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헬멧>은 ‘룸 서울’과 ‘룸 알레포’ 두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공간을 벽으로 나눈 ‘빅 룸’과 ‘스몰 룸’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룸 서울’에서는 1987년과 1991년 학생운동 현장을 배경으로, 빅 룸에서는 백골단의 시선이, 스몰 룸에서는 이들을 피해 숨어든 학생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관객은 어느 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경험하고, 두 공간을 가르던 벽이 열릴 때 비로소 각자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기자말] |
▲ 몸이 뻣뻣하면 배우라고 볼 수가 없다 “배우가 책을 읽고 감성을 다루니까 인문학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미안하지만 '체대'입니다. 오죽하면 나라에서 문화체육관광부라고 묶었겠어요? (웃음) 배우는 몸으로 표현하는 직업이고, 몸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배우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되는 거예요." ⓒ 곽우신
"오랜만이다. 프랭크 시나트라, 이 XXXX야! 니가 그래 싫어하던 시고니 위버가 내다!"
백골단 대장은 자신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여학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자신을 프랭크 시나트라라고 부르는지, 그 학생은 스스로 왜 형편없는 영화 <에일리언>의 주인공 이름을 붙인 건지 말이다.
그의 경험들로는 전투조 '미친개'가 왜 이렇게 자신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지, 무슨 말이 그렇게도 많은 건지, 왜 그렇게 악에 받쳐서 바득바득 발버둥치는 건지 짐작조차 못할 테다. 4년 전, 1987년 이 서점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니까. 언제나 기억은 피해자의 몫이니까.
그래서 대장은 "검은 띠 땄다"라며 매섭게 자신을 몰아치는 여학생에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본인은 남자고, 키도 크고, 곤봉으로 무장을 했다. 아마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학생 수십 아니 수백 명을 때려잡아 끌고 갔을 테다. 그런데 이 학생만은 달랐다. 때리면 아파하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쓰러트려도 다시 일어나는 질긴 여학생. 그 학생은 마침내 백골단 대장에게서 곤봉을 빼앗고, 책상 위에 올라가 외친다.
"내는 학교로 돌아갈 기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운동권 때려잡아 끌고가던 백골단 대장은 사투리 쓰는 여학생의 기술에 당해 기절하고 만다. 1991년, 대학가의 한 서점 지하실에서 그렇게 4년의 시간을 건너 누구는 드디어 방을 나가고, 누구는 드디어 방에 남는다.
"그 정도의 쪽팔림으로 이 사람이 무슨 일이 있을까요?"
연극 <더 헬멧>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스몰 룸'과 '빅 룸'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동시간대에 사건이 병렬로 진행이 되지만, 두 공간을 가로막고 있는 벽은 전혀 다른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룸 서울'의 무대는 운동권 학생들이 '불온서적'을 편하게 접할 수 있었던 대학가 서점이다. 서점 지하실에서 '스몰 룸'은 진압을 피해 학생들이 숨은 공간, '빅 룸'은 그밖에서 백골단원들이 주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백골단 대장 '헬멧A'를 연기한 배우 이석준은, 그가 방 안에 남게 되는 이 사건이 백골단 대장에게 그렇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평했다.
"방을 나간 그 아이한테는 거대한 사건일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한테는 그냥 내가 잡았던 애 하나 놓친 것뿐이거든요. 자신이 당한 걸 부하들이 어디 가서 퍼뜨리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였겠죠. 만약에 거물 중의 거물, 예를 들면 김영삼 정도 되는 사람을 놓쳐서 직업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당당함'으로 살았을 것 같아요.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삶은 영위될 테고, 그걸 기회로 또 다른 걸 잡을 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더 헬멧>의 2017년 초연부터 2018년 SPAF, 2022년 삼연과 때부터 2026년 네 번째 시즌까지, 재연 때만 제외하고 매번 참여해온 그는 이 작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운동하는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악인'이지만, 스스로 악인이라는 자각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대사건도, 그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시대는 바뀌어도, 자신은 틀리지 않았고, 권력자들은 '편한 것'을 또 찾을 테니까.
지난 20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배우 이석준의 '마지막' <더 헬멧>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악의 평범성
▲ 세대의 트리거 부모님한테는 6·25, 그러니까 공산주의가 너무 큰 이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빨갱이’ 아니면 ‘좌파’에 대한 색깔론이 그냥 무조건적인 트리거죠. 새로운 세대는 그게 이해가 안 되겠죠. 그 시대의 이념이 박히면 무엇이 옳고 그름인지 잘 모르게 되니까, 문화가 '소통'을 더 이야기 해야 해요. ⓒ 곽우신
무대 위에서 그가 연기하는 인물은 역사적으로도, 무대 위에서도 가해자의 자리에 위치한 사람이지만, 그의 모든 면이 다 사악하기만 한 '납작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후배가 위기에 빠지면 몸소 나서서 구해주고, 후배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서 가져온 잡채가 더위에 상했음에도 맛있게 먹는 인물이다. 저항시인 김수영의 시를 좋아해 한때 시인을 꿈꿨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는 평범한 '직업인'이다.
"'악의 평범성'을 가지고 접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뉴스에도 그런 거 많잖아요. 옆에 있는 저 사람이 너무 착하고 건실했던 사람이었는데 연쇄살인마였고. 그러니까 그들이 저지른 일을 악이라고 인지하지 못할 때 오는 그 이중성을 가져가고 싶었어요. 실제로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념이 박히면 뭐가 옳고 그른지 모르지 않을까요? 오히려 옳다고 믿고 살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죄책감도 없었겠죠."
그는 옛날 양담배를 단속하던 풍경을 예로 들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당시에는 엄연한 그리고 당연한 단속 대상이었고,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 역시 사회 안에서 정당한 직업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그런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라는 이야기였다.
1987년, 학생들을 숨겨주려던 서점 주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결국 숨어 있던 광주 출신 남학생을 끌고 갔던 그. '룸 서울'은 작은 방에 남겨져 몰래 숨죽여 울던 여학생에 초점을 맞춰 4년 후인 1991년으로 시간을 옮긴다. 작품은 전투조 '미친개'가 어떻게 변하고 성장했는지는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그 반대편에 선 백골단 대장의 4년은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이석준은 그 공백을 '사명감이 직업이 되는 시간'으로 채워 넣었다.
"처음에는 옳다고 믿었던 어떤 사명감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평범해지는 순간, 당연시돼서 사람을 때려잡는 순간이 오는 거죠. 배우들도 그래요. 우리 젊었을 때 작품 할 때는 거의 사명감으로 붙어서 막 난리를 쳤거든요. 작품을 위해서는 못 하는 게 없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이게 나를 위해서 무슨 도움이 돼?'로 변하는, 직장인의 평범함으로 바뀔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무대에서도 오히려 이 사람을 더 평범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해요. 직업인처럼 느껴지는 어떤 순간들을 만드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더 무섭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석준은 백골단 대장을 일부러 더 평범하게 연기한다. 악랄함을 과장하거나, 관객에게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에게 폭력은 특별한 일탈이 아니라 일이고, 조직 안에서 맡은 역할이며, 한 시대가 허락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이 앞섰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반복되는 업무가 된다. 그렇게 신념은 직업이 되고, 폭력은 일상이 된다. 그래서 이석준에게 백골단 대장은 괴물이라서 무서운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행동을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서 더 섬뜩하다.
"액션보다 어려운 건 공기를 바꾸는 것"
▲ 좋은 작품의 기준 제가 좋은 작품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과 닿아 있을 때예요. 그게 없다면 좋은 작품으로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작품은 그게 있죠. ⓒ 곽우신
무대 위 백골단 대장은 거칠다. 곤봉을 휘두르고, 학생들과 몸을 부딪치고, 마지막에는 '미친개' 시고니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이석준 역시 초연부터 이 역할을 맡으며 숱하게 몸을 써왔다. 부상도 잦았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룸 서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액션이 아니었다. 오히려 체력과 액션은 아직도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몸으로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액션과 움직임을 꾸준히 익혔고, 후배들을 가르칠 때도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감정 역시 무대 위에서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고 강조해왔다.
그에게 몸싸움 자체는 익숙한 영역이었다. 정작 어려운 건 빅 룸의 '공기'를 바꾸는 일이었다. 룸 서울의 빅 룸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 흘러가지 않는다. 백골단원들끼리 웃음이 터지는 순간들이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폭력과 공포가 다시 무대 위를 덮친다. 특히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백골단 대장은 앞선 장면들과 달리 1987년과 1991년을 직접 이어주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룸 서울'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힘든 건 끊어지는 감정을 연결시키는 거예요. '빅 룸'은 이 아이를 잡았던 백골단에서 나만 연결된 서사이고, 다른 배우들은 다른 인물들을 연기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제가 이 공포감을 끌고 들어가야 되는 역할이 있어요. 이미 코미디로 번져 있는 걸 다시 갖다 붙이는 순간이 조금 애매했어요. 액션으로 다 해결할 수도 없고, '이 부분을 어떤 식으로 연결하지? 공기를 어떻게 바꾸지?' 이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가 선택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관객을 직접 바라보는 것이었다. 백골단 대장이 자신들이 왜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이석준은 객석과 유독 오랫동안 시선을 맞춘다. 그가 그 장면에서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단순히 1980년대 백골단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딱 한 장면밖에 없어요, 사실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이 시대에 왜 아직도 우리가 존재하는지 알아라'를 설명하는 그 신에서 관객하고 시선을 많이 맞춰요. 전막에 등장했던, 너희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게 나야. 그리고 지금 그거는 너희들도 잊어먹으면 안 돼. 그런 장면이거든요."
그가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의 눈을 마주치면서, 이 이야기 속 공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1987년과 1991년의 이야기를 처음 무대 위로 옮겼을 때, 대학로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한 이유는 2017년 즈음부터 시작된 시대적 조류와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오랫동안 작동해왔던 가부장제의 모순이 재확인되며 균열이 발생했고, 미투 운동의 바람이 불며 그간 감춰져 왔던 많은 폭력의 실체들이 드러났다. 대학로는 특히나 그 중심에 있었다. 여성 주인공이 사투 끝에 남성 악당을 무찌르고 승리를 선언하는 그 처절한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관객을 전율시켰다.
시고니 위버를 혐오하는 프랭크 시나트라
▲ 바뀌게 된 계기 “선배는 택시 탈 때 무서워?” 옛날에 여자 후배가 저한테 ‘선배는 택시 탈 때 무서워?’라고 하더라고요. ‘아니. 왜?’ 했더니 ‘우리는 아직도 무서워.’ 그 얘기가 충격적이었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남성이 여성을 택시에 태워 보내주고 번호를 적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일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 곽우신
그래서 이석준은 '룸 서울'의 헬멧A 역할을 "철저하게 조연"으로 뒀다. "이 사람은 주연일 수 없고, 삶의 주연일 수 없다"라는 이야기였다. 이 평범한 직장인이 감정적으로 동요되며 격정을 토로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영화 <에일리언>을 질색하는 부분이다.
1987년 '스몰 룸'에서 여학생이 <에일리언2>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극찬하는 동안, '빅 룸'에서 백골단 대장은 이 영화를 깎아내리기 바쁘다. 이석준은 이를 프랭크가 가진 시대적 감각을 보여주는 장치로 이해했다. 특별히 악랄하거나 차별적인 사상을 선언한 게 아니라, 그 시대의 남성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가부장적 감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액션물이나 고난 서사를 극복하는 인물들은 남자였는데, 여자를 '전사'로 내세워서 여자가 해결하고 외계인이랑 싸우는 서사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이죠. 사실 그것도 관념과의 싸움인 거예요. 남성 중심 시대, '여자가 어디 감히'라는 세대가 여성 중심 서사로 넘어가는 것을 못 견디는 거죠. 그래서 외계인을 '암컷'이라고 표현하고, 알을 낳는 행위를 조롱하는 건, '어디 여자가 감히 집 밖으로 나와? 밥이나 하지, 운전을 하고 자빠졌어'라는 정도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죠."
'젠더 갈등'이라는 말은 어떤 것을 드러내는 말이지만, 어떤 것은 감추기도 하는 말이다. 미투 운동이 조류를 만들어내고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는 아직 물음표이다. 이석준은 이러한 갈등이 젠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봤다. 좌우, 계파, 세대가 서로를 가르는 방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이 2026년에도 힘을 얻는 슬픈 이유이다.
"1987년이나 1991년이나, 2017년이나 2026년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죠. 12.3 비상계엄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세요. 다시 돌아왔죠. 이쪽으로 딱 당겨온 것처럼 보이지만, 활시위가 한쪽으로 당겨지면 팽팽해지니까 다시 반대쪽으로 끌고 가고 싶어 하잖아요? 지금 현재 내가 느끼는 차별과 소외, 소수에 대한 얘기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배우나 공연이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면, 물론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아직도 '너네는 예술이나 해' 이런 게 더 많거든요. 진실을 얘기하는 순간을 도망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아직은.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걸 계속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게 무대예요. 그 시대를 상징하는 건 그냥 소재일 뿐이에요. 이 이야기는 학생운동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은 소외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게 문화이고, 문화의 힘이죠. 앞으로도 끊임없이 얘기할 수 있어야 되고, 외쳐야 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멀었네요. (웃음)"
그래서 이석준에게 <더 헬멧> '룸 서울'이 전하는 메시지는 거창하지 않았다. 오히려 극 속 학생들이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일상에 가까웠다. 그 때문인지 이석준은 자신의 마지막 시즌에 대해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특히나 룸 서울이 그랬다. 후배 배우들이 자신과 다른 색깔의 백골단 대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크게 걱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되게 직관적이고 쉬운 작품이에요. 사실 무대 위에서 다 얘기해주고 있고, '우리 다시 여름에, 다시 학교에서 만나자.' 이게 끝이에요. 처음부터 그 얘기만 하고 있어요. 그냥 평범한 생활을 같이 누릴 수 있는 시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얘기거든요. 평범한 시대를 같이 만들어가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의 노력으로 같이 만들어갈 거야, 배려와 소통을 통해서! 그 생활을 만드는 세상을 꿈꾸는 아이들의 얘기니까요. 사실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룸 서울은 신기하게도 후배들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제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되게 잘하더라고요. 자기만의 색깔을 끌고 가고 꽤 그럴듯하게 나와요. 캐릭터를 변화시켰을 때 제가 '재밌다'라고 한 적은 있어도, 굳이 뭘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아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인물을 붙들고 있었지만, 그 인물이 무대의 중심을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배우. 백골단 대장은 끝까지 방 안에 남는 조연이었고, 이 무대의 주인공은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며 이 방을 나가는 학생이다. 마침내 문밖으로 나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며, 관객들도 1991년의 이 방을 함께 빠져 나와 2026년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석준에게도 룸 서울의 중심은 결국 그 방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몫이었고, 이제는 자신이 그 방을 나올 차례였다.
이석준의 아쉬움은 '룸 서울'이 아니라 '룸 알레포'에 남아 있었다.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이 방을 나가는 이유 액션은 앞으로 몇 년간 더 잘할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체력 때문에 그만두는 건 진짜 아니에요. 액션 신 같은 경우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잘 했고, 앞으로 몇 년은 다른 배우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그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고, 몸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해요. ⓒ 아이엠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