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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기억이 사라지면 이득보는 세력, 누구인가

[이영광의 '온에어' 440] KBS 1TV <시사기획 창> 조선우 기자

26.08.17 15:57최종업데이트26.08.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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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KBS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 이후 피해 증언이 잇따랐다. 하지만 35년이 지난 지금 피해 생존자는 단 5명뿐이다. 그러나 일본은 사과는커녕 역사를 부인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1일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기억전쟁-위안부 증언이 멈춘 뒤' 편이 방송되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된 이날 방송에서는 지금 우리가 왜 위안부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 성착취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을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 13일 해당 회차를 취재한 조선우 기자와 전화로 연결했다. 다음은 조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기억하려는 사람들과 기억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의 싸움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KBS

- 광복절 기념으로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거 같은데 왜 지금 위안부에 주목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 주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만약 긴 호흡으로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다룰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주제였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위안부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저희 할머니 세대의 소멸이 위안부 할머니 세대의 소멸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함께 나누고 싶었고, 나아가 '이 문제가 왜 아직 끝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이 계속 이어졌어요.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 기자님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서 이거 취재하기 전에 어떻게 생각했나요?

"저는 슬픈 역사, 안타까운 역사, 그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방송에 내보낸 것처럼 이게 '기억의 전쟁'이고 굉장히 치열한 주제라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역사 정도로, 감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취재 후 생각이 바뀐 거니 새롭게 안 게 있나요?

"한두 가지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봤다면, 취재하면서 단순히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외치고 이를 구제하려고 평생 싸워온, 그 자체로 인권 운동을 하신 분들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생겼어요.

또 이전에는 우리나라가 식민 지배를 당하며 겪은 안타깝고 슬픈 역사 정도에서 생각이 멈췄다면, 취재하면서는 이게 할머니들이 돌아가신다고 해서 끝날 수 있는 기억이나 흘려보낼 역사가 아니라 계속 계승해야 할 우리의 고난의 역사로 기록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 제목이 '기억전쟁'이잖아요. 왜 그렇게 한 거예요?

"처음엔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어떡하지'라는 다소 막연한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다루다 보니 증언해 주실 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이 역사를 기억해 왔는데, 증언자가 사라지면 그 기억도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억을 붙들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 당위성과 맞물리면서, 결국 이건 기억하려는 사람들과 기억되지 않았을 때 이득을 보는 세력 간의 싸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우리가 싸워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기억이라는 점에서 '기억전쟁'이라는 네 글자를 놓고 다시 살펴봤더니, 꽤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사라져가는 기억, 붙잡아야 할 기억, 그리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켜내야 할 기억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기억전쟁'으로 제목을 잡게 됐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일단 위안부 피해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할머니들은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으셨고 자신이 겪은 아픔과 고통을 직접 증언하며 싸워오셨고, 그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주기도 하셨거든요. 그래서 이 할머니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 부분을 우리 사회가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듭니다."

- 프롤로그의 의미가 뭔가요?

"프롤로그는 돌아가신 강일출 할머니의 49재 장면을 담았어요. 강일출 할머니는 생전에 TV에도 자주 나오셨던 분이고,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그림을 그리신 분이기도 하거든요. 취재를 시작하면서 이 할머니를 꼭 만나고 싶어서 3월에 연락을 드렸는데,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답을 들었어요. 그리고 연락드린 지 나흘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취재 초반이었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상징적으로 다가왔어요.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고, 그렇게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내드리는 그 짧은 과정이 인상 깊었고, 이걸 보시는 분들에게도 주제를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5월에 강일출 할머니의 49재, 마지막 장례식이 있었는데 애도하는 마음으로 참석해서 유족들의 이야기도 듣고 참석하신 분들의 눈물도 보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그 기억이 저희가 전하고자 하는 '기억전쟁'이라는 주제와도 잘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일출 할머니의 49재를 가장 처음 보여드리는 프롤로그로 정하게 됐습니다."

- 강일출 할머니를 왜 만나고 싶었나요?

"예전에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어요. 위안부였던 소녀들이 가운데 있고, 주변엔 불이 타오르고, 테두리 바깥엔 일본군 병사가 있는 그림인데, 강렬한 색채 때문에 끔찍하면서도 선명하게 다가와요. 강일출 할머니가 겪으신 일을 그림 한 장이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여러 할머니를 만나 뵙고 싶었지만, 그중에서도 살아계셨던 강일출 할머니께는 그 그림에 대해 꼭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인터뷰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큰 의도를 담았다기보다는, 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부분도 있어요. 처음엔 인물이 한 명씩 차례로 나오는 나열식 구조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구성해 보니 만나고 싶었지만 돌아가셔서 못 만난 분을 먼저 보여드리고, 그다음 저희가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생존해 계신 할머니를 보여드리니까 대비되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사라지는 기억이 먼저 보이면 시청자분들도 '돌아가셨네, 못 만나네' 하며 안타까움을 느끼실 텐데, 이어서 살아계신 이용수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면 '아직 끝난 게 아니구나, 아직 붙잡아야 할 기억이 있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가장 잊히지 않는 말... "17살 때로 돌려줘"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KBS

- 이용수 할머니와 인터뷰 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나요?

"다큐멘터리에도 나오는데, '다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잠깐 우셨어요. 그리고 한동안 말씀을 잇지 못하셨어요. 사과받지 못해 답답한 마음도 당연히 있으셨겠지만, 그보다 함께 증언하고 함께 외쳤던 할머니들을 한 명씩 떠나보내면서 홀로 남겨진 적적함이 더 크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 고노담화로 일본이 위안부를 인정했잖아요. 하지만 30년 지난 지금 의미가 있을까요? 고노담화가 휴지 조각이 된 거 아닌가 해서요.

"93년도 발표가 지금 이 시점에 실효가 있느냐는 질문이라면, 그동안 정부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역사적 흐름도 너무 많이 바뀌어서 제가 실효가 있다 없다를 말씀드리는 건 좀 부적절한 것 같아요. 다만 어쨌든 93년도에 일본 정부가 이 발표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에게도, 사실 일본 정부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 모집 과정에 강압이 있었다는 걸 관방장관이 명확하게 발표한 거니까요. 아무리 지금 부정한다 해도 자국 정부가 한 발언이잖아요. 그래서 실효가 있느냐는 질문보다는, 이건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정도로 답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000년에 일본에서 위안부에 대한 모의 법정이 있었나 봅니다.

"네, 정확한 명칭은 '시민 법정'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국가가 개최했거나 법원 같은 사법적 주체가 만든 건 아니고, 시민사회와 여성 운동 진영이 만든 국제 민간 법정, 즉 시민 법정이었습니다. 여기에 생존자분들이 현장에 직접 참석해서 증언하셨고요."

- 그러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건가요?

"이건 전쟁 범죄잖아요. 그럼 전쟁을 시작한 나라에서 그 전쟁을 결정한 최고 권위자가 누구냐를 따지면, 일본은 천황제니까 결국 일본 왕에게 전쟁 범죄의 책임을 묻게 되는 거예요. 그 전쟁 범죄 안에 위안부 문제도 포함돼 있으니까, 위안소를 짓고 위안부를 모집하고 부렸던 것 역시 일본의 최고 권위자인 일본 왕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느냐는 걸 국제법적으로 따진 거고요. 여러 논의 끝에 일본 왕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물론 실제 법정이 아니라서 구속력은 없어요. 하지만 피해자들이 직접 법정을 만들어서, 정식 법정에서조차 다뤄지지 않았던 목소리를 통해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1차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KBS

- 독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를 운영한 거 같은데 이후 두 나라가 위안부 다루는 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뭘까요?

"일본은 위안소와 위안부의 존재를, 93년 고노담화를 기점으로 한 번 인정하긴 했지만 이후 계속 부정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요. 반면 독일 사회는 이 내용 자체를 처음부터 부정했다기보다는, 이에 대한 연구나 추적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쪽에 가까워요. 그러다 뒤늦게 '보르델'이라는 시설, 즉 성착취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정하게 됐다는 점에서 두 나라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 엔딩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피해 할머님들의 목소리 넣으셨잖아요. 의도가 있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마지막엔 돌아가신 분들 목소리만 담았어요. 이 마지막 육성은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니라,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려드리는 시간이었어요. 증언이 다 사라지면 무엇이 남는가에 대한 조용한 답을 시청자분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했거든요. 할머니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동시에, 생전에 남기신 목소리를 시청자들이 넘겨받는 장면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
<시사기획 창>의 한 장면KBS

- 기자님에게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뭐였나요?

"저희 방송에 쓰지는 못했는데, 김학순 할머니의 여러 증언을 들으면서 마음에 남는 말씀이 있었어요. 격분해서 우시면서 '나 다시 17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돌려달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었거든요. 그 한마디가 정말 그분의 인생을 함축해 주는 말인 것 같아서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사과하고 배상한다 해도 그 인생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울면서 내뱉으신 '나 다시 17살 때로 돌려주세요'라는 그 말이, 메아리처럼 잊히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 취재하며 느낀 점은 뭘까요?

"위안부 역사를 기억한다는 게 과거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할머니들이 남기신 증언과 외침을 계속 현재로 소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쟁은 왜 사람의 몸을 빼앗는가, 사실이 기록되고 증언이 있는데도 왜 다시 기억에 대한 왜곡이 일어나는가, 그게 또 다른 전쟁이 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정말 많았고 그 질문들을 시청자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답을 개인이 내리는 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내리는 건강한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조선우 시사기획창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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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