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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돌아온 '귀향', 미공개 편집분엔 뭐가 담겼나

[김성호의 씨네만세 1407]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26.08.14 10:13최종업데이트26.08.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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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지난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는 스스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사실을 세상에 외쳤다. 그러니까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한반도 한민족의 광복으로부터도 무려 반세기 가까이를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둠 속에서 숨어 살아야 했던 것이다. 빛을 되찾았단 뜻의 광복, 진실로 이들에겐 광복이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1991년 8월 14일까지는.

위안부 문제는 그래서 빛을 찾았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법제화하고 그 존재를 등록해 관리하기 시작한 1993년, 등록한 피해자는 192명에 달했다. 당시 사회적 통념 등으로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가 또한 많아서 후에 확인된 생존 피해자수는 200명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2026년 오늘에 이르러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는 5명뿐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일본과 합의한 결과로 생긴 화해·치유재단은 온갖 논란 끝에 2019년 해산이 결정됐으나 일본 측 출연기금 10억 엔의 향방은 아직도 확정되지 못했다. 지난달엔 피해자 유족이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지급받기 위해 화해·치유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패소한 일까지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데 일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삶인 현재적 고통은 반강제적으로 해소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로써 새겨지는 중이다. 지난 시대 부재했던 국가는 소녀들을 외세 군대의 성노예로 전락하게 했다. 오늘에 이르러 존재하는 국가가 대체 무얼 하느냐는 물음 앞에 모른 척 고개를 돌리는 게 우리의 현실인가 되묻게 된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스틸컷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스틸컷커넥트픽쳐스

아직은 잊혀져선 안 돼!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가 10년 만에 재개봉한다. 10년 전인 2016년 2월 개봉해 독립영화로는 신드롬이라 해도 좋을 반향을 일으키며 358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의 귀환이다. 원제 <귀향>에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란 부제를 붙인 건 두 작품이 구분된다는 뜻이다. 6분의 미공개 편집분을 붙여 새로운 작품으로 등록한 신작이라 소개한다.

이번 재개봉 영화를 신작이라 말하기 저어되는 이유는 6분의 분량을 포함한 작품이 10년 전 원작과 다른 주제의식이나 서사, 결말, 상징 등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다. 그러니까 사실상의 재개봉이다.

<귀향>의 흥행 뒤 1년 만에 담지 못한 이야기에 더하여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묶은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냈던 제작진이 9년이 흘러 이번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를 내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지난 10년 동안 무엇도 해소되지 못한 답답한 현실 속에서 국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라도, 예술로써라도 무엇이든 해보려는 발버둥인 것인가. 그런 답답한 인식을 지우기가 어렵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스틸컷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스틸컷커넥트픽쳐스

10년만의 귀환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6년 한국을 찾아온 작품에 나름의 고심이 없었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새로이 만들어진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의 추가된 6분에 대하여 전하려 한다. 덧붙여 만든 하나의 에피소드는 분명히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이 역사를, 특히 오로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 비극을 민족사 안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소실케 한 진실 한 조각을 담아내고 있는 때문이다.

제작사는 추가된 6분에 대하여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아시아 여성들의 이야기를 추가해 희망 없는 현실 속에서도 서로를, 그리고 돌아갈 집을 생각하며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소녀들의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담았"다고 전한다. 지난 <귀향>에서 그려지지 않은 다른 민족, 국적의 피해를 부각했다는 뜻이겠다.

실제로 지난 작품에선 지나가다 한두 장면 쯤 위안부 피해자들 가운데 중국어가 등장하는 신이 있는 것 말고는 사실상 조선인이 아닌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에선 다르다. 그들이 한 에피소드의 중심 인물이 되는 것이다.

여전히 주역이 되는 인물은 정민(강하나 분)과 영희(서미지 분)다. 조선, 그중에서도 위안부 문제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된 경상남·북도에서 끌려온 두 아이의 우정이 영화 가운데 주요한 관계로써 그려진다. 그러나 작품이 오롯이 이 두 명만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일본 관동군 병사들 중에서도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인물이 몇 있고, 위안부와 이들을 관리하는 이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몇은 특정 에피소드의 주역이 되기도 하는데, 추가된 6분도 그러한 경우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 스틸컷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스틸컷커넥트픽쳐스

오로지 한국만의 상처가 아니기에

일본 만주에 주둔한 관동군 위안부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게 조선에서 끌려온 소녀들인 건 분명하다. 한반도가 일제의 완전한 지배 아래 있었고, 태평양 전쟁 이후 국가총동원령에 따른 무차별적 체포와 이송이 이뤄졌기에 강제징집이며 징용과 마찬가지로 위안부 문제에서도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조선인만 피해를 본 건 아니다.

각종 연구는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오키나와 등 일본 내 약자들, 남태평양 도서국가, 인도네시아에 있던 네덜란드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간 위안부 문제를 다룬 한국 문학과 영화 등의 예술은 이 사실을 담고 있지 않았다. 한반도, 한민족의 피해에만 집중하여 서술해온 때문이겠다.

사실 이것이 마땅하거나 당연한 태도일 수는 없겠다. 이는 가장 활발하게 일본군 만행을 작품화해온 중국 작품들만 보아도 확인할 수 있는데, 731부대의 생체실험이라거나 학살 등을 다룬 작품에서 중국인 외에도 다양한 국가며 민족의 피해사실을 담아낸 작품이 꽤 되는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러나 한국에서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선 좀처럼 한반도 바깥의 피해자를 만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가해국은 일본, 피해국은 오늘의 한국이 계승하는 당시 일본 식민지 조선땅으로 한정되어 국가와 민족적 대립의 서사로 축소되기 일쑤다. 이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혹은 발전적이고 유효한 시각으로 대하는 태도라 보기 어렵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 가운데서 피해자는 오로지 조선인이 아니다. 한민족만이 희생양이 아니다. 일본과 조선의 이분법적 대립에서 벗어나 전쟁과 평화, 내지는 인권과 전쟁범죄 사이의 문제로 나아갈 단초쯤은 제기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사그라들자마자 제작까지 멈춰버린 영화계의 현실 가운데서 이 영화의 개봉 또한 의미가 있고 말이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는 올 3월 세상을 떠난 강일출 할머니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다고도 전한다. 강 할머니가 미술심리치료 중 그렸다는 '태워지는 처녀들'이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를 반영한 신이 영화 안에 주요하게 담겼다. 8월 26일 개봉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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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