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얼굴스틸컷
마름모필름
네 편의 연작소설처럼
<환희의 얼굴>은 어떤 영화인가. 크게 네 개 덩어리로 나뉜 이야기는 모두 제 나름으로 환희의 얼굴을 보여준다. 배우 정이주가 연기한 환희는 각 장에서 저마다 다른 때, 다른 방식으로 인물들과 마주한다. 때로는 선생님이라 부르는 작가와, 또 때로는 제가 일하는 음식점 주인이며 동료 아르바이트생과 만나 이런 저런 일을 겪는다. '소설가의 집', '방문자들', '꿈과 희망의 나라로', '환희의 얼굴'이라 각기 이름 붙은 네 장은 노골적으로 단편소설집, 그중에서도 주인공이 같은 연작소설의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 영화가 선명하게 서사적 인과를 드러내며 전개되거나 통상의 성장담을 기대하게 하는 구석이 없다는 점이겠다.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낯선 톤의 대화는 마치 홍상수 영화의 그것처럼 보이는데,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그 연관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대화와 구성, 관객에게 다가서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각별히 유사한 부분이 많다. 감독이 그저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참조하려 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찌할 수 없이 이미 거장이라 불리는 다른 감독의 인장이라 해도 좋을 흔적들이 묻어나는 건, 차별화할 성취가 없다는 전제 아래 그리 바람직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환희가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진득하게 보인다. 때로는 주인공이 환희인 듯 하지만, 그보다 많은 경우 환희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처럼도 느껴진다. 같은 인물이 다른 장에 등장할 때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도 영화는 확신할 수 없도록 충분한 단서를 배치하지 않는다. 각 상황은 관련성이 있는 듯, 없는 듯 제각기 이어진다. 처음 환희는 자기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를 찾아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다음엔 그녀의 집 앞에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그 사이 가까운 듯 실은 가깝지 않은 관계성이 드러나고, 둘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결과가 확인된다. 그러나 환희의 말과 그녀를 대하는 타인의 말 사이에서 관객이 믿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는 끝내 알 수 없는 일이다.
▲환희의 얼굴스틸컷
마름모필름
나의 오독을 오독오독 씹어가며
상황도 인물도 바뀌지만 다르지 않은 상황들의 연속이다. 환희가 먼저 일했다는 백반집과 옮겨 일하려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일도 그렇다. 환희는 좋은 아이인가, 나쁜 아이인가.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그를 판단하게 유혹하지도, 거리를 두게끔 강제하지도 않은 채 모호한 관점을 유지한다. 마치 청자가 없이 혼잣말 하는 사람처럼 제 갈 길을 간다. 보는 이는 자연히 떨어진 이야기의 간극을 메우려 수고하려 들 테지만, 그것이 답에 가까이 가는 길인지 그 반대인지, 심지어는 그 수고가 작품의 의도와 엮여 있는지 아닌지도 상관하려 들지 않는다.
많이 무리해서 말하자면 제목인 '환희의 얼굴'에서 연상할 수 있듯, 한 사람의 얼굴을 단일한 시점, 특정한 관계와 상황으로 단정하거나 평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라 적을 수는 있겠다. 다만 영화가 그와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고 있다는 어떠한 증좌도 발견하지 못한 관계로, 나는 그렇다고 적기 민망해지는 것이다. 이런 경우 최대한 그럴 듯한 의미가 담긴 쪽으로 쓴다는 이름난 어떤 비평가와는 달리, 나는 말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평자의 욕구로 대단하게 부풀리고 싶지는 않다. 그리하여 이 영화 앞에 나의 무력함을 인정할 뿐이다.
반대로 <환희의 얼굴>이 나쁜 영화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 영화는 어찌 됐든 전개되고 인물들은 저마다 통제된 방식으로 맡은 이를 연기한다. 그 사이에서 관객의 관심은 영화의 해석이나 비평과는 무관하게 어느 것엔 끌리고 다른 것엔 멀어지며 저 나름의 길을 간다. 이미지와 음향 또한 그 자체로써 쾌하다거나 불쾌하다고 말할 수 없는 평이함의 연속으로, 관객 저마다의 개별적 이해와 감각이 주관적으로 뻗쳐나갈 환경을 제공한다. 요컨대 압도하거나 이끌거나 말을 걸거나 하지 않는다. 말은 하고 보여주기도 하지만 나를 고려하지 않는 것, 관객으로서의 내 자리를 소설의 형식을 입은 영화 가운데 찾기 힘들단 건 이색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가운데 여러 순간에 걸쳐 환희는 제 자리를 찾으려 한다. 때로는 상대의 마음속에서, 또 때로는 일터 안팎에서 제가 있을 자리를 구한다. 사람이란 어디든 몸과 마음 둘 자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듯이. 그렇다면 이 영화 가운데 관객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의 오독을 오독오독 씹으며 내 자리를 찾다 실패한 한 명의 관객이 되어 감독을 바라본다. 극장이 제공한 좌석 번호 말고 진짜 영화가 염두에 둔 관객의 자리가 있긴 하였는지, 문득 나는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환희의 얼굴포스터
마름모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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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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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달리 비치는 환희의 얼굴, 이 영화도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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