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비바리포스터
라온컴퍼니플러스
가지 않는 길을 가야 영화다
만약 달랐다면 어떨까. 이들에게 돈이 쏟아지지 않고, 영화제에서 성취도 없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고생은 고생일 뿐이고, 보상과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헛힘 뺀 실패의 기록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감독이 내린 답이 영화 가운데 과정을 대하는 연출적 자세가 된다. 위기와 극복의 과정이 지닌 의미가 결괏값에 의해 달라지는 만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서와 감각과 사상 따위는 주목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오로지 결과가 확인됐을 때 의미를 가질 저항으로써만 과정이 의미를 갖는다. 그때 우리 참 힘들었지, 하지만 결과는 좋았잖아, 한 잔 해. 그런 영화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들이 찍는 영화가 무엇인지, 무얼 말하려 하는지, 그 내용에 대해선 촬영지며 배우 말고는 간략한 언급조차 없는 것이다. 성재가 찍으려 한 영화가 무엇이냐에 따라 작품이 훨씬 풍요롭고 다채로워질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그대로 영화가 현실을 구하지 못한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엉망진창인 현실 가운데서 모두를 구하는 기적은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카를로비바리> 속 인물들이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이례적 성공기의 완성으로 박제될 뿐이다. 마치 위인전이나 경전, 자기계발서처럼 말이다. 극영화가 나아갈 길이 과연 이것인가. 모두를 구할 수 없는 현실 가운데 모두를 구하는 동화를 그려 안도하거나 헛된 희망을 캐게 하는 것일 뿐인가. 영화예술이란 관객에게 가 닿아 그를 움직이는 것, 그리하여 현실을 변화케 하는 것이다.
OTT 시대에 작품양산 체제에 돌입한 일선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라면, 그 방식에서 망실되는 영화와 드라마, 곧 영상예술의 가치를 확인해야만 할 책임이 있다. 돈으로, 또 수상이란 외부적 선택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도록 하는 쉬운 결말이 이를 보는 관객과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단 한 번이라도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수용을 전제로 한 창작자, 관객을 염두에 두는 감독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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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