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2 21:51최종 업데이트 22.11.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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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에 도전하면서 인생을 바꿀 여러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 최지희


직장을 때려치워야겠다는 결심을 남편에게 통보했을 때는 바야흐로 마당 있는 주택을 지어 이사한 지 몇 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평생의 소원이라며 남편을 협박해 땅을 샀다. 다가올 30년의 영혼을 은행에 저당 잡히며 집을 지었다. 당시만 해도 빚도 자산이었다(지금은 금리가 높아져 아니지만). 그 셈법에 따르면 남편은 하루아침에 남부럽지 않은 자산가로 거듭났다.

자꾸 빚쟁이가 됐다고 투덜대는 자산가 남편에게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보라고, 이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두 아들에게 '이야기 꾸러미'를 선물해 줄 오락실 같은 집이라고 위로했다. 위로가 무색하게 이야기 꾸러미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빚 꾸러미'였다. 아끼고 저금하며 빚 없이 사는 게 최선이라고 여겨온 우리 부부에게 무시무시한 대출금 상환일이 29년 9개월이나 창창하게 남은 캄캄한 날이었다.


"있잖아, 난 꿈이 있어. 드라마 작가가 될래. 얼추 마흔 다섯(당시 마흔 넷)에는 될...걸? 그래서 말인데 직장 그만둘래. 글에 집중하고 싶어. 출세해서 호강시켜 줄게. 나만 믿으라고!"

구구절절 주옥같다. 대략 '내일부터 물리 공부해서 양자역학의 비밀을 풀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심지어 내년쯤엔 노벨상 정도는 그냥 받아 올걸?' 정도로 황당하고 기막힌 결심이다. 나이도 마흔 네 살인데 이제야 잃어버린 꿈을 찾는다니, 것도 무려 드라마 작가? 대체 뭘 믿고? 요즘은 초등학생도 이런 맥락 없이 비현실적인 꿈은 안 꾼다.

'출세, 호강, 믿어' 쓰리 콤보는 사기꾼의 대표적인 행동 양식이다. 현실 적용의 예로 '결혼하면 손에 물 안 묻히고 호강시켜 줄 테니 믿어줘', '여기에 투자하면 떼돈 벌 것이니 믿으십시오' 등이 있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결심이 땅을 산 이후부터 흔하게 벌어졌단 것이다. 땅 사자부터 시작해 집 짓자, 원목마루 깔자, 비싼 조명 포기 못 해 등으로 이어지는 갖가지 결심만 벌써 수차례였다. 이 정도면 결심 중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날벼락 같은 결심 끝판왕 문자를 '읽씹'한 남편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저기요. 아등바등 모은 소중한 재산 올인했고요. 억 소리 나는 대출금이 겁나 남았고요. 이게 다 님이 집 짓자 협박하고 난리 쳐서 벌어진 일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 와서 직장을 그만두겠다니, 님 진짜 양아치세요?" 긴 말을 삼킨 남편의 목구멍 사정을 짐작하다마다였으나, 들리지 않았다. 그때의 난 여러 가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은 날, 마당 앞에 펼쳐진 풍경이다. ⓒ 최지희


'결심'의 도화선은 집짓기
 

겉보기엔 멀쩡했다. 주말 부부도 불사하고, 산후조리도 반납한 채 지켜온 '워킹맘'이라는 타이틀은 그럴싸했다. 10년 넘는 연차가 쌓이면서 일도 손에 익었고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사회의 일원으로 가치를 확인시켜 줬다. 엉덩이 무겁게 정년까지 대략 십수 년만 버티면 소소한 연금도 받으면서 '안정된' 삶을 그럭저럭 영위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놈의 '결심'만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결심'의 도화선은 집짓기에 나서면서부터였다. 아파트 말고 주택, 도시 말고 시골, 직장과 가까운 곳 말고 그저 내가 살고 싶은 곳. '대체로 옳고 적당하다'는 평가와 판단에서 벗어난 선택을 해도 별일 없다는 사실을 집 지으면서 알아버렸다. 집짓기 이전의 나는 세태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주저하고 단념하는 편이었다.

대학 졸업 후 몇 년을 국어 교사 임용 준비에 꼬라박았다. 교사를 꿈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학교를 싫어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있던 고등학교 시절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학교에 갇혀 지내면서 지긋지긋했다. 사회화되긴 했으나 망나니처럼 제멋대로인 기질도 교사가 되기에는 부적합했다. 능력도 소질도 관심도 없는 교사가 되고자 했던 건 하기 싫지만 하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

직장 다니며 애 둘을 키우는 일은 이제껏 경험한 적 없던 극한 노동이었다. 남편은 성실했지만 출근은 빠르고 퇴근은 늦었기에 대부분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내일의 에너지를 가불해서 오늘 쓰고, 또다시 끌어 쓰는 매일의 반복이었다.

무엇보다 무기력해지는 순간은 멍청이가 되어 가는 내 모습을 목격할 때였다. 하찮지만 하찮지 않은 일상의 뒤치다꺼리를 반복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아무 생각이 없어서 또 아무 생각이 없는 일종의 무의식 상태가 된다. 내가 뭘 꿈꿨었나, 꿈꿔도 되나, 에잇 잠이나 자자. 문득문득 쓸쓸했다.

'기똥차게' 재밌는 글을 쓰고 싶다는 찬란한 내 꿈도 점점 빛을 잃었다. 사는 게 '기똥차게' 재미가 없는데 그런 글이 써질 리 없었다. 가끔 용기를 내서 종일 책만 읽고 글 쓰고 싶다는 허랑방탕한 소망을 얘기하면 '돈 많니? 현실을 직시하렴' 올바른 판단이 차갑게 돌아왔다. '가난한 이상주의자'의 이룰 수 없는 꿈 따위는 접고 마땅한 길을 가자, 합리화했다.

집을 지으면서 알았다. 문제는 '가난한 이상주의자의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가난한 이상주의자처럼 보이기 싫은 나에게 있었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슈퍼우먼의 성공 신화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듯한 일을 하면서 그럴듯하게 아이를 키우며 취미로 글을 썼는데 대박 났다는, 남들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인생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이 우려하고 때론 비웃는 집짓기를 막무가내로 성큼성큼 해내다 보니 깨달았다. 다른 이들의 평가와 판단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명제가 아니었다. 그 고루한 해답에 먼 길 돌아서 도착했다. 그때부터는 신기하게도 용기가 솟고 결심이 쉬워졌다. 
 

집 짓고 직장을 때려치운 아내 덕분에 하늘이 노랗다는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줬다. ⓒ 최지희


세 시간 만에 온 남편의 답장

결심 중독자 양아치 아내의 퇴사 통보를 받은 남편에게 세 시간 만에 드디어 답장이 왔다.

'내가 당신의 재능을 썩히게 만들었나 봐. 당신의 그 자신감이 부럽습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주말부부도 해 봤고, 백 년 늙는다는 집도 지어 봤으니. 새로운 출발을 앞둔 당신을 응원합니다.'

남편과 신혼 콩깍지가 한창일 때 텔레비전을 보는데 전지현 배우가 나왔다. '전지현은 늙지도 않아.' 감탄하는 남편에게 '전지현이 예뻐, 내가 예뻐?'라며 없는 애교를 끌어모아 뿌잉뿌잉을 날렸다. 남편은 정색하며 말했다. '예쁘긴 전지현이 훨씬 예쁘지!' 이렇게 극악무도한 놈이다.

매사 진지하고 솔직한 남편이기에 몇 줄의 문자에 담긴 그의 지지와 응원은 '찐'이었다. 꿈 찾아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속없는 문자에도 남편이 내 진짜 속을 알아봐 줄 수 있었던 건, 그가 위태로운 나를 지켜보며 늘 마음 쓰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 이상주의자답게 답장을 보냈다.

'출세해서 떼돈 벌어다 줄게요!'

남편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것 바라지도 않습니다. 빚 갚으며 살림 꾸릴 생각하니 하늘이 노랗구요.'

그렇다면 파란 하늘 대신 노란 하늘을 보며 살게 된 남편을 뒤로한 채 직장을 그만두고 드라마 작가로 꿈을 이뤘을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열없지만 드라마는 언감생심, 공모전에 제출할 수도 없는 '쓰레기'만 몇 편 끄적거렸다.

이름 앞에 붙은 직함을 떼고 나니 내 능력과 수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판단력을 얻었다. 그래도 쉽게 단념하지 않고 뭐든 계속 써 볼 작정이다. 겁 없이 저지른 대출금을 갚기 위해 근근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다. 그럴듯하지 않은 일이라도 상관없게 되니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이 이전보다 넓어졌다.

사실 퇴사하면서 받은 퇴직금은 소중한 비빌 언덕이었다. 적어도 한두 해는 대출금 걱정에 눈치 보지 않고 자유를 만끽해도 되겠지 들떴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척척'이 기어코 안 된다. 퇴직금이 통장에 꽂힌 날을 기념이라도 하듯 마침 알맞게 남편의 고물차는 고속도로에서 멈췄다.

시골로 이사 오는 바람에 대중교통 출퇴근은 불가능했다. 돈을 벌려면 돈을 들여 차를 사야 하는 신비한 자본주의 알고리즘이다. 결국 비빌 언덕이었던 퇴직금을 몽땅 털어 남편에게 최신형 전기차를 선물하는 아내가 (어쩌다 보니) 되었다. 아내의 퇴사로 하늘이 노래진 남편에게 최신식 응원이 되었길 바란다며 오만 번쯤 생색을 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퇴직금으로 남편 차를 사준, 생계형 알바생인 나는 참 '멋짐이 폭발'하는 양아치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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