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30 10:37최종 업데이트 22.10.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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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맞은편에 설치되어 있는 <한글벽화 10마당> ⓒ 최준화


서울시에서 2013년에 조성한 한글 가온길을 대표하는 볼거리는 대표적인 한글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전시한 한글벽화 10마당이다. 한글학회 맞은편에 설치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지나가며 눈여겨보는 이야기다. 576주년 한글날을 앞두고 이곳 기록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두세 건의 일부 잘못은 '새 광화문 광장의 한글조형물 훼손, 다시 세워야 한다' 기사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이번에 총체적으로 점검을 해보니 한글 역사에 대한 잘못된 기록과 사실과 정반대로 번역한 영어 오역 등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는 기자가 한글가온길 답사 해설을 하면서 발견해 여러 번 서울시에 시정 요청을 한 것이고 영역 문제는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다.


이번에 한글 관련 기록은 훈민정음 연구의 권위자인 정우영 동국대 명예교수 자문을 받아 집중 검토를 했고, 영어 오역 문제는 2021년에 세종한글 국제홍보대사로 임명된 바 있는 크리스티안의 도움을 받아 최종 확인을 했다.

엉터리 영어 번역으로 뜻이 왜곡돼
 

한글벽화 1 <한글 창제는 백성을 위함이니라!> 이야기 ⓒ 최준화


첫 번째 <한글 창제> 이야기에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려 하자 집현전 학자 최만리는 여섯 개의 이유를 적어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최만리 혼자 반대 상소를 올린 것도 아니고 7명의 연합 상소였다. 이 상소는 창제(1443년 음력 12월) 두 달쯤 뒤인 1444년 2월 20일(음력)이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창제 후 적극적으로 보급하려 하자"로 바꿔야 하고 갑자상소는 최만리 단독 상소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영역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최만리가 반대 상소를 올렸다는 내용을 "he throne to oppose it"라고 해 놓아 마치 한글에 반대하기 위해 왕위에 오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만리는 내가 몇 년 만에 얼렁뚱땅 글을 만들려는 걸로 보이느냐"라는 표현은 "Do you seriously believe that I would execute such a sloppy work?"라고 번역해 놓았는데, 이 영어 표현은 "내가 그런 엉터리 일을 할 것이라고 정말 믿느냐?"라는 뜻이다. 최만리의 상소는 세종이 한글 창제한 것 자체가 엉터리 일이라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과 협의 없이 왜 일사천리로 빨리 처리하느냐에 대한 항의였다.

최만리 등은 한글 그 자체는 매우 신묘한 문자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최만리는 집현전 부제학으로 당대 최고의 학자요 청백리로 덕망 있던 세종의 신하였고 세종은 이렇게 반말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벽화 2 <한글로 권력층을 풍자하다> 이야기 ⓒ 최준화


두 번째인 <한글로 권력층을 풍자하다> 이야기에서는 "하 정승아, 망령되게 하지 말라!"라는 표현을 "Minister Ha, Please do not go senile!"라고 번역했다. 이 영어 표현을 다시 한국어로 옮겨 보면 "하 장관님, 제발 망령들지 마세요"라는 표현이다. 한국어 원문에서 중요한 목적어(공사를)를 빠뜨려 생긴 오류이다. 곧 이 사건은 장관급인 하연 대감이 책임을 맡고 있는 공사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성 벽보였다.
 

최초 한글 벽보(1449) 재현(글씨: 문관효, 그림: 임미란) 책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 31쪽 중에서 ⓒ 아이세움

 

한글벽화3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 최준화


<중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다>라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일종의 국가기록원인 사간원을 언론 담당 기관으로 잘못 표현해 놓았고, 영어 번역에서는 '중종(中宗)'을 '정종(Jeongjong)'으로 옮겼다, 또한 한글이 창제된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사대부들이 한글을 무시했다는 본문 내용을 영어에서는 한글 창제 100년 후에 양반들이 한글을 무시했다고 번역해 놓았다(About one hundred years after the creation of Hangeul, the gentry ignored Hangeul).
 

한글벽화 4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가 태어나다> 이야기 ⓒ 최준화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가 생겨나다>라는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전기수'의 로마자 표기를 'Jeon-gi-su'와 같이 음절 경계선(-)을 붙이지 않아 '정이수(Jeongisu)'로 오인하게 만들었다. '한글 소설'은 'Korean literature'라고 하여 '한국 문학'과 '한글 문학'을 구별하지 않았다.
 

한글벽화 5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 이야기 ⓒ 최준화


'Hangeul'과 'Hangul'이 통일돼있지 않아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라는 다섯번째 이야기에서는 '한글전용'을 '순한글'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로 표현했고, '한글 교과서'를 'Korean textbook(한국어교재)'이라고 번역해 한글과 한국어를 구별하지 않았다. 헐버트가 한글 전용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낸 것은 1891년인 만 28세였으므로 그림은 할아버지 헐버트가 아니라 청년 헐버트를 그렸어야 했다. 또한 다음과 같이 헐버트 묘비명에 쓰여 있다는 구절의 전달이 잘못됐다.

헐버트의 묘비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고 자신의 조국보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은 묘비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헐버트기념사업회 김동진 회장의 평가문이다. 영어에서는 묘비명에 쓰인 헐버트가 한 말('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하노라')을 같은 문장으로 처리해 심각한 오역이 됐다.

그리고 실제 묘비명의 영어는 "I would rather be buried in the land of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가 아니라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이다.
 

한글벽화 6 <1896년 4월 7일을 기념하라> 이야기 ⓒ 최준화


독립신문에 관한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순수 한글 신문'을 '순수 한국 신문(pure Korean newspaper)'로 잘못 옮겨 놓았다. 본문은 '한글전용 신문'으로 하고 영어는 'Hangeul-only newspaper' 또는 'Korean alphabet-only newspaper'라고 해야 한다.
 

한글벽화 7 <국어학자들이 얼로 살려낸 ‘조선말 큰 사전’ 원고> 이야기 ⓒ 최준화


조선말 큰사전에 관한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 "1921년 조선어연구회는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한글을 보존하기 위해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들었다"라는 설명문은 마치 사전이 1921년에 발간된 것으로 오해를 준다. "1921년에 조직된 조선어연구회는"이라고 써야 한다.

그리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빼앗겼던 원고를 되찾은 1945년 9월 8일을 영문에서는 9월 9일(September 9, 1945)로 해 놓았다.
 

한글벽화 8 <한글, 임진왜란에서 암호로 활약하다> 이야기 ⓒ 최준화


<한글, 임진왜란에서 암호로 활약하다>라는 여덟 번째 이야기는 제목 자체가 어색하다. '한글, 임진왜란 때 암호처럼 쓰이다'라고 해야 한다. 실제 오늘날과 같은 암호가 아난 비밀 문서였다. 선조가 직접 쓴 '국문교서'라는 문서가 현재 한 건 남아 있으므로 이를 사진으로 제시해야 한다.
 

한글벽화 9 <웃음보따리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 이야기 ⓒ 최준화


주시경 선생에 관한 아홉 번째 이야기에서는 '주보따리'를 'pack Ju'라고 해 놓아 '보따리'를 '우유 팩' 정도로 오인하게 번역했다. 사실 정확한 대역어가 없고 일종의 고유 별명이므로 'Ju-Bottari(cloth-wrapped package)'와 같이 발음 그대로 적고 영어 설명을 괄호에 넣는 방식이 좋다.
 

한글벽화 10 <세계인이 사랑하는 문자, 한글의 세계화!> 이야기 ⓒ 최준화


한글 세계화에 대한 열 번째 이야기에서는 "1997년에 국보 제70호 훈민정음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라고 해 놓았는데,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훈민정음' 문자가 아니라 1446년에 발간된 책이므로 <훈민정음> 해례본 또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영역도 "World Heritage List(세계 유산목록)"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국제 통용 용어인 "Memory of the world"라고 해야 한다.

이밖에도 한글의 로마자 표기인 <Hangeul>과 <Hangul>을 혼용하여 국어로마자 표기법을 위반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

기자와 함께 영역 문제를 검토한 크리스티안님은 "이제 한글 한류로 국제적 관심이 많아지고 있고 코로나가 풀리면 외국인이 몰려오므로 관광지 영어 번역에 더 많이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런 오기와 오역이 아니더라도 9년이 흐르다 보니 그림도 낡아서 개선이 시급해 보였다. 한글 가온길을 관리하는 서울시 관광협력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장 현장 확인해서 바로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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