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6 11:12최종 업데이트 22.12.0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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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공직자는 공적인 지위에 있지만 이들에 대한 모든 뉴스가 공익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는 훌륭한 언론사만큼이나 이상한 언론사들도 많고 때로 이들은 정치인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타블로이드지에서나 볼법한 가십성 뉴스를 생산하곤 한다.

사람들이 이런 뉴스를 소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뉴스가 자극적이고 말초적일수록 아무리 외면하려고 노력해도 소란스러운 곳으로 주의가 향할 수밖에 없다. 사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이런 뉴스들이 횡행하는 게 사회적 문제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스캔들과 같은 뉴스가 정치면을 덮을 때 정작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소식은 묻히기를 반복한다.

소위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지난 몇 주 동안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모 로펌 소속 변호사들과 사회계 인사들이 참석한 술자리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런 주장에 공익적 가치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이라면 정말 문제가 될 일이니까.

문제는 주장이 제기되고 뉴스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현재까지 몇몇 개인의 주장과 증언을 제외하고 당시 상황을 입증할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자신을 제보자라 주장하는 사람이 SNS 계정을 만들고 폭로전에 나설 것처럼 예고했지만 결정적인 제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의혹과 정황 그리고 추정에 근거한 주장들만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걸 사실처럼 뉴스로 만들면 전형적인 가십이 되어버린다.

그 누구의 대응도 이상적이지 않았다

증거가 있는데 꺼낼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제보만 믿고 무모하게 던져본 것인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사실이라 주장하는 개인과 모 언론사의 사정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 없이 근거가 부족한 뉴스가 도돌이표를 찍으면 보는 사람은 피로하고 정치를 다루는 언론 환경은 혼탁해지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고위공직자가 이해관계가 엮일 수밖에 없는 사람을 공개가 아니라 비공개 모임에서 만난 건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을 놓고 '대통령이 동백아가씨를 모른다', '대통령 정도의 나이면 모를 리가 없다'와 같은 공방이 이어지는 걸 보면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청담동 게이트'를 둘러싼 소란의 1차적인 책임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의혹부터 제기한 이들과 이를 재가공해 다시 기사로 만든 언론사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뜬소문으로 남았을지 모를 일을 국정감사장에서 섣부르게 꺼내고 의혹을 공식화 한 정치인들도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의혹의 대상인 대통령과 장관의 대응이 괜찮았느냐고 하면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가령 국정감사 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의혹 제기를 받았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며 "그 자리 있었다면, 저는 다 걸겠다. 의원님은 뭘 거시겠냐"라고 반응했다.

의혹 잠재우기는커녕 부채질만

한동훈 장관의 반응이 부적절했음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 바 있다. 물론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제기된 내용이 상당히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여지는 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따지고 보면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의혹이라도 국정감사장에서 의원이 장관에게 질문할 수는 있다. 만일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답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 장관은 흥분을 감추지 않으며 '의원님은 뭘 거시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장관 개인은 후련했을지 몰라도 '저렇게까지 반응할 건 뭐냐'고 의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장관의 반응은 스캔들을 불식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답변하는 한동훈 법무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청담동 게이트'가 점차 사실무근으로 정리되어가는 와중에 엉뚱한 뉴스가 등장했다. 지난 28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한 김행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 한남동 관저 만찬을 전하며 대통령이 '동백아가씨'라는 노래를 전혀 모른다고 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이 노래는 의혹으로 제기된 청담동 술자리에서 대통령이 불렀다고 한 곡이다.

만찬에서 오고 간 이야기는 누군가 공개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대화 내용을 언급한다면 이게 공개하기에 적절한지 아닌지 판단하고 조율해야 한다. 만일 대통령실에서 그래도 괜찮다고 판단했다면 정말 안일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이 다 꺼져가는 소모적인 스캔들에 기름을 부은 꼴이 아닌가. 조율 과정 없이 김 비대위원 개인 판단으로 공개했다고 해도 문제다. 대통령실의 메시지 관리 절차가 매우 부실하거나 아예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이 정말로 동백아가씨를 몰랐느냐'를 둘러싼 영양가 없는 의혹과 공방이 추가로 이어졌고 이 이슈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피로감만 누적되었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나는 '혹시 대통령이 야당이 소모적인 이슈에 골몰해 중요한 이슈를 놓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알지 않는가. 지금의 대통령에게 그 정도의 정치 감각이 없다는 것을.

불신이 키운 의혹, 대통령을 믿지 못하는 이유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면 아마 '청담동 술자리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의 선에서 마침표를 찍을 것 같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뼈아프게 받아들여할 부분이 있다.

사실 해당 의혹은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내용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어 사실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하고 판단을 그렇게 내리는 것과 별개로 한편으로는 찜찜한 마음이 계속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아닐까?'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이유야 많다. 우선 대통령의 술 문제는 당선 전부터 암암리에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오죽하면 지난 대선 당시 지역 유세를 떠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숙소에서 와인병을 발견한 선대위 관계자가 이를 압수했다는 이야기가 뉴스 프로그램에까지 나왔겠는가. 이후에도 대통령의 음주와 관련한 잡음과 우려는 잊을 만하면 종종 이어져 왔다(관련기사: 끊이질 않는 윤석열의 폭탄주·방역수칙 위반 논란 http://omn.kr/1x94n).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등이 2021년 12월 3일 울산 울주군의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소위 울산회동)을 하며 술을 마시고 있다. ⓒ 박현광

 
또한 대통령실 인사와 관련하여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를 진행했던 보수 유튜버의 가족을 채용하는 등 사적 채용 의혹이 연달아 터져 나왔고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 공사 업체 선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계속해서 불거졌다. 이 의혹들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과 수준이 다른 건 해당 인물과 업체들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추가로 대통령의 출·퇴근은 처음에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지금은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특히 퇴근길은 이제 언론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즉 대통령이 언제 퇴근하여 어디로 갔는지 알기 어려운 환경이 딱 만들어진 셈이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술 문제, 권력의 사유화 문제, 불투명한 동선 등을 떠올리면 황당한 의혹도 뜬소문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이 다 내 마음과 비슷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쉽게 무시되지 못하고 계속 세간에 떠돌았던 것은 '지금까지 대통령이 한 일을 보면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공유되었기 때문 아닐까.

말하자면 대통령을 향한 불신이 의혹을 만들어 낸 게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을 향한 이상한 소문과 의혹은 어느 정부나 이어져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만 해도 대규모의 금괴를 재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해괴한 가십이 돌기도 했다. 당연히 대부분 믿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에게 금괴는커녕 부정축재와 관련한 이슈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도 솔직히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쉽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의 의혹에 일말이라도 믿음을 가지면 자괴감이 들게 된다. 하지만 정작 사람을 이렇게 만든 대통령은 똑같은 감정이 들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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