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소녀들의 이 동작 때문에 훌라 수업 찾아갔습니다

[리뷰] 영화 <훌라 걸스>

26.08.18 16:22최종업데이트26.08.18 16:22
원고료로 응원
일본 영화 <훌라 걸스>. 2006년도 작품이니까 벌써 20년 전 영화다. 그해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탄 이 영화는 우리나라 OTT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어서, 나처럼 취미로 훌라를 배우는 이들에게는 로망 같은 작품이었다. 나는 개봉 당시에 영화를 봤지만, 훌라를 배우고 나니 꼭 한번 다시 보고 싶어졌다. 훌라를 아는 지금 보면 느낌이 전혀 다를 것 같았다. 마침 올여름, 20주년을 기념해 영화 <훌라 걸스>가 리마스터링으로 극장에 재개봉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1965년,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한 탄광촌에서 시작한다. 석유가 석탄을 대체하면서 세계적으로 광산업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 마을의 중심인 '조반 탄광' 역시 폐광 위기에 처한다. 탄광 회사는 온천을 이용한 워터 파크 '조반 하와이안 센터'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하와이 분위기를 내기 위해 훌라 공연 무용단 '훌라 걸스'를 모집하기로 한다. 하지만 3대에 걸쳐 광산에 몸담았던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하와이안 댄서 모집'

 <훌라 걸스> 스틸
<훌라 걸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게시판에 붙은 전단지를 들여다보는 사나에. 사나에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탄광에서 일하는 18살 소녀다. 그녀는 소꿉친구 기미코를 설득해 함께 하와이안 댄서에 지원한다. 회사는 도쿄에서 세련되고 아름다운 춤 선생님 마도카를 모셔 오지만, 정작 모인 인원은 단 5명. 그마저도 춤이라곤 춰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탄광 사정이 점점 나빠질수록 훌라 댄서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본격적인 춤 연습이 시작된다. 반대하는 엄마에 맞서 집을 뛰쳐나온 기미코, 아버지의 실직으로 탄광촌을 떠나게 된 사나에, 탄광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사유리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훌라 걸스는 점점 더 단단해진다. 유명 무용단의 화려한 댄서였지만 가족의 빚 때문에 술로 나날을 보내던 마도카 선생 역시, 이들을 가르치며 춤을 좋아했던 자신의 순수한 마음이 되살아남을 느낀다.

홍보를 겸한 순회공연이 시작되고, 신문과 잡지에도 실리면서 훌라 걸스는 점점 유명해진다. 마침내 조반 하와이안 센터가 오픈하는 첫날, 이들은 수많은 사람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 이야기가 더 감동적인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마도카 선생님의 실제 모델은 이 지역에서 평생 훌라를 가르쳤고, 기미코의 모델 역시 연예인 제의를 사양한 채 끝까지 하와이안 댄서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조반 하와이안 센터는 '스파 리조트 하와이언즈'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도 운영 중이다. 지도 앱을 찾아보니 지금도 하루 두 차례씩 훌라 공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진 속 훌라 댄서들이 영화와 거의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훌라의 손동작

 <훌라 걸스> 스틸
<훌라 걸스> 스틸그린나래미디어㈜

지난해 영화를 볼 수 없는 아쉬움에 원작 소설 <훌라 걸스>를 찾아본 적이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절판된 상태라 중고 서적으로 어렵게 구해 읽었다. 책이 재미있어서 직접 낭독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원작을 읽은 덕분인지, 영화를 볼 때 장면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캐릭터의 세밀한 심리까지 이해할 수 있어 훨씬 몰입이 잘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훌라의 손동작도 깊이 가슴에 와닿았다. 특히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 끝에 마도카 선생이 도쿄로 돌아가려고 기차에 오르는 장면에서였다. 그를 기차에서 내리게 한 것은 말로 한 설득이 아니었다. 반대편 승강장에서 훌라 걸스가 보여준 손동작, 바로 훌라의 언어였다. 소설은 이 대목을 이렇게 묘사한다.

기미코는 천천히 훌라의 손동작을 시작했다.
양손을 위로 올리고 원을 그린다.
그리고 손을 옆으로 뻗어 파도가 치는 것처럼 물결무늬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양손을 실을 감듯 빙빙 돌리다가 오른손으로 활 모양을 그린다.
"나는…… 당신을…··· 사랑······ 합니다."
'투 유 스윗하트 알로하 To You Sweetheart Aloha'를 뜻하는 손동작. 이 모습이 열차 창에 비쳤는지 마도카가 이쪽을 봤다. 기미코의 움직임에 맞춰, 하쓰코도, 사유리도 그 뒤를 따랐다. 결국 선생이 탄 열차를 향해 무용수 전원이 훌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마도카는 울고 있었다. 기미코와 아이들도 모두 울고 있었다. 울면서 마도카 선생에게 모든 마음을 담아 춤을 췄다.

이 장면이 너무 좋아서, 'To You Sweetheart Aloha' 훌라 수업을 찾아가 배웠다. 이 노래는 이별의 노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는 점에서 기다림과 사랑의 노래이기도 하다. 훌라에서는 손을 심장 가까이 가져가 사랑을 표현할 때가 많다. 이 곡에도 그런 동작이 많았는데, 특히 두 손으로 위아래에서 사랑을 모아 심장으로 서서히 끌어당기는 동작을 할 때면, 영화의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뭉클했다.

이 영화는 훌라 걸스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 있지만, 폐광촌이라는 배경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폐광이라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마을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가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AI 관련 기사를 접할 때마다 노동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오곤 한다. 중년인 내가 기술을 쫓아가지 못해 도태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산업 전사'라는 자부심으로 목숨을 걸고 갱도에 들어가던 광부들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훌라 걸스>는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탄광이 문을 닫는 마을에 사람들은 하와이안 센터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훌라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직업이 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마도카 선생에게도 그랬다. 무대에서 내려온 사람이 다시 춤을 추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꿈을 찾았다. 우리 삶에서도 무엇인가 사라질 때, 또 다른 시작이 찾아오곤 한다. 잃어버린 것을 깨끗이 놓아주고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을 생각해 본다.

화려한 꽃 장식과 훌라 드레스, 우아한 미소가 실린 훌라에서부터 정열적인 타히티 댄스까지. 영화 <훌라 걸스>는 볼거리도 가득하지만, 1960년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낭독 9월호에도 실립니다.
훌라걸스 아오이유우 이상일감독 일본영화 훌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