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2 11:46최종 업데이트 22.12.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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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은 전광훈 목사와 함께 극우 활동을 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노동자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중재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장에 임명했다. 또 친일파 김활란을 미화하는 논문을 쓰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참여했던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나라의 백년대계를 책임질 국가교육위원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달 1일에는 극우 성향의 논문들을 써온 정치학자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했다. 국가범죄나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도모하는 진실화해위원장 자리에 엉뚱한 인물을 내정한 것이다.


이 엉뚱함은 작년 2월부터 있었다. 이때 국민의힘 추천을 받아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이 된 인물이 뉴라이트 학자 김광동이다. 윤 대통령이 진실화해위원장에 내정한 문제의 인물이 바로 그다.

극우인사가 진실화해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내정자 ⓒ 연합뉴스

 
이 내정 조치가 얼마나 황당한가는 제주 인구 25만 중에서 1만 4천(정부 발표) 혹은 3만 명이 군·경과 극우세력에 희생된 1948년 제주 4·3사건에 대한 김광동 내정자의 시각에서 역력히 나타난다.

2014년 4월호 <한국논단>에 실린 논문에서 김광동은 제주 4·3을 '반(反)한국적인 사태'로 규정했다. 논문 제목부터가 '제주 4·3 폭동은 반한·반미·반유엔·친공투쟁'이다.

그는 분단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의 호소를 미군정과 우익세력이 폭력적으로 짓눌러 대규모 인명살상을 초래한 이 사건의 발생 책임을 제주도민 유격대의 탓으로 돌린다.

그는 분단 반대를 외치며 미군정에 저항한 유격대가 양민 학살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무장 유격대는 군경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판단한 양민들과, 유격대에 협조하지 않거나 지원을 거부하는 자를 대상으로 학살과 방화를 자행했다"라며 책임을 엉뚱한 데로 전가한다. 4·3 현장의 학살 주범이 군경과 서북청년단이라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한 것이다.

그는 여지를 남겨뒀다. "물론 군경 토벌대가 계엄령을 과잉 적용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적법한 공권력 행사 넘어선 부분도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미군정과 국가권력이 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학살한 사실을 그 역시 알고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데로 책임을 돌렸던 것이다.

진실화해위원장은 국가범죄로 인한 민간인 희생을 규명할 책임을 갖고 있다. 국가의 잘못을 과감하게 밝혀내야 하는 자리다. 국가의 잘못이 명백히 드러난 제주 4·3과 관련해서까지 엉뚱한 주장을 내놓는 김광동 내정자가 과연 적합한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문제적 역사인식

1963년에 태어나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회 사무처 보좌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국가보훈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우파 단체장인 자유민주연구학회장·나라정책연구원장 등으로 활동한 김광동 내정자는 제주 4·3뿐 아니라 여순사건에 대해서도 비상식적인 관점을 갖고 있다.

1948년 10월 19일 발생한 여순사건은 제주 4·3에 대한 진압을 거부하는 양심적 군인들의 저항이자 이를 빌미로 국가권력이 여수·순천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이다. 김 내정자는 사건 희생자들이 국가로부터 보상받는 것에 대해서까지 부정적 언급을 내놓았다. 이 사건에 대한 그의 인식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여순사건 등에 대한 국가보상 문제를 다룬 지난 3월호 <월간조선> '진실화해위의 보상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나'에 김광동 상임위원이 언급된다. <월간조선>은 이렇게 말한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에 따르면, 처음 신청할 당시 인민군과 적대세력에 처형됐다고 진술했던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보상자 대상에서 탈락하자 일정 기간 후에 국군·경찰에 의해 희생됐다며 다시 보상을 신청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인민군과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가 국군·경찰의 희생자로 뒤바뀐 셈이다."
 
대한민국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자가 아닌 사람들이 여순사건 희생자로 뒤바뀌어 있다는 보도다. 이 보도의 근거 자료로 김광동 상임위원의 진술이 활용됐던 것이다.

김 내정자는 이 사건을 공산주의 운동의 관점에서 이해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친일청산이 저해됐다는 황당한 역사 인식까지 피력했다. 그가 2005년 7월 20일에 친일진상규명법 자유언론수호 국민포럼에 토론자로 참가해 발언한 내용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발언한 내용의 요약문은 인터넷에서도 검색된다.

<미래한국신문> 김성욱 기자가 정리한 요약문에 따르면, 포럼에서 그는 괴상한 논리로 친일청산 부정론을 역설했다. "국제적으로 역사청산은 일본·독일·소련처럼 침략전쟁을 한 전범국가에서 행해지거나 공산주의와 같이 전면적으로 잘못된 길을 걸었거나 북한과 같이 대량학살을 저질렀던 경우에 행해지는 것이다"라고 한 뒤 "이런 체제도 안 하는 역사청산을 왜 우리나라가 한단 말인가?"라고 강변했다.

그는 친일청산이 안 된 것은 공산주의 세력 때문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내놓았다. 이 대목에서 여순사건이 거론됐다. 공산주의 세력이 일으킨 이런 사건들을 진압하느라 친일을 청산할 기회가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여순사건을 공산주의와 엮어 사건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방명록에 쓰인 그 말

진실화해위원회 홈페이지의 위원회 소식-활동사진 코너에서 '김광동'을 검색하면 '2기 진실화해위원회-김광동 상임위원님 국립현충원 방문(2021.10.27)'이란 제목의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그는 현충원에 가서 "국군과 경찰의 헌신적 희생 뒤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라며 "그 뜻을 이어받아 번영된 대한민국을 계승해 나가겠습니다"라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이 게시글을 보면, 그가 10월 27일 현충원에 가서 국군과 경찰을 칭송하는 글을 썼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홈페이지 운영자가 표기한 것과 달리, 그가 실제 방문한 날은 10월 27일이 아니라 10월 19일이다. 게시글의 맨 아래 사진에서 "2021. 10. 19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김광동"이라는 자필 서명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화해위원회 홈페이지의 위원회 소식-활동사진 코너에서 '2기 진실화해위원회-김광동 상임위원님 국립현충원 방문(2021.10.27)'이란 제목의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운영자가 표기한 것과 달리, 그가 실제 방문한 날은 10월 27일이 아니라 10월 19일이다. 게시글의 맨 아래 사진에서 "2021. 10. 19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 김광동"이라는 자필 서명을 확인할 수 있다. ⓒ 진실화해위원회

 

10월 19일은 김광동 내정자에게 익숙한 날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공산주의와 연결한 사건인 여순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이 분야에 관한 극우 입장을 대변해온 데다가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까지 맡은 인물이 10월 19일의 의미를 모를 수는 없다.

그날부터 여수·순천에서는 양민들이 국군과 경찰의 진압으로 희생됐다. 그런 날에 그는 현충원 방명록에 "국군과 경찰의 헌신적 희생 뒤에 대한민국이 있습니다"라고 썼다.

국군과 경찰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훌륭하지만, 10월 19일에 여수·순천 양민들이 군경에게 희생된 사실을 잘 아는 학자가 10월 19일 현충원에 가서 그런 글을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폭력·국가범죄로 인한 사회적 상처를 보듬는 곳이다. 이곳을 이끄는 위원장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저지른 잘못에 분개하고 희생자들에게 뭉클한 마음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제주 4·3과 여순사건에 대해 김광동 내정자가 보여준 태도는 그가 그런 인물인지 아닌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그가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것부터가 문제 있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더욱 더 문제 있는 일이다. 이런 인사조치는 진실 규명과 화해를 도모한다는 이 위원회의 취지를 무색케 만든다. 우리 사회를 명백히 후퇴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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