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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 마루 밑에 어른은 모르는 진실이 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406] <마루 밑 아리에티>

26.08.13 11:11최종업데이트26.08.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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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 말은 누구나 적어도 한 때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살았다는 뜻이다. 그저 사는 것이 아니다. 상상하고 느꼈다. 눈 감으면 장난감이며 인형들이 움직이고, 밤이면 악당과 괴수, 귀신 따위가 선한 이를 위협하며, 빨간 옷을 입은 흰 수염 할배가 전 세계 착한 어린이들에게 상을 주러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그런 세상 말이다. 공룡들이 굉음을 내며 오가는 세계가, 장롱 문을 열면 펼쳐지는 환상과 모험의 무대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들에겐 사실적인 무대가 된다.

여름과 잘 어울리는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일본 애니를 대표하는 지브리 스튜디오가 어린이를 위한 극장용 애니로 기획해 발표한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젊은 시절 기획한 작품을 거의 반세기가 흘러 제가 운영하는 제작사를 통해 세상에 내어놓은 야심작이기도 하다. 영국 작가 메리 노튼의 판타지 소설 원작의 배경을 일본으로 옮겨 내놓았는데, 인간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소인들의 존재가 발각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1990년대를 풍미한 여러 작품들, 이를테면 <애들이 죽었어요> 시리즈와 같이 크기의 차이가 빚어내는 위기감을 작중에 끌어들여 동력으로 삼는 한편, 다른 존재에게 미치는 인간의 위협적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 깊은 작품이다.

연출은 탁월한 작화 능력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까지 평가됐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맡았다.

마루 밑 아리에티 스틸컷
마루 밑 아리에티스틸컷대원미디어

할머니집 마루 밑에 소인들이 산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감독하지 않은 작품 가운데선 드물게 지브리 스튜디오의 성공작이라 부를 수 있는 <마루 밑 아리에티>다. 2010년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일본 영화 중엔 가장 좋은 흥행성적을 거뒀고, 한국에서도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보기 좋은 그리 흔치 않은 애니라는 평가가 따른 건 물론이고, 일본 전체 애니 가운데서도 전 세계 흥행수익에서 20위 권 안에 든 작품으로 기록됐다.

<마루 밑 아리에티>가 이달 한국에서 다시금 선보인다.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들이 꾸준히 4K 리마스터링 작업 뒤 재개봉하는 흐름 가운데서 멀티플렉스가 기획한 특별상영회 등을 통해 작품을 새로이 관객 앞에 선보이려는 움직임이다. 검증된 작품의 재개봉이 새로울 것 없는 신작보다 낫다는 관람풍토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가 색다른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 상영관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볼 때 극대화된다는 점, 나아가 한여름 무더위를 뚫고 이제 막 숨을 돌리는 한국 관객들에게 계절과 꼭 맞는 작품이기도 하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게 분명해 보인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10cm 남짓한 작은 키를 가진 소인들의 존재를 그린다.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필요한 물건을 인간들에게서 몰래 훔쳐 삶을 꾸린다. 이들 말로는 '빌린다'고 하는데, 전기며 수도부터 소금과 설탕, 휴지, 온갖 물품을 남몰래 가져다가 저들 생활에 쓰는 것이다. 작은 존재들이 써봐야 얼마나 쓰겠는가. 채 몇 남지 않은 이들의 존재는 인간의 눈에 거의 띄지 않는 모양인데, 수십 년 전 어쩌다 소인의 존재를 목격한 이들만이 마치 귀신을 본 사람의 이야기처럼 입에서 입으로 그 경험을 전해두고 있을 뿐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 스틸컷
마루 밑 아리에티스틸컷대원미디어

때로는 아이의 눈이 진실에 닿는다

소인이 산다는 이야기가 풍문처럼 전해오는 그 저택에 소년 쇼우가 온다. 심장이 좋지 않은 쇼우가 수술을 앞두고 잠시 할머니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저택엔 할머니 말고도 집안일을 봐주는 나이든 아줌마도 같이 산다. 이들과 함께 지내는 며칠의 경험이 아마도 쇼우에겐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고 모험이 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아이와 새로운 세계의 조우를 그린다. 미지와의 조우는 이제껏 많은 동화가 택해온 설정이자 접근법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나니아 연대기>를 거쳐 <해리포터>에 이르는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마루 밑 아리에티> 또한 채택했던 것이다. 그 세계란 인간보다 훨씬 더 작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이들, 그러나 분명히 실재하는 소인들의 존재다. 늘상 집에 붙어사는 할머니와 아줌마의 눈엔 띄지 않던 소인의 존재가 소년 쇼우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인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대목이다. 아이의 시선이란 이토록 남다르다. 때로는 어른의 눈보다도 진실에 더 가깝다.

아리에티에겐 아리에티의 사정이 있다.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아리에티는 몇 남지 않은 소인족의 후예다. 동족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지 오래,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방식은 또한 너무 무거운 제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처럼 아버지를 따라 생필품을 빌리러 나간 길에서 아리에티는 저를 둘러싼 세계의 외연과 처음 마주한다. 그곳엔 마음을 알 수 없는 인간들이 있고, 그들과의 접촉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금기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쇼우와 아리에티의 필연적 조우로부터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마루 밑 아리에티 스틸컷
마루 밑 아리에티스틸컷대원미디어

멸절에 닿은 소인과 오늘의 인류

흔히들 어린이는 세계의 미래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정작 그 미래를 제가 아는 세계 안에 가둬두기 일쑤다. 틀 안에 갇힌 아이의 성장이란 틀에 맞춰지게 마련이다. 제 미래를 가두는 줄도 모른 채로 이뤄지는 보호와 교육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마루 밑 아리에티>는 그저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 머물지 않는다. 어른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물음 또한 담겨져 있는 것이다.

멸절에 이른 종족은 소인족처럼 보인다. 친척과의 연락조차 닿지 않는 이들의 존재는 고립돼 멸종되어가는 어느 종족의 마지막 세대인 듯 그려진다. 그리하여 소년 쇼우가 아리에티를 향하여 너희는 멸종되어가고 있다고, 인류는 수십 억에 달한다고 자신하며 말하도록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가만히 돌아보면 인류 또한 고립과 멸절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왜인가. 호모 사피엔스는 계보학상 속, 그리고 아종 안에 있는 모든 다른 종이 멸종되고 남아 있는 유일한 종이다. 네안데르탈인 등 친척뻘 되는 다른 종족의 멸종이 바로 현생 인류, 우리의 손으로 이뤄졌단 게 역사학계가 고증해 밝힌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현생 인류는 바로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목을 옥죄고 있다. 그저 '빌려 쓰는' 수준을 넘어 제가 의지하는 지구의 균형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인류의 문명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2026년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브리 스튜디오가 내놓은 명작은 십 수 년이 지나서까지 유효함을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가 오늘의 한국에 긴요한 목소리를 전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재개봉해 오늘의 관객과 닿는 일을 기껍게 여긴다.

마루 밑 아리에티 포스터
마루 밑 아리에티포스터대원미디어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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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