 국산 담배로 분류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알고도 모른 척하는 한국도로공사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4월 KT&G가 고속도로 휴게소와 관공서 등 폐쇄형 유통채널에서 자사 제품만 취급하는 대가로 공급가 할인과 현금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2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수도권에 있는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국산 담배만 판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속도로 휴게소의 외산 담배 '보이콧'에 대해 한국도로공사는 "담배판매에 대한 권한은 우리에게 없다"며 "휴게소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것으로 도로공사가 외산 담배를 판매하라고 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라는 대답만 반복 중입니다.

​사실 이건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입니다. '정성평가'(定性平價)라는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평가항목이 있는데, 이 평가권을 도로공사가 가지고 있는 한 어떤 휴게소도 감히 도로공사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 선호 담배를 쉽게 바꿀 수 없는 소비자만 30년째 골탕을 먹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유들이 휴게소에 대한 상품 불신을 키워 젊은 세대의 휴게소 이용을 더욱 낮추는 게 아닌가 합니다. 

2022년 하반기부터 변화가 생겼습니다. KT&G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지원하는 홍보비가 눈에 띄는 규모로 줄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인데, 외산 담배 회사의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그동안 고속도로 휴게소 담배시장 비중이 크게 줄어든 데다가 외산 담배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의 휴게소 이용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22년 고속도로 휴게소 매출이 1조 원이라면 담배 매출은 고작 500~600억 원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현재 휴게소 주 이용객인 중장년층은 국산 담배 이용율이 높고 젊은 세대는 전자담배를 애용하는 추세입니다. 결국 젊은 세대 고객을 놓친 고속도로 휴게소는 토사구팽 당한 셈입니다. KT&G가 갑자기 지원을 줄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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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공정한 경쟁과 자율의 날개로

코로나를 거쳐 매출저조로 고전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입장에서는 지금이라도 외산 담배 취급이 필요해 보입니다. 단순히 상품 하나를 더 취급하는 의미를 넘어 앞으로는 힘 있는 외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객을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속도로 휴게소는 여전히 눈치를 보는 중입니다. 하필 지금 고속도로 휴게소 대부분은 마지막 연장계약 중입니다. 한 번만 도로공사에 나쁜 평가를 받으면 즉시 휴게소를 반납해야 하는 처지이므로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1995년 휴게소 민영화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의 자율권 문제입니다. 무늬만 민간기업일 뿐 도로공사가 평가를 무기로 얼마든지 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지금의 제도 아래서는 휴게소가 말하는 고객 중심 서비스란 실천하기 어려운 목표일 따름입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의 깨끗한 화장실, 넓은 주차장과 다양한 매장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꼭 들러야 하는 관광상품 중 하나라는 K휴게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이제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공정한 경쟁과 자율의 날개를 달아주면 어떨까요? 2023년 간절한 새해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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