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스틸컷
홀리가든
가족도, 친구도, 인생도 잃었어!
15살 어느 여름에 두 사람은 몸이 바뀌었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30살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 두 사람은 어쩌면, 혹시, 정말로 운이 좋다면 다시 몸을 바꾸어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한다.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것이 이 영화의 관심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에 다가서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진실로 바뀌어 있는 몸의 주인인가 하는 물음을 묻는다. 두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태어나 15년을 산 몸의 주인인가. 그렇다면 바뀐 채로 15년을 산 몸과 그 인생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15살과 30살, 또 그 사이 여러 지점을 오가며 전개되는 영화다. 결국 현 시점, 다시 몸을 바꾸는 도전에 나설 것인가가 영화의 결론과 맞닿는 것이겠으나, 그에 영향을 미치는 건 15살과 30살 사이에 흩뿌려진 삶의 궤적과 그것이 낳은 관계며 사건들이다.
영화는 몸이 바뀌고 난 뒤 두 사람이 겪는 일련의 일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내보인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중3 여자아이 몸에 들어간 남중생이라니, 관계맺음부터가 잘 될 리가 없다. 단짝이던 친구들의 관심에 전혀 호응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지식과 감성 모두에서 역부족을 드러내는 가짜 여중생은 결국 왕따로 전락하고 말 밖에. 심지어는 저와 몸이 바뀐 마나미의 패거리가 바로 자신을 '자의식 과잉'이란 이유로 싫어하고 있지 않은가. 리쿠의 여중생으로서의 삶은 그래서 고립과 실패의 연속일 밖에.
마나미라 해서 좋은 상황인 것은 아니다. 도대체가 중3 남학생의 놀음이 버겁기 짝이 없다. 지식뿐 아니라 운동신경과 그동안의 경험치까지 바뀐 몸에는 전혀 남아 있지가 않아서 일상의 습관이며 행동거지부터 몸을 쓰는 일까지 한 순간에 여중생이 되고 만다. 평범한 여중생의 몸동작과 운동신경을 가진 남중생이라니, 이건 그대로 또 다른 비극이다. 다행히 단짝친구인 타사키가 의리로써 곁을 지켜주긴 하지만, 한순간에 바뀐 제 친구에게 낯선 감정을 가질 밖에 없다.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스틸컷
홀리가든
차별화되는 지점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가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쉬운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바뀌며 빚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를 같은 설정을 가진 많은 작품이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남의 몸으로 연애하기, 다른 성이나 세대차로부터 빚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사건들 같은 것을 다른 영화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 영화의 주요한 관심사로 다루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다르다.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카페에서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대화와 그로부터 얻어지는 이들의 고충과 감각에 할애한다.
한 순간에 사라지는 가족, 새로 적응해야 하는 달라진 환경은 가장 큰 고민이 된다. 본래의 가족에게 당신의 자식과 형제가 이제는 다른 몸에 들었단 걸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저마다 다른 반응은 이제껏 비슷한 영화가 쉬이 간과하거나 무작정 돌파하고는 했던 지점이다. 거센 저항에 맞닥뜨려 차마 제가 이 가족의 일원이라고 주장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차라리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간 대동소이한 장르오락물이 얼마만큼 진지한 고민이 없었는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몸에 들어와 살아가버린 인생이 또한 저 자신을 이룬다는 건 중차대한 문제다. 달라진 성별과 그로 인한 호르몬의 노출 등 생리적 변화는 논외로 치더라도, 인간의 자기인식이 얼마나 육체라는 물질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이 영화가 생각해보게 한다. 본래의 몸에 통제력을 완전히 잃고 감각조차 할 수 없게 됐다면 그 몸은 과연 새로 깃든 남의 몸보다 더 귀한가. 더 귀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다른 몸에 든 정신에게 정말로 그렇게 감각되는가. 이로부터 파생되는 많은 문제들이 어느 순간 몸을 되돌릴 수 있다는 선택의 순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에 이른다.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포스터
홀리가든
탁월하진 않아도 남다르긴 하다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를 비슷한 설정을 채택한 다른 많은 작품보다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 반대가 되기 십상일 테다. 장르물이란 이미 통하는 공식을 검증하고 답습해온 하나의 동질적 군집이다. 새로운 시도랄 것이 없지는 않아도 이미 하던 것을 더 잘 해내려 하는 노력이 훨씬 크다. 더 많은 영화 소비자에게 더 잘 통하려 매진한 결과물의 반응이 더 좋을 확률이 높은 건 자명하다.
그러나 그 반대를 구하는 일에도 의미는 있다. 남들이 나아가려 하지 않는 영역에서 기꺼이 전진하는 작업은 영화와 장르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 이제껏 묻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다루지 않은 담론을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가 어느정도는 해낸 것도 바로 이것이다.
어떤 영화는 끝나고 나서 시작된다. 머릿속에 질문이 맴돌고 새로운 감각이 일어난다. 때로는 불편하고 무거우며 거추장스러울 수 있겠으나, 어떤 유익함은 불편하고 무거우며 거추장스럽게 다가온단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네 얼굴로는 울 수 없어>가 해내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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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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