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6 KBO 리그 SSG 랜더스 대 LG 트윈스 경기. 경기 시작을 앞두고 LG 선수들이 고 백인천 전 감독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백인천은 선수만이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현역 은퇴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던 그가 본격적으로 지도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MBC 청룡의 후신인 LG 트윈스 감독을 맡으면서부터다. 백인천은 그해 정규시즌 1위에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라이온즈를 4연승으로 완파하며 LG를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이끌고 명장 반열에 오른다.
1995년에는 삼성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삼성은 하락세를 겪고있었다. 백인천은 LG 시절과 달리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고 팀을 이끈 것도 두 시즌(5위-4위)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삼성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바로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타자 중 한 명인 이승엽을 발굴해냈고,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과감한 세대교체를 단행해 이후 '삼성 왕조'의 초석을 닦았다는 것이다.
물론 재임기간에는 노장 선수들과의 마찰 등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백인천은 뚝심 있는 팀운영으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프로스포츠에서 '리빌딩(재건)'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한동안 공백기를 거치다 2002년에 롯데 자이언츠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하지만 LG-삼성 시절과는 정반대로, 롯데 사령탑 시절은 백인천의 야구인생을 통틀어 최대의 흑역사이자 지금까지도 수많은 논란을 초래한 오점으로 남아 있다.
당시 롯데는 '8888577(2001-2007년 롯데 팀순위, 당시 8개구단)'라는 이른바 비밀번호 시대를 거치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롯데 구단은 LG와 삼성에서 팀을 성공적으로 재건하며 좋은 지도력을 보여줬던 백인천의 역량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정작 백인천이 지휘봉을 잡았던 2시즌(2002-2003) 동안 롯데는 163전·41승·119패 3무, 승률 .256으로 모두 최하위에 그쳤고, 이는 역대 롯데 감독들 중 단연 압도적인 최악의 승률이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성적을 넘어, 백인천이 당시 감독으로서 저지른 다수의 비상식적인 '기행'이었다. LG-삼성 시절과 달리 현대야구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던 시대에, 선수단과 프런트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강행한 리빌딩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백인천이 직접 지목하여 데려온 외국인 선수들이 줄줄이 수준미달로 조기 퇴출되며 선수를 보는 안목에 의구심을 자아냈다.
특히 훗날 롯데 최고의 레전드가 되지만 당시에는 유망주였던 이대호가 체중이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쪼그려뛰기 같은 비과학적인 훈련을 강요하다가 무릎부상을 초래한 일화는 롯데 팬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악명이 자자하다. 또한 백인천은 당시 롯데의 에이스였던 손민한이나 이대호의 트레이드를 추진하다가 구단의 극력 저지로 간신히 무산되기도 했다.
심지어 백인천은 프로야구 감독으로서는 사상 초유의 태업 의혹까지 휘말린 인물이다. 백인천의 롯데 시절 대표적인 별명이었던 '백골프'는, 당시 롯데를 전담 취재하던 기자들이 경기나 훈련장에서도 본업인 야구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생활인 골프 타령만 한다는 사실을 참다못해 폭로한 데서 비롯된 유명한 사건이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롯데 구단은 2003년 8월 5일 백인천을 전격 경질했고, 이후 그의 이름은 롯데 팬들에게 한동안 금지어로 전락했다.
당시 백인천이 왜 이렇게까지 상식을 벗어난 기행과 태업을 일삼았는지 명확한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뇌경색으로 인하여 악화된 건강이 노쇠해가면서 정상적인 감독직 수행과 판단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 구단의 입김이 강하기로 유명한 롯데에서 프런트와 갈등으로 쌓인 불만과, 특유의 고집스럽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충돌하면서 고의적인 태업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한국야구에서 백인천의 커리어가 사실상 완전히 단절되는데도 큰 영향을 미친 치명적인 오판이 되고 말았다. 백인천은 이후 건강문제도 있었지만 지도자로 두번 다시 재기하지 못했다.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이광환 등 1세대 원로들이 2000년대 이후로도 오랫동안 현장에서 지도자와 행정가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후배 야구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백인천은 비교적 빨리 잊혀져갔다. 그만큼 롯데 감독 시절 말년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각인되어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2007년 명예직에 가까운 KBO 원로자문위원, 애제자 이승엽이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SBS 채널에서 일본야구 전담 객원 해설위원으로 활동한 정도가 이후 야구계 관련 공식활동의 전부였다. 이후 그의 인생 말년은 더욱 평탄하지 못했다. 무려 세 차례 뇌졸중을 겪으며 건강이 악화됐고, 사기 피해까지 당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고단하고 굴곡진 세월을 보내야했다. 2021년 이후로는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두문불출하며 긴 투병 생활을 이어 왔다.
백인천은 항상 '노력자애(努力自愛, 노력하는 일을 사랑해야 성공할수 있다)'라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아 실천했다. 또한 선수들에게는 강한 정신력과 투쟁심을 강조하는 '혼(魂)이 있는 야구'를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국민타자' 이승엽 전 감독은 스승의 별세 소식을 듣고 SNS를 통하여 "제가 가장 존경하고 감사했던 백인천 감독님께서 이제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하늘나라에서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며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평생을 야구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았던 백인천은 이제 모든 영욕을 뒤로 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한국야구의 큰 별이었던 백인천의 별세에 각계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KBO는 백인천 선생이 한국 야구 발전에 헌신한 공로를 기려 이용일 전 총재대행에 이어 두 번째 KBO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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