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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우리 소리의 힘

KBS국악관현악단의 '광복,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노래하는 우리 소리의 숨결'

26.08.18 15:09최종업데이트26.08.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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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문화향연' 일정을 안내한 대형 포스터. 수준 높은 문화 공연이 안내되었다.
2026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문화향연' 일정을 안내한 대형 포스터. 수준 높은 문화 공연이 안내되었다.전갑남

광복절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가족 단위 관람객부터 나처럼 전시를 찾은 사람들까지 많은 인파가 몰렸다.

나 역시 지난 8월 11일부터 열리고 있는 주제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를 보기 위해 사람들 틈에 섞여 박물관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줄을 따라 입구에 가까워졌을 때, 커다란 안내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열린마당 공연예술축제, 박물관문화향연.' 마침 광복절을 맞아 특별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오후 5시부터 KBS국악관현악단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면 딱 맞는 시간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깊은 예술세계와 그 곁을 지킨 동반자들의 학문과 우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귀한 시간인데, 광복절 저녁에는 우리 전통음악까지 만날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문화 나들이가 또 있을까.

검색대를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긴 줄을 기다린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지만,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에는 시간이 금세 흘렀다.

전시장의 여운을 품고 선율의 열린마당으로​

공연 시작 30분 전, 열린마당 공연장에 도착했다. 이미 계단에는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연주자들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야외 공연장이어서인지 객석의 분위기부터 한결 자유롭고 활기찼다. 오늘만큼은 박물관의 유물뿐 아니라 우리 음악의 숨결까지 이곳에 함께 머무는 듯했다.

이날 공연은 KBS국악관현악단 박상후 상임지휘자가 지휘봉을 잡고 '광복, 어제를 기억하고 오늘을 노래하는 우리 소리의 숨결'이라는 주제로 무대가 펼쳐졌다.

KBS국악관현악단은 1985년 창단 이후 40여 년 동안 우리 전통음악의 계승과 국악 창작음악의 발전을 이끌어온 관현악단이다. 그래서인지 첫 음부터 우리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탄탄한 연주력이 느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펼쳐진 KBS국악관현악단의 광복절 특별 문화공연 모습. 박상후 상임지휘자의 지휘 아래 웅장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펼쳐진 KBS국악관현악단의 광복절 특별 문화공연 모습. 박상후 상임지휘자의 지휘 아래 웅장한 선율을 만들어냈다.전갑남

공연의 문을 연 곡은 채지혜 작곡의 <흐르는 가락, 그 깊은 울림>이었다. 풍년가와 강강술래 등 우리에게 익숙한 민요의 선율을 관현악으로 엮어냈다. 귀에 익은 가락이 웅장한 관현악의 울림을 만나자 어린 시절 들었던 민요가 새롭게 살아나는 듯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옛것'을 박제된 전통으로 들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익숙한 민요가 여러 악기의 음색과 만나고 새로운 리듬으로 확장되면서 과거의 음악이 오늘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제목처럼 세대를 이어 흐르는 우리 가락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독립의 숭고함에서 시공간을 넘어선 사랑으로​

이어진 김백찬 작곡의 <순국의 혼>은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광복절이라는 이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곡이었다. 독립투사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강렬한 타악과 관현악의 울림으로 표현했다. 힘 있게 몰아치는 장단과 웅장한 합주가 어우러지면서 한 시대를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들의 의지가 음악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자유롭게 음악을 듣고 박물관을 찾을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는지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국악관현악과 첼로가 만났다. 최지혜 작곡의 첼로 협주곡 <미소>. 첼리스트 김솔다니엘의 깊고 부드러운 첼로 선율이 국악관현악과 어우러졌다. 서양 악기인 첼로와 우리 전통악기가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음악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첼로 협주곡 〈미소〉를 협연하는 첼리스트 김솔다니엘의 몰입된 연주. 감동깊게 들었다.
첼로 협주곡 〈미소〉를 협연하는 첼리스트 김솔다니엘의 몰입된 연주. 감동깊게 들었다.전갑남

이 곡에는 조선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따뜻한 미소가 담겼다고 한다. 첼로의 서정적인 선율이 그 삶의 흔적을 따라가듯 흐르고, 국악기의 섬세한 가락이 그 곁을 받쳐주었다. 국경과 시대를 넘어 사람을 향한 숭고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음악이었다.

손다혜 작곡의 <하나의 노래, 애국가>에서는 역사의 흐름이 음악으로 이어졌다. 대한제국, 임시정부,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서로 다른 시대의 애국가를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낸 곡이다. 각각의 시대를 견뎌온 선율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이 한 편의 음악처럼 펼쳐졌다. 각기 다른 시대의 노래가 하나의 선율로 수렴하는 순간, '나라'라는 이름 아래 이어져온 우리의 지난 시간이 가슴 뜨겁게 다가왔다.

소리꾼 김준수의 신명, 객석과 하나 된 판​
 부채를 펼쳐 들고 단가 〈사철가〉와 판소리 <춘향가> 등을 부른 소리꾼 김준수. 재담과 익살이 넘쳐났다.
부채를 펼쳐 들고 단가 〈사철가〉와 판소리 <춘향가> 등을 부른 소리꾼 김준수. 재담과 익살이 넘쳐났다.전갑남

그리고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는 젊은 명창, 소리꾼 김준수였다. 첫 곡은 귀에 익은 단가 <사철가>.​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월은 물 흐르듯 하니, 청춘도 덧없이 가고 백발만 오락가락하구나."

​사계절의 변화에 빗대어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을 노래하는 소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듯 청춘도 흘러가고 어느새 백발이 찾아온다는 노랫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지나간 세월은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의 삶을 아끼며 즐겁게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힘찬 목소리를 타고 객석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어 판소리 <춘향가>의 대표적인 대목이 펼쳐졌다.

"암행어사 출두여!"

순간 공연장의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소리꾼의 호탕한 외침에 이어 공방과 형방이 혼비백산하고 변학도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이 익살스럽게 풀어지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추임새를 넣으며 빠져들었다.

"얼씨구 좋다!"
"잘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탄성과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진,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판이었다.

마지막 곡은 <쾌지나칭칭나네>. 익숙한 민요 선율이 흥겨운 관현악을 만나자 객석 전체가 손뼉을 치며 덩달아 들썩였다. 모두가 그 신명 나는 음악의 일부가 된 순간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숨결​

돌이켜보면 이날의 연주는 단순한 음악회를 넘어, 민족의 역사와 광복의 기쁨을 우리 소리로 풀어낸 한 편의 서사시였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깊은 울림, 해금의 애잔한 소리, 피리의 힘찬 가락과 대고의 웅장함에 첼로의 포근함까지 더해져 우리 음악이 가진 넓고 깊은 품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도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그 모습은 서로 다른 우리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세상의 이치와도 닮아 있었다.

낮에는 추사 김정희와 동반자들이 남긴 학문과 예술을 만났고, 저녁에는 민족의 삶과 역사를 품은 음악을 만났다. 유물은 말없이 역사를 전하고, 음악은 소리로 그 역사를 되살려낸 하루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 무대를 가득 채운 박물관문화향연. 뜨거운 열기 속에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 무대를 가득 채운 박물관문화향연. 뜨거운 열기 속에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었다.전갑남

이날 박물관 열린마당에 울려 퍼진 국악관현악의 숨결은 선조들의 마음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하게 건네주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귓가에는 가야금과 해금의 가락, 대고의 웅장한 울림, 그리고 객석에서 터져 나오던 "얼씨구 좋다"는 추임새가 남아 있었다.

광복절에 만난 우리 소리는 그렇게 오래도록 가슴에서 울리고 있었다.
국중박 박물관문화향연 KBS국악관현악단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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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